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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청소년인권활동, 나도 할 말 있어요”

청소년인권활동의 쟁점들 쏟아진 와글난장-짓다



지난 2월 10일~11일 이틀 동안 ‘청소년인권활동 와글난장 - 짓다’ 행사가 있었어요. 청소년인권활동을 해왔거나 기웃기웃 활동을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 비청소년이 한 자리에 모여 와글와글 한바탕 수다를 떨었지요. 활동하면서 들었던 고민들을 털어놓는 토닥토닥 수다마당, 청소년 내부의 소수자 인권 문제와 마주하는 꼬물꼬물 교육마당, 새로운 활동 전략을 모색하는 두리번두리번 토론마당이 행사의 큰 줄기였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궁금하죠? 모두 다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살짝 맛만 봐볼까요?

# '인권'모임이 왜 이래? → 우리 관계부터 인권적으로!


청소년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모임을 찾아왔지만, 정작 우리 모임이 서로에게 반인권적인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모임 안에도 다양한 권력관계가 숨어있으니까.

먼저 모임 안에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도록 계속 긴장해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어. 대표를 두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모임을 하다보면 영향력이 있고 발언권이 센 사람들이 꼭 생기게 되거든. 활동을 많이 하고 일 처리도 잘하는 사람이 자연히 영향력도 커지지. 그러다 보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초짜 청소년이나 활동 시간이 빠듯한 청소년들은 발언력이 없지. 효율만 생각하다 보면 ‘능력’있는 사람에게 일과 정보, 경험이 계속 편중될 수밖에 없어. 만약 그 사람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싫어하는 사람’이 올 수 없는 날로 모임 날짜를 박아버리는 식으로 독재를 할 수도 있잖아? 더디고 어설퍼도 짐을 나눠지려는 노력이 정말로 중요해. 짐을 나눠지려면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 중요하겠지?

성평등 문제도 있어.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들이 적어. 그러다 보니 남성 위주로 모임이 운영되거나 남성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치우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도맡아하고, 같이 치우자, 남성들은 왜 안하냐고 얘기하는 여성은 왜 그렇게 민감하냐는 비난까지 받아야 해. 그렇다고 다른 남성에게 치울 때 빠지는 남성에게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또 거시기하잖아? 여성활동가들이 좀더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성평등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역할을 나누어 맡으려고 스스로 나서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나이도 마찬가지. 청소년인권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은 대개 나이주의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근데 간혹 보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고 함부로 윽박지르거나 뒷통수를 때리는, 나이주의에 찌든 사람들을 만나게 돼. 성인 단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야. 청소년이라고 무턱대고 반말부터 시작하는 성인 ‘인권활동가’들도 많다니깐. 이건 정말 아니잖아?

# 맨날 서울만 시끄러워ㅠ.ㅠ → 지역 더 뛰어!


청소년인권활동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야. 광주, 전주, 울산, 군위, 안동 등 여러 지역에도 청소년인권활동이 있다구. 내가 있는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보고 싶은데, 맨날 서울만 시끄러워. 서울 중심으로만 계속 활동이 진행되는 건 문제야. 그치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비빌 언덕이 없다는 거. 지역 인권단체가 워낙 적고, 거기다 청소년인권에 관심있는 단체는 더더욱 없어. 설사 관련 있는 단체가 있어도 지원을 받기는 어려워. ‘청소년인권? 뭐 그런 걸…’ 이런 식으로 마인드도 많이 부족하니까, 청소년인권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정도로 늘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지.

청소년인권활동가는 또 어떻고! 지역 인구가 적으니까 학생들도 적고 활동하는 사람 수는 더 적어. 경험자가 없고 활동을 오래 하기 힘드니까 활동 경험이나 역사가 쌓이지도 못해. 활동을 하더라도 활동비를 충당하기도 너무 버거워. 서울이야 토론비나 강연비를 받아 활동비를 모으기도 하지만, 지역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별로 없다구. 지역은 학교에서 하는 단속도 더 빡센데, 청소년인권활동에 대한 규제도 더 심하니까 활동을 하기가 정말 어려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뭔가 뾰족한 해답이 없어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농담처럼 나왔는데……. 지역 청소년인권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누구 한 명은 지역운동에 뼈를 묻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힘들지만 지역에서 모임을 만들려는 노력도 계속 이어져야겠고, 혼자서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의 이야기가 더 많이 오고갔으면 해. ‘와글난장-짓다’ 같은 행사를 지역에서 여는 것도 작은 실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청소년인권에 내 얘기는 없네… → 감수성을 깨워봐


청소년인권 하면 나오는 게 보통 두발자유, 체벌금지잖아. ‘청소년인권=학생인권’이란 등식에 우리도 젖어있고, 그러다 보니 학생이 아닌 청소년, 같은 학생이라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청소년인권을 내세우고 있는 우리들 모임도 비장애, 이성애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고, 여성의 눈으로 청소년인권을 바라보지도 못했어. 그러다 보니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청소년 소수자 문제를 주목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해당 소수자 단체들이 있는데 왜 굳이 소수자 문제를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다루어야 하는 걸까? 그건 말이야, 예를 들어 장애인인권단체가 있어도 청소년을 보호주의적 시각으로 다룰 수 있는 거잖아? 학부모 등 성인 중심으로 모임이 운영되기도 하구. 그래서 장애인인권과 청소년인권이 만나야 해. 10대 장애인의 눈으로 장애청소년의 이야기를 제기하는 게 그래서 의미가 있지. 10대 성소수자, 실업계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도 마찬가지야. 청소년 소수자들이 자기 언어를 가져야 해.

그런데 아직 이들은 주체적인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벌여나가지 못하고 있어. 10대 성소수자들이 나서기 힘든 조건이 분명 있잖아. 우리 모임 안에서도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고, 당사자들이 들어와 있지 않아. 10대 장애인, 10대 성소수자, 탈학생의 시선으로 인권을 이야기하려면, 수면 아래 깔려있는 이 문제들을 끌어올리려면, 뭔가 접점을 찾아야해. 그러려면 먼저 당사자들과 만나는 과정을 거쳐야하지 않을까? 우선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10대 여성,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10대 여성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차이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겪는 공통의 억압에 대해서도 함께 저항해야해. 청소년을 무시하는 사회, 반인권적인 교육과정, 입시 압박 등은 모두가 함께 겪는 문제니까.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야.

# 이런 ‘법’이 어딨어? → 법보다 더 중요한 건


지난해 학생인권법안 통과를 많이 외쳤었어. 근데 ‘이 법만 통과되면 다 해결될텐데, 도대체 언제 통과되는 거야?’, ‘그런 법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이제 곧 졸업인데 그때까지 통과 안 되면 나랑은 아무 상관없잖아?’ 이런 식의 반응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많이 답답해지더라구.

우리들 청소년에게 법이란 늘 금지와 의무로만 가득 차있는 무엇이었어.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지. 헌법마저 무시되는 게 학교의 현실이었어. 그러다 보니 법이 통과돼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체념하는 청소년도 많고, 반대로 이 법만 통과되면 장밋빛 현실이 될 것 같은 섣부른 기대를 가진 청소년도 많아.

법에 대한 환상도, 체념도 다 문제가 있어.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해. 사실 ‘학생인권법안’이 발의라도 될 수 있었던 건 우리 청소년들이 그만큼 거리에서, 학교에서 저항했기 때문 아니었니? 가만히 앉아 법안이 통과되기만을 바라거나, 국회나 언론만을 바라보며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걸로는 부족해. 학생인권법을 만들어놓고 그걸 명분 삼아 오히려 학생인권이 탄압받는 현실을 가릴 수 있으니까. 법보다 더 중요한 건 학교 안에서 직접 부딪치는 일이야.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 학생인권법은 우리의 요구를 결집시키는 계기라는 걸 알아야 해. 그리고 당장은 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더라도 우리들의 저항, 우리들의 직접행동이 우리 인권을 차곡차곡 얻어나가는 발판이 된다는 걸 우리 스스로 알아야겠지?

[끄덕끄덕 맞장구]

‘와글난장-짓다’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소개하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참여한 이들과 나누었던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던 수다의 바다에 다시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다 보면 친구·동료들과의 소통문제에서부터 학교에서 찍히면 고달픈데 하는 걱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고달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부딪쳤을 때의 갈등, 인권모임에서 겪게 되는 반인권적인 경험이 만들어내는 쓰라림, 섣불리 체념하거나 기대하는 친구들을 토닥토닥 격려해야 하는 부담 등 많은 고민과 만나게 되지요. 무엇 하나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고민들입니다.
다른 한편, 이제 학생인권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10대 소수자들의 눈과 언어로 청소년인권을 다시 써야 한다는 요구도 내부로부터 나옵니다. 목이 터져라, 발바닥이 부르터라 ‘학생인권’을 외치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학교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지요. 그런데 또 다른 과제까지 만나게 되니 어깨가 더욱 묵직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작은 변화의 물꼬를 틔웠습니다. 해답이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토닥토닥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니 가야할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년 ‘와글난장’에서는 지금 나눈 고민을 딛고 좀더 자란 청소년인권활동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배경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