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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국민 유전자 디비의 신호탄

법무부, 범죄관련 유전자 디비 법안 입법예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아래 유전자 디비)를 만들려는 시도가 또다시 시작됐다. 11일 법무부(장관 천정배)가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아래 법안)을 입법예고한 것.

유전자 채취 대상은 살인·방화 등 '특정범죄'와 관련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징역이나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수형자이다. '특정범죄'는 △방화 △살인 △상해치사·폭행치사 △체포·감금 △약취·유인 △강간·추행 △특수절도·강도 △폭력조직 구성·활동 △마약 제조·매매·소지·투약 등으로 광범위하다. 또 상습 강·절도나 강도상해 재범도 포함된다.

피의자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할 경우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당사자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하고, 미성년자·심신미약자·심신상실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을 수 없을 때는 판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채취할 수 있다. 수형자의 경우 '교정시설의 장'이 채취하며 수형자는 이에 응해야 한다.

범죄현장 또한 채취 대상에 속한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체내·외 △피해 당시 착용하거나 소지하고 있던 물건 △범죄의 실행과 관련된 사람의 신체나 물건의 내·외부 △범죄의 실행과 관련된 장소 등이 포함된다.


피의자·수형자·범죄현장에서 유전자 채취

혈액·정액·타액·모발·구강점막·신체조직 등 채취된 '유전자감식시료'를 통해 얻어진 정보는 전산처리되어 '유전자감식정보색인부'라는 이름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아래 유전자 디비)에 집적된다. 정보는 개인식별에 관한 유전자정보로 국한하고 개인의 질병이나 유전적 소인에 관한 유전자 정보는 제외한다. 유전자감식정보의 관리는 수형자의 경우 대검찰청이 피의자와 범죄현장의 경우 경찰청장이 맡는다.

유전자 디비 수록이 끝나면 채취했던 시료와 유전자는 수형자와 피의자의 경우 지체없이 폐기하며 범죄현장의 경우 판결확정 후 폐기한다. 유전자 디비 수록정보의 삭제는 △피의자가 검사로부터 혐의없음·죄가안됨·공소권없음 등의 사유로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무죄·면소·공소기각 판결을 받았을 때 △수형자가 재심을 통해 무죄·면소·공소기각 판결을 받았을 때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로 한정된다. 범죄현장의 경우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면 삭제한다.

법안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 6개월 후부터 시행되며, 시행 당시 수형 중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법무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감식과 유전자 디비는 구별돼야"

이미 검경은 90년대 초반부터 유전자 감식을 실시하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과는 1992년 207건으로 시작해 2004년 1371건을 감식했고 이때까지 누적된 감식건수는 7438건에 이른다. 1994년 유전자정보은행설치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검찰은 1998년 유전자 디비 구축준비를 완료하고 '유전자정보은행설립에관한법률안'을 마련했다. 1999년에는 2억원을 투자해 한국형 유전자 감식기법과 정보은행 설립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이 과정에서 특허도 확보했다. 2002년에는 성폭력 예방을 빌미로 '범죄자 유전자 디비 설립'을 제안했으나 각계의 반발로 좌절된 바 있다.

경찰청의 지휘 감독을 받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1991년 유전자분석실을 설치했고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모두 6만9천건의 감식을 수행했다. 경찰청도 이미 1995년 '유전자자료관리및보호에관한법률안'을 마련하는 등 오랫동안 유전자 디비 설립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2월부터는 검찰이 추진해왔던 '미아찾기 유전자 디비' 사업을 넘겨받아 지난해말까지 미아 9639명과 부모 457명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따라서 이번 법안에서 새로운 것은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를 당사자의 사망시까지 디비에 집적한다는 것이다. 김병수 참여연대 정보인권팀 실행위원은 "법무부는 이번 법안이 통과돼야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개별사건에서의 유전자 감식과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있고 현장에서 발견된 샘플이 있을 경우 법원의 영장을 받아 특정한 사람으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하는 것은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현장에서는 용의자나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진행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범죄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반강제'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이른바 '화성 여대생 실종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4천여명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같은해 7월에는 '서울 남부지역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다는 구실로 구체적 정황도 없이 조선족 수십명의 유전자를 채취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2년 3월 경남 마산에서도 강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600여명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김 실행위원은 "강제적 유전자 디비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 수집·이용·폐기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착점은 전국민 유전자 디비

김 실행위원은 "지금은 사회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범죄인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입력대상이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디비를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일단 디비가 만들어지면 수록대상을 전국민으로 확장하는 것은 손쉽다는 것. 다른나라의 유전자 디비도 살인, 아동성범죄 등 '사회적 정당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른바 '흉악범'에서 시작됐지만 사소한 절도로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처음에는 입력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1999년에는 비폭력범죄를 포함한 107개로 확대됐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교통법규 위반자들에 대한 유전자 채취도 이뤄진다. 2003년 미국 하원은 입력대상을 범죄자뿐 아니라 용의자까지 확장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세계 최초로 범죄자 유전자정보은행을 구축한 영국에서도 체포된 용의자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유전자를 채취할 수 있고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영구 보관하도록 하는 법률이 지난해 4월 통과됐다. 당시 저장된 정보만해도 210만건이었는데 법 통과 이후에는 500만건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영국경찰은 채취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 김 실행위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