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6일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실습생이 비록 표준협약서를 체결하고 현장실습을 수행하지만 각 산업체의 다른 성인 노동자와 동일 또는 유사한 작업 환경과 조건 속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에 의한 노동자에 해당하는지를 노동부에 공개질의한 바 있다.
당시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현장실습이 별도의 교육 과정 없이 업무만으로 이루어지고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며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감독을 받고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며 △사용자로부터 작업도구를 제공받고 △임금도 기본급이 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는 또 노동부가 고시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가 △노동시간 △야간노동 △산업재해 등은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임금, 휴게시간 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준도 없고, 산재보험을 제외한 기타 보험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는 '실습생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해석되는 경우'에도 △최저임금 △노동시간 △휴게시간 △주휴 등 '최소한의 노동기준'은 필요하다며 노동부의 대책을 물었다.
지난 1일 노동부는 네트워크에 답변서를 통해 "직업교육훈련촉진법 등에 의거하여 교육과정의 일부로써 향후 산업에 종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습득을 목적으로 표준협약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현장실습생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노동부는 "현장실습제도의 정책방향 등은 일차적으로 소관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이므로 제도운영과 관련한 일차적인 판단과 제도의 본래취지를 고려한 제도개선여부 등은 소관부처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교육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에 대해 네트워크는 21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습생이라는 신분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미성년 노동자를 맘껏 착취하고 있는 산업체에 '국가 공인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라며 "아예 벼랑 끝에 매달린 실습생들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줄을 단칼에 잘라버렸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현장실습의 문제점에 대해 모처럼 높아진 비판여론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뒤늦게 답변서를 보내온 것 역시 눈치보기의 절정"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실업계고 학생 박남규 씨는 "이미 현장실습을 나간 선배들을 보면 업체에서 야간근로를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고 쉬는 날도 없고 차별이 심하니까 대학진학을 결심하더라"고 말했다. 올해 3학년이 되어 현장실습을 하게 될 박 씨는 "공부한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 나가면서도 착취당하고 산재를 당하면 후유증 때문에 일도 못한다"며 "나가고 싶지는 않지만 선생님이 가라고 하면 안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또 "노동부는 현장실습이 교육이라고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취업나가는 것"이라며 "앞으로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실업계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업계고 교사인 김성진 씨는 "이미 현장실습은 저임금 노동착취의 일환으로 전락했다"며 "노동부가 아니라 '나몰라라부'로 하는 것이 낫겠다"고 꼬집었다. 김 씨는 "나와서 일하고 돈받으면 노동자지 노동자가 별거 있나"라며 "노동자인 학생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부는 답변서에서 "현장실습생이 근로기준법에 의한 근로자가 아닌 경우라면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 파견사업으로 볼 수 없어 파견법을 적용하여 규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가 아니므로 불법파견 여부조차도 따질 수 없다는 것. 이에 대해 네트워크는 기자회견에서 "최근에는 법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 현장실습제도를 마치 중간착취의 텃밭인 양 악용하는 인력파견업체들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실습생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법 개정과 대책수립을 노동부에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