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뜬금없이 ‘세계 푸른 하늘의 날’ 지정을 제안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할 각국 계획을 요청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말이다. 기후변화는 남의 일이고, 오로지 미세먼지 문제에만 골몰했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이보다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없었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한 것이다. 도대체 지난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모두가 기후위기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탄소중립, 일단 선언만 해놓자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공약으로 그린뉴딜과 2050년 탄소중립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주로 저탄소 투자시장 활성화, 기업 세제 지원 등이었고, 구체적인 탈탄소 로드맵이 없어 허울뿐인 ‘공약’으로 비판받았다. 6월에는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가 ‘기후위기비상선언’을 발표했고 7월에 정부는 코로나19 경제대책의 일환인 한국형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9월 24일 국회의원 252명의 찬성으로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급기야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정부, 국회, 지자체까지 정치권 모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새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선 것 같지만 실상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의 의무를 공허한 선언으로 대체하려는 것에 가깝다. 당장 올해 말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데 정부는 기존 계획(2010년 배출량 대비 18.5% 감축)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2050년 탄소중립이 실제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얼마나 이루어내는지가 중요하며 최소한 50%는 감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에너지 전환과 산업구조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말 발표예정인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20~2034) 초안에 따르면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대표적 산업인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하지만, 이를 재생에너지가 아닌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대체하고 석탄화력발전소 7기를 새로 건설하려 계획하고 있다. 2034년에도 재생에너지보다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더 높은 계획인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는 공공부문마저 이런 상황에서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정치적 사기다.
기후위기, 자본에겐 새로운 시장과 기회
탈탄소 사회를 향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정부가 향후 5년 간 그린뉴딜에 73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하고 현대차, 엘지, 한화와 같은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속도의 문제일 뿐 온실가스 감축을 향한 정부와 기업의 의지는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오해는 하지 말자. 아무리 기업이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고 해도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한 집단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불리는 위해 움직이는 돈을 ‘자본’이라고 부른다. 정부도 ‘새로운 시장’, ‘미래먹거리산업’으로서 ‘그린 산업’에 73조 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시정 연설 전후로 KB 금융그룹, 한전, 삼성물산의 ‘탈석탄 선언’이 이어졌다. 단, 이미 투자를 결정했거나 진행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은 계속하겠다는 탈석탄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계속되고, 국내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도 이어진다.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신규 석탄화력발전사업이 발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투자가 시작돼 기대수익이 분명한 사업은 계속하겠다는 것인데, 탈석탄이 아니라 그냥 하던 대로 돈 벌겠다는 발표였을 뿐이다.
특별히 한국 자본만 기후감수성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니다. 유럽과 북미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설비는 크게 증가했지만 전체 에너지원에서 그 비율에는 변화가 없다. 화석연료산업 역시 동시에 증가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산업이 여전히 돈이 되기 때문에 투자가 몰리고, 자본이 투입된 이상 그만큼의 수익을 내기 위해 반드시 생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미국의 IT 대기업들이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AI 기술개발에 나서거나, 녹색금융에 투자한 자본이 화석연료산업에도 투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논리다. 자본은 탈탄소라는 사명을 띠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냥 돈이 되는 사업은 가리지 않고 할 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돈이 되는 최신 사업이 지금의 재생에너지산업일 따름이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자본에게 재생에너지, 그린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었다. 새롭게 열린 영역인 만큼 정부 주도의 사회적 계획과 합의가 중요함에도 오로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가 수익률까지 보전해주며 만들어낸 ‘시장’이 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기후위기대응에서 자본이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초기단계이고 아직 그 규모가 크지 않지만 징후는 뚜렷하다.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은 녹색산업 인프라 구축이 핵심이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임시직 일자리 수를 홍보한다. 이렇게 공공자금으로 구축된 인프라는 현대의 수소차, 엘지의 배터리 사업, 한화의 태양광 사업이 확대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초기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정부와 국회의 탄소중립선언, 기후위기비상대응 결의안은 탈탄소가 아니라 녹색 시장과 녹색 자본의 출발을 선언한 것에 가깝다.
온실가스 배출도 기후위기 대응도 모두 자본의 몫?
자본은 그렇다 하더라도 기후위기는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인도하게 될까? 많은 이들이 ‘멸종’을 말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모두 직감하고 있듯이 폭염, 태풍, 홍수, 가뭄과 같은 재난들이 더 심해지고 잦아지게 될 거라는 점, 자연스레 농어업의 작황피해는 더 늘어날 거라는 점, 옥외노동을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더욱 힘든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점, 코로나19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듯이 ‘재난’이 불평등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약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내몰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도래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남반구 주민들이 겪던 일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재난과 재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생산과 소비를 조직해 온 자본이 이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며 ‘녹색’을 앞세워 인간과 자연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고, 정부는 자본을 기후위기 대응의 주요한 행위자이자 파트너로 소환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의 기후위기 대응에서, 정작 기후위기를 몸으로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노동자 2주기가 곧 다가온다. 칠흑 같은 작업장에서 홀로 죽어갔던 청년노동자의 소식에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고 행동했다. 그 후 2인 1조 인력충원을 비롯한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사고의 원인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지위와 작업 권한의 문제는 제자리인 상태에서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계획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 30기가 순차적으로 폐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LNG 발전소로 대부분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당 공정 자체가 사라지며 일자리를 잃게 된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부터 석탄가루를 뒤집어쓰며 힘든 노동조건 속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석탄발전이 사람에게나 자연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수십 년을 일해 온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혐오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의 실직은 그 책임을 전력회사나 정부가 아닌 노동자들에게 묻는 꼴이다. 이들이 긴 논의 끝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일자리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아무도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발전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나 국회도 마찬가지다. 탈석탄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이라고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고 한다. 불과 2년 전에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쏟아졌던 사회적 관심과 비교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는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탈탄소, 탈석탄의 주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재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이거나 정부가 된다. 그들의 구상에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그 목적도 탈탄소가 아닌 이윤획득을 위한 ‘선도 산업’, ‘신성장 동력’에 있다. 그들에게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딱한 처지는 전환과정에서의 ‘부작용’일 뿐이다.
기후위기, 우리가 전환의 주체가 되기 위해
불과 1년 전에는 ‘기후침묵’ 사회였던 한국은 이제 다들 ‘기후위기’, ‘탈탄소’를 외치는 곳이 됐다. 그런데 주로 들리는 건 ‘녹색’을 내세운 자본과 기업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다. 기후위기가 사람이 겪는 재난과 부정의, 억압의 문제라면 그게 무엇인지 우리가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계획이란 게 불가능한 불안한 삶을 살아가던 청소년/청년들에게 기후위기는 사회가 강요했던 유예된 삶이 아닌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이었으며, 점점 심해지는 이상기후 속에서 농민들은 더 많은 비료와 시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기후위기로 확인했다. 탈석탄을 내세우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정부와 기업을 겪으면서, 석탄발전 노동자에게 기후위기는 당장 생존위기가 되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돈벌이 기회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위기’라는 걸 증언하려 한다. 에너지 전환을 지지하며 일자리 대책을 요구했던 석탄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이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대체 이 위기는 누구의 위기인가? 이들이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신규석탄발전소에 재취업하는 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오는 11월 26일에 열리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많은 관심을 바란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
11월 26일(목) 15:00~17:30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