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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뛰어보자 폴짝] 형율이 아저씨의 슬픈 이야기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이 사람들을 괴롭혀요

여러분은 감기에 심하게 걸려본 적 있나요? 심한 감기에 걸리면, 콜록콜록 자꾸만 기침이 나고 목도 따라 아프고 으슬으슬 몸도 추워지지요. 감기가 너무 심해 학교에 못간 적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감기랑 증세는 비슷하지만, 훨씬 더 위험한 병이 바로 폐렴이에요. 몸이 약한 사람이 폐렴에 걸리면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이 나오고 심하면 피까지 토하게 된대요. 그런데 이 무서운 병에 20번이나 걸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얼마 전 이 아저씨는 가족들과 벗들을 뒤로하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답니다. 이 아저씨는 과연 누구일까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숨어있는 걸까요?

형율이 아저씨가 열심히 일을 하던 때의 모습이에요. 깡마르고 몸이 아파도 아저씨는 열심히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고 다녔답니다.

▲ 형율이 아저씨가 열심히 일을 하던 때의 모습이에요. 깡마르고 몸이 아파도 아저씨는 열심히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고 다녔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아팠던 형율이 아저씨

아저씨의 이름은 김형율이에요. 형율이 아저씨는 올해 서른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펄펄 힘이 넘칠 나이인데도 말이지요. 아저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무척이나 허약했다고 해요. 특히 폐(허파)가 많이 안 좋아서 여러 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어요. 아저씨랑 함께 태어난 쌍둥이 동생도 똑같이 폐가 안 좋아서 두 살도 되기 전에 목숨을 잃었지요. 아저씨는 몸이 아파 학교도 다니다 말다 해서 동무를 사귈 겨를도 없었대요. 동무들도 없는 텅빈 병실에서 외롭게 지내야 했던 아저씨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저씨네 식구들도 몸이 약한 아저씨를 돌보느라 힘이 많이 들었고, 약값과 병원비를 대느라 어려운 살림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해요.

형율이 아저씨는 자기와 동생이 왜 이렇게 몸이 약하게 태어났는지 무척 궁금했어요. 사방팔방으로 알아보다 결국 자신의 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지요. 아저씨의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된 것도 어머니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원자폭탄이 낳은 무서운 비극

원자폭탄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형율이 아저씨의 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동무들의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의 히로시마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대요. 그 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절이어서 살기 힘들어진 조선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강제로 끌려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저씨의 어머니도 부모님을 따라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아저씨의 어머니가 겨우 여섯 살이었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어요. 미국이 큰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 자기의 힘도 뽐내려고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거지요. 원자폭탄은 한 도시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만큼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터진 뒤에도 사람들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방사능이라는 나쁜 물질을 뿜어내는 무서운 무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아인슈타인도 나중에는 이 무기를 만드는 걸 그만두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미국은 이 무기를 만드는 걸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 갔어요. 살아남은 사람들도 폭탄이 터질 때 뿜어져 나온 방사능 재를 뒤집어쓴 뒤, 온갖 병에 시달려야 했구요. 아저씨의 어머니도 이 때 방사능을 맞은 뒤로는 지금까지 계속 몸이 아파 고생을 했답니다.

형율이 아저씨는 원자폭탄과 같은 핵무기 때문에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람들의 아이들까지도 아픈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기처럼 부모님이 원자폭탄을 맞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지독한 병에 걸리고 빨리 죽는 모습을 보게 되었거든요. 또 핵무기가 사용된 다른 전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구요. 그리고 몸이 아파도 치료방법이 없거나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형율이 아저씨는 이 문제를 나라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원자폭탄 때문에 몸이 아픈 환자들을 나라에서 돌봐주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이나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으고, 나랏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아저씨의 주장이 알려지자, 아저씨의 뜻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늘어갔어요. 하지만 지금껏 나라에서는 형율이 아저씨의 주장을 들은 척 만 척 해 왔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았던 형율이 아저씨는 안타깝게도 병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났어요.


아픈 사람은 나라에서 돌봐야 해요

이 슬픈 이야기는 형율이 아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저씨처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저씨의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어서 어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어 몸이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아저씨와 같은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나라가 더 이상 이 분들을 모른 척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에요. 원자폭탄과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거나 팔지 못하도록 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일도 아저씨의 뜻을 기억하는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