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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과 함께 파란만장한 전국행진

4박5일의 전국행진을 돌아보며

행진이 끝나고 잠시 지쳐버린 몸을 달래기 위한 휴식을 가진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정신없이 잠을 잔 휴식기간 이었지만, 꿈에서도 행진의 기억이 떠오를 정도로 아직도 머릿속, 가슴속 행진의 추억은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4박 5일의 행진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전국을 돌았던 발걸음은 우리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졌는가? 이번 후기를 통해 행진단의 그 소중했던 발걸음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탈학교 청소년, 청소년인권운동을 모색하는 사람이나 혹은 그 첫 발을 담그려는 사람들, 그리고 교육을 고민하는 사범대 학생이 모인 전국행진단, 그 행진의 시작을 알린 것은 교육부 뒤에서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4박 5일 동안 전국의 5개 도시를 방문할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의 출발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바로 전국에서 청소년인권의 돌풍이 불게 하는 것. 더 나아가, 행진단의 메인 구호인 ‘파란이 있는 곳에 더 큰 파란을, 파란이 없는 곳엔 파란을 준비하라’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의 불모지에는 그 시작의 싹을 심고, 청소년인권의 움직임이 있는 곳에는 더욱더 대중적인 움직임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표 속에서 각 지역에서 지역간담회와 학생인권법 홍보를 위한 캠페인이 계획되었다.

행진이 지나간 각 지역에서는 지역 청소년들 및 청소년 관련 단체들과 함께 간담회가 진행됐다.

▲ 행진이 지나간 각 지역에서는 지역 청소년들 및 청소년 관련 단체들과 함께 간담회가 진행됐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인천지역 참석자는 전교조 교사들과 인천도서부연합소속의 청소년들이었다. 인천에서는 전교조 독자적으로는 중앙사업인 아이들살리기운동, 자체 지역사업으로는 학생회임원 성적제한규정 폐지운동을 했고, 2학기에는 시교육위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사업을 펼쳐 나가려고 준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소년주체들이 직접 준비하는 사업은 도서부의 동아리 사업만 있을 뿐 청소년인권운동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민이 들었다. 사실 간담회의 상은 청소년인권운동을 모색하고 있으나, 그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역에서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어떤 행동이 가능할 수 있을까 같이 고민을 하고자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급히 제안을 수정 했다. 우선 전교조에게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학생인권법안 통과 캠페인을 같이 벌려나가자고 제안을 하고, 도서부연합에게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인권침해사례를 조사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확답을 듣지 못했다. 아쉬움이 든 자리였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부평역으로 이동했다. 약간의 착오가 있어 장소의 문제가 있었지만, 부랴부랴 이동을 하고 몇 사람을 사람이 많은 지하상가로 배치하여 선전지를 돌리며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숨 돌릴까 싶었는데 어느 노인 한분이 “부모가 있는데 학생이 무슨 인권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시비를 걸었다. 더 나아가 행진단원 한 명에게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폭력을 가하려는 상황까지 연출될 뻔했다. 답답했다. 아직도 청소년들이 인권을 외쳤을 때 보여주는 당연한 사회적 반응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당연한 외침들의 답이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행진단은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는 저 할아버지가 떠나기 전까지 행진단은 애당초 저녁시간을 훨씬 넘긴 8시를 넘기며 캠페인을 계속하며 우리의 목소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려나갔다.

둘째 날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캠페인을 펼쳤다. 휴일시간과 또한 점심때라 많은 청소년들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좋은 반응을 보여주며 서명을 해주었다. 또한 문자홍보를 보고 캠페인에 참여하러 온 새로운 친구들이 있어 행진단의 기분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어진 간담회는 인천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교조 대전지부 선생님은 대전은 사람들의 관심도 없고 청소년인권운동의 불모지라고 공공연하게 말하시고, 대전지부의 독자적 청소년인권운동 사업이라는 것은 오로지 전교조 중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아이들 살리기 운동’밖에 없다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 역시 대전에서 건설적인 논의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같은 뜻을 조금이라도 가졌던 단체가 전교조를 제외하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우리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오기로 했던 아수나로 대전지부 청소년회원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어 참가하지 못하고, 캠페인에 참여하자는 문자를 보고 처음 찾아온-어쩌면 활동에 대한 고민을 아직은 깊이 하지 못한- 청소녀 3명만 참석했다. 우선 우리는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봤다. 학교의 상황은 어떤지. 그들 역시도 학교 규정이 너무 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연락처를 얻고, 앞으로도 연락을 계속하고, 추후에 한번 청소년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와 얘기를 나누기로 약속하며, 간담회를 정리했다. 너무나 아쉬운 판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인권의 볼모지를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왔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전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진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 행진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빵구나고 터진 타이어 3개를 고치며 도착한 전주에서 또다시, 아침 10시부터 객사에서의 캠페인을 벌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사람이 너무나 없었다. 정말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나 없었고, 그중 청소년들은 눈에 꼽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영화촬영이 있으니 협조를 부탁하는 소식이 들려오자 우리의 계획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행진단은 고민했다. 우선 예정된 행진은 진행하고, 가판대를 각 객사길에 분산 배치했다. 또한 4명씩 조를 나눠 두 명은 선전물, 두 명은 선전판과 서명용지를 들게 하고 각 거리와 극장으로 파견했다. 직접 찾아가는 서명운동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호응도 좋았다. 자기 학교는 두발자유화이지만 다른 친구를 생각하며 서명운동을 해주는 청소년들도 있었고, 지나가던 군인 한 분은 신분 때문에 서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수고한다며 ‘비싼’ 빵과 우유를 사주셨다. 결과는 전날 대전보다 더 많은 372명의 서명. 우리 행진단이 열심히 뛴 만큼의 성과였을 것이다.

이어 시작된 간담회에서는 전 두 도시와 다르게 많은 단체들이 참여했는데, 이 지역에서 유일한 청소년인권단체인 전북청소년인권모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청인모에서 먼저 자신들의 상반기 활동을 소개하고 현재 한 학교에서 적은 수의 회원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역 단체가 이미 구축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이에 다른 단체에서도 호응을 해주었다. 특히 전교조 전북지부는 적극적인 지지를 언급하면서, 청인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전단지 배포에도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물론 도움을 약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청인모의 활동에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는 자체적인 힘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고, 지역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은 청인모가 입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비록 간담회에서는 9월의 공동행동에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전북 청인모를 지원해주겠다는 긍정적 답을 얻어냈다. 앞으로도 지역단체 네트워킹을 통한 청소년 모임이 어떻게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하나의 예를 제시해주는 기대되는 자리였던 것 같다.

행진이 어느덧 반이 지나가고, 드디어 울산에 도착했다. 사실 울산은 기대되는 도시 중 하나였다. 지역에서의 주최단체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조직되었고, 무엇보다 '아수나로' 울산지부에서 열심히 싸워주는 청소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이었을까?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다양한 것 같았다. 울산지역 대부분 단체들은 학생회를 중심으로, 혹은 학생자치를 통해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행진단은 상대적으로 학교를 먼저 학생들이 뒤흔드는 직접행동을 모색하는 것에 그 차이가 있었다. 시간의 한계상 서로의 입장을 더 나누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가 인권이 향유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청소년들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았다.

캠페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특히 청소년들은 큰 호응을 보여주었다.

▲ 캠페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특히 청소년들은 큰 호응을 보여주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행진단은 울산의 차 없는 거리로 이동하여, 캠페인과 집회를 진행했다. 그동안 돌았던 도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나고, 간담회에 참여해 주신 참석자분들이 거의 빠짐없이 캠페인에 함께 하여 행진단의 일손을 덜 수 있었다. 또한 지나가는 청소년, 시민들도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교복을 입힌 유령같은 허수아비에 물감을 칠하는 참여 행사에도 많은 호응을 보였다. 서명을 받는 가판대 곁에서 약식으로 열린 거리 집회에서 같이 자리에 앉아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펼친 율동이나 학교를 풍자하는 공연 등에 관심을 보여 행진단의 기운을 북돋았다. 하지만, 울산시교육청 관계자와 학교주임들이 찾아와 거리를 어슬렁거려 울산에서 참여한 청소년들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고, 서명 가판대 가까이 다가올 수 없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학교? 집? 거리? 아직도 청소년들의 외침이 허락된 공간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새삼스레 든 시간이었다.

드디어 전국행진의 마지막 코스인 대구에 도착했다. 대구. 최근에 학생이 5분을 지각했다고 체벌 2백 대를 가해 파문이 된 O고등학교가 있던 도시이다. 쌓인 피로에 몸이 점점 지쳐갔지만, 행진단은 그래도 대구 시민들에게 청소년인권,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할 중요성을 더 큰 목소리로 전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 속에 행진단은 아침 일찍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늦게까지 만든 피켓을 들고 아침 8시 교육청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을 노려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물론 교육청 관계자들은 어느 학교에서 왔냐는 질문 등을 하며 행진단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2시간 뒤 행진단은 지역단체 청소년들을 조직하여 교육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특히 대구시 교육청이 체벌 대책으로 내놓은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들을 조사해보겠다”라는 안일한 대책을 규탄하고, 체벌에 대한 전면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었다.

행진단은 박차를 가했다. 쉬지도 않고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으로 가 거리 캠페인을 벌였던 것이다. 정말 체력을 뛰어넘는 정신력이었다. 그런 의지에 화답하듯, 예상과는 다르게 대구시민의 참여도 정말 높았다. 서명뿐만 아니라 포스트잇에 정말 자신의 학교사례를 다양하게 써주었다. ‘조일공고, 뺨 때리지마! 부모 욕 하지마!’, ‘사대부중, 두발자유 원함, 차별 즐’ 등등. 아마 답답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그렇게 분출되었을 것이다. 때마침 체벌사건이 일어났던 O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이 서명을 해주며, “제발 학교에서 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는 말에서 나는 청소년들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저 많은 말을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 저 많은 말을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대구에서의 간담회는 단체보다 더 많은 청소년들과 다양한 분들이 참여해주었다. 대구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하시는 분과 청소년단체 ‘우리세상’의 청소년들, 그리고 밀양에서 이계삼 선생님과 함께 찾아와 처음 거리 캠페인을 경험했던 청소년들. 특히 이계삼 선생님의 발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교조 비판해야 한다. 조금 더 청소년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외부에서 비판을 강하게 해야 한다. 학교를 뒤흔들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또한 한 청소년 참가자는 그동안 이런 활동에 관심도 없었고 뜨악하게 바라봤었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져 보겠다고 말해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는 자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수나로 울산지부에서 활동하면서 대구까지 행진을 함께한 청소년은 보수적인 경상도를 바꿀 수 있는 경상도 청소년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을 함께 해나가자고 제안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앞으로 경북, 경남의 운동을 주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파란만장 청소년인권전국행진’이 처음 세웠던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행진단은 평가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지역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의 싹이 터지고 있다는 것을. 곧 그 싹은 소중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열매들은, 청소년인권의 목소리는 서울과 중앙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 목소리가 불편한 ‘누군가’에게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어 더 이상 우리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행진단은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행진단은 각자의 그 위치 속에서, 행진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시민들과 청소년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 파란의 날갯짓을 펼치기 위한 작업들을 해나갈 것이다.
덧붙임

전누리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