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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금, 누구에게 걷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

부자 증세라는 요구를 넘어서기 위해

지난 7월 25일 기획재정부에서 감세 정책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개인과 법인의 상속 관련 세금을 완화하는 것이 주요한 골자다. 곧이어 7월 30일에는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금투세 폐지와 상속세 인하 등을 언급하며 감세 기조에 힘을 보탰다. 여느 때처럼 정부 입장에 민주당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연임이 유력한 이재명 당 대표는 비슷하게 감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어 무엇에 반대하는지 알기 어렵다. 세금을 둘러싼 보수양당의 정치는 어떤 사회를 향하는 것일까.

부자들끼리 잘사는 사회

정부가 내놓은 감세안의 핵심은 상속세 완화와 금투세 폐지다. 기존 상속 공제액이 최대 10억까지였다. 이 공제 범위를 확대해 자녀 수에 따라 최소 12억부터 5억씩 감세 혜택이 추가되니 17억, 22억원 자산을 가진 사람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상속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상속세 최고세율도 50%에서 40%로 낮추고, 법인은 조건에 따라 공제범위를 2배에서 한도 없이 늘려 상속/증여할 수 있게 된다. 정부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금투세의 경우는 연 50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경우 20% 세금을 매기게 되어있다. 작년 개인투자자 평균 수익률이 15%가 안 된다고 하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주식만 3억 이상을 보유한 사람이 낼까 말까 한 세금이다. 2022년 임금 근로자 월급 평균이 353만 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둘러싸고 감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자산 상위 10%는 약 10억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상속세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혜를 받는 것은 상위 10%보다 위쪽의 사람들이 받게 된다는 의미다. 주식 시장 안에서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경우는 전체 투자자 중 1%에 해당한다. 이번 감세안이 25년 동안 변화가 없던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정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라고 하지만 냉소를 유발하는 말에 불과하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전체 피상속인 중 4.5%로 여전히 소수만 내는 세금으로 합리화시킬 대상인지 의문이다. 감세를 통해 낙수효과 즉, 고소득층의 경제 활성화시켜 전체 사회의 소득을 끌어올리겠다는 기대는 이미 IMF에서조차 틀렸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이야기는 이미 자산을 쌓은 부자들끼리 그 부를 유지하며 사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다름이 아니다. 

민주당 표 부자감세는 다릅니까

정부 감세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역시 범위와 방법은 다를 뿐 부자감세라는 입장은 정부와 다르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이번 감세안의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주당에서 감세를 언급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의 세금 부담이 과중하다며 1주택 자의 종부세 감면을 논의를 던졌고 이를 물은 정부가 감세안을 내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법인 상속 공제 혜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개인의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데는 정부와 뜻을 같이한다. 감면의 방식을 자녀 상속 공제액을 자녀의 숫자와 무관하게 10억으로 늘려 배우자와 자녀에게 상속하는 경우 15억 원까지 공제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견이다. 자녀 숫자에 따라 공제액이 늘어나는 정부와 방법적 차이일 뿐 때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감세해주는 혜택이 더욱 크다. 금투세 도입은 민주당 내에서도 갑론을박하지만 당대표 연임이 유력한 이재명은 금투세 도입 유예를 시사한다. 이재명과 같은 유예 의견이 아니더라도 상위 1%에 해당하는 과세 범위를 더 올리고 건강보험료도 공제해주자는 의견이 나오는 등 금융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일에 부담을 느끼니 정부가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고부터 한국 사회 생존의 방식은 각자도생이었다. 경쟁과 불평등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살아남는 수단은 개인의 자산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경제 위기나 부동산 이슈의 등장은 상위 자산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이들과 그 경계에 있는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자가 되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겨우 자산을 형성한 사람은 부자에서 탈락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민주당의 감세기조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민주당은 당신이 부자가 되는 데 방해하지 않을 거고, 부자가 되어도 탈락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부자들끼리만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이나 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자로 잘살 수 있도록 세금 깎겠다는 민주당의 정책 지향은 결국 똑같다. 이 사회에서 잘사는 방법은 부자가 되는 길뿐이라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이 같은 입장을 두고 어떤 부자에게 얼마나 세금을 깎아줄 것인지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현재 상황의 문제는 이들이 정치의 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마주하고 있는 물가상승과 경제 위기 속에서 자산의 가격을 걱정하는 이들이 아니라 생계도, 주거도 이미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안정시킬 수 있을지 정치가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두 정치세력 모두 부자감세 정책이 민생의 문제인 양 다루며 진짜 민생의 문제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10억 원 이 넘는 자산을 상속/증여하려면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고, 수억 원씩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규모의 금융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가 원칙이다. 경제가 위기 상황에서 지금 정치의 역할은 부자 감세가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어떻게 삶이 팍팍해진 시민의 삶을 위해 쓸지 논의하는 일이다.

부자 감세 vs 부자 증세를 넘어서자 

국가가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치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지금껏 한국 사회는 세금을 걷어 이 사회 전체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 돈을 사용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산업화 시기는 중공업 육성한다고 국가의 재정을 전부 사회 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해 사용했다. 이후 짧은 성장을 맞이했지만 이내 외환위기와 동시에 찾아온 신자유주의 시기는 쓰러져 가는 기업들 지원하는 데 국가의 지원을 집중시켰다. 코로나19로 누적된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상황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책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나랏돈이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쓰인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 없는 사회에서 부자되기는 생존의 방식이자 삶의 지향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가 1400만 명의 사람들이 주식시장으로 뛰어들게 했고, 10억 자산가든 100만원 투자한 청년이든 모두 투자자의 위치에 서 있다. 모두가 투자자가 된 사회에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보다 법인세 인하해서 내 주식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합리적으로 들리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가 만든 풍경이다. 

이 고착화된 풍경을 바꾸려면 요구도 달라져야 한다. 부자에게 더 걷으라는 요구를 넘어 그렇게 걷은 세금 다르게 쓸 수 있도록 사회적 요구로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재난, 전쟁이라 불릴 만큼의 돌봄 부족 등 사회적 위기는 불평등이란 조건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어 삶의 위기로 다가온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를 바꿔내자는 것이다. 부동산을 소유하고만 있어도 얻는 이익을 세금으로 걷어서 공공임대 주택과 같이 탈시장화된 방식의 공급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바꿔야 할 정치의 방향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영업이익을 수십조씩 얻는 에너지, 정유 기업들에 횡재세를 요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같은 에너지 체제 전환의 과정에서 발전소 노동자들과 지역주민의 삶을 생존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재정을 투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주거권,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돌봄, 교육, 일자리 등 전환해야 하는 분야는 많다. 세금을 둘러싸고 얼마를 더 걷을지, 누구에게 걷을지만이 아니라 다르게 쓰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 한다. 나의 삶과 상관없는 세금을 부자에게 걷든, 말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꾸길 원하는 사회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충분히 더 걷어서 우리의 삶을 위해 써야 한다는 요구를 함께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