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외국인 노동자는 15일 안에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을 것. 위반 시에는 벌금, 감염에 따른 구상권이 청구됨.”
지난 2월 진관산단의 이주노동자 집단감염 이후로 지자체마다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행정명령이 차별이라는 불을 당겼다. 바이러스가 국적을 가리지 않는데 외국인만을 특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의 행정명령 고시에 각국의 대사관과 대학에서도 항의가 이어졌다. 차별의 의도는 없었다며 일부 지자체는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개선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차별은 철회됐을까?
감염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주노동자
서울시는 검사 대상을 ‘고위험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변경하고 명령을 권고로 수정하였다. 1차 행정명령에 이어 추가명령을 낸 대구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모든 제조사업장 샘플링 검사’로 방식을 변경했다. 차별적인 조치를 개선했다고 말하지만 특정한 집단을 타겟팅한 것은 그대로다. 경기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이주민과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꿈쩍도 하지 않으며 행정명령을 유지했다. 애초에 행정명령이 겨냥한 집단은 모든 외국인이 아니라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아시아계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이었다.
행정명령의 시발점이 된 이주노동자 집단감염은 3밀(밀폐,밀집,밀접)의 노동환경과 공동기숙생활이 주요원인으로 꼽혔다. 이주노동자라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놓여 있는 환경이 방역의 구멍이자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다. 하지만 행정명령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버렸다. 강제검사 명령을 유지한 지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차별적인 조치를 시정했다는 지자체도 다르지 않았다.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고위험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포함된 고위험사업장만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고위험사업장이어도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이주노동자를 신규 채용할 때는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으라는 권고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환경을 나아지게 만드는 조치는커녕, 이주노동자 자체를 감염병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한 집단을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비판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별을 시정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는 오히려 누구를 차별해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지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검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작년 5월 이태원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에 대응하며 익명검사제도를 도입하고 방역당국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감염의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공동으로 대응한 경험은 “평등해야 안전하다”는 감각을 일깨워왔다. 하지만 이번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명령은 권리의 보장이 아닌 권리의 유보였다. 차별을 선동하며, 바이러스에 대응해야 할 국가와 지역사회의 책임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조치다.
코로나19 방역의 조건은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지난 1년 이주노동자의 감염 사례가 드러나지 않은 데는 방역을 잘해서가 아니라 손쉽게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틀어막아온 현실이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일터에서는 사업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기숙사에서 조차 나가지 못하게 하고 CCTV로 감시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이주노동자 집단감염은 권리의 유보가 방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될 때 마음 놓고 검사를 받으며, 격리를 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마련하고,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코로나19 방역은 가능해진다. 지금 지자체가 해야 할 방역대책은 차별적 조치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이다.
이번 행정명령으로 경기도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사람은 34만 명으로 이는 애초에 예상했던 8만 5천명의 네 배에 이른다. 전남도 1만 5천명을 추산했지만 2만 5천명이 검사를 받았다. 지자체가 예상했던 규모를 훌쩍 뛰어넘은 이유는 “불법체류 외국인도 단속되지 않으니 안심하고 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걱정해도 미등록 상태가 드러날까봐 병원에 가거나 검사받는 것이 주저되는 이주노동자의 체류조건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를 위해 검사 받으라는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하다. 작년 5월 이태원 집단감염 사례에서 성소수자의 자발적 검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가시적 존재가 되어달라는 말이 아니라 익명검사라는 대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 역시 체류조건에 따른 위협을 받지 않는 만큼 함께 코로나19에 대응해나갈 수 있다.
진관산단 이주노동자 집단감염의 배경에는 5인까지 밀집해 생활하는 기숙사가 있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2교대제 사업장의 경우 주야간 노동자들이 같은 방을 번갈아 쓴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와 같은 가건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는 경우도 30%에 달한다. 감염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 쉼, 환기가 아무리 강조되어도 가능할 수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진행한 ‘외국인 노동자 고용사업장 특별점검’에서 기숙사에서의 방역수칙 미흡으로 “침대 간 거리(최소1미터)가 충분하지 않고, 호실 간 이동제한을 하지 않거나, 공용공간 내 음식섭취를 하는” 사례를 ‘적발’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주거환경을 그대로 놔둔 채 적발만으로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대 간 거리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다.
작년 12월 국가인권위에서 발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도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28%에 이른다. 내국인 노동자의 11%에 비하면 세 배에 가깝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열이 나면 격리하고 쉬자는 사회적 제안보다, 아파도 약 먹고 일하라는 사장의 말이 가까운 게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아파도 나온다” 문화를 “아프면 쉰다” 문화로 바꾸자는 제안이 일었지만, 이 제안이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처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쉴 권리조차 이주노동자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취약한 조건을 바꿔가는 과정으로
감염에 취약한 조건을 찾아 바이러스는 이동하며 집단감염 사례가 이어져왔다. 이때 취약한 조건은 3밀(밀폐,밀집,밀접)이라는 물리적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파도 쉬고 싶다고 말할 수 없고 열악한 처우를 그저 수용해야 하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틈에서 바이러스는 더욱 기세를 드러냈다. 코로나19로 새롭게 드러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문제가 재난을 겪으며 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이번 행정명령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조치일 뿐이다. 이 차별은 아직 철회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행정명령의 완전한 철회와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조건을 바꿔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방역당국이 할 일은 이주노동자가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지원하고,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