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해방 60돌이 되는 해라지요. 그래서 지난 8월 15일에는 유달리 큰 잔치가 벌어졌어요. 하지만 이제야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이웃이 있답니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끊이지 않던 폭격소리로부터 벗어나는 데 꼬박 5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거예요.
54년, 매향리에 평화의 초록 깃발을 세우는 데에 걸린 시간
매향리는 경기도 화성군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랍니다. 작은 마을이기는 해도 농사지을 푸르른 땅도 있고 널따란 바다와 갯벌도 펼쳐진 곳이지요. 매향리가 보듬고 있는 바로 앞 농섬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살기도 하고요.
이러한 매향리에서는 54년 동안 매일매일(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시간이 넘게 쾅쾅 폭격소리가 났습니다. 으리으리한 미군 전투기가 하루에 600번 넘게 날아올랐고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폭탄 떨어뜨리는 연습을 했지요. 한편, 바다 위 농섬을 표적 삼아 폭탄을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연습도 꾸준히 이루어졌고요. 볼록했던 농섬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섬이 되어버렸지요. 매향리도, 그 주민들도 모두 농섬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었답니다. 엄청난 폭격소리에 귀가 먹고 아기를 유산하고 스트레스로 심지어 자살을 하는 이웃이 생기고, 매향리 땅은 폭탄에서 나온 찌꺼기 화학물질로 오염된 거예요.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매향리 주민들은 너무 화가 나 1988년부터 모임을 만들어 자기네 이야기를 주위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결실을 맺은 거지요. 매향리에서 크고 괴로운 소리를 내던 미군 폭격장 문을 닫기로 했거든요! 이제 매향리에서는 더 이상 미군 전투기들의 폭격연습을 알리는 노란 깃발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 대신 '매향리 평화마을'이라고 쓰인 초록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옮겨갈 뿐이지
매향리에 오랫동안 많은 고통을 주던 미군 폭격장은 그대로 사라지는 게 아니었어요.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직도라는 섬으로 옮겨간다고 해요. 매향리에서 울렸던 무시무시한 폭격소리와 고통은 군산시 직도의 것이 되는 거지요.
다른 나라 군대가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 미국 군대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라며 우리나라에 머무르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땅에서 마음껏 전쟁연습을 하고 있지요.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군대를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쟁을 통한 평화, 전쟁연습을 통한 안전은 진짜 평화와 안전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요.
지금 매향리에서는
이제 미군 전투기의 폭격소리는 사라졌지만 매향리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이 참 많아요. 54년 동안 수없이 폭격을 당한 매향리의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시름시름 앓고 있어요. 나무가 아주 빽빽하게 자라서 농섬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지금은 풀 한 포기 없이 어떤 생물도 자라지 못하는 죽은 땅이 되어버렸지요. 농섬과 매향리를 고통의 땅으로 만든 데에는 물론 미군의 책임이 가장 크지요. 그런데 매향리의 자연을 되돌리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답니다.
특히 농섬 곳곳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불발탄(*)을 없애는 문제로 미군과 매향리 주민들은 마주 대하여 버티고 있답니다. 미군들이 매향리 농섬에 남아있는 갖가지 표적들과 불발탄 등을 처리한다며 폭약과 포크레인을 실은 바지선(**)을 끌고 농섬에 상륙하려 한 거예요. 그래서 매향리 주민 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화가 단단히 났지요. '한·미 소파'(***)에 따르더라도, 미군이 땅을 반환할 때에는 세 단계에 걸친 공동 환경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데, 미군들이 마음대로 불발탄을 제거하는 일을 강행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54년 동안 폭격장으로 쓰이느라 망가진 농섬과 매향리의 환경을 건강하게 되돌리는 데 노력하라고, 모두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답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54년 동안 매향리를 가득 채웠던 폭격소리 대신 이제는 평화를 듬뿍 담은 매화향기가 매향리를 감쌀 거예요. 이것은 모두 매향리 주민들 그리고 그 뜻을 함께 한 이들이 평화를 위해 노력한 결실이지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답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길.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할까요? 고통 받는 이들 하지만 목소리 내려 노력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더불어 뜻을 모은다면, 결코 멀거나 힘들지만은 않을 거예요.
* 불발탄_ 발사되지 않거나 터지지 않은 탄알이나 폭탄
** 바지선_ 짐을 실어 나르는 데 쓰이는 바닥이 편평한 짐배
*** 한·미 소파(SOFA;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_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군, 즉 주한미군이 어떠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 군대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회의를 통해 정한 내용. 미군이 머물고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불평등한 점이 많아요.
- 2875호
- 주한미군기지,뛰어보자 폴짝
- 임은주
- 200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