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으로 불리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가 7년 형기를 채우고 7일 만기 출소했다. 그가 고문을 가해 조작되었다고 알려진 사건만 해도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민청련 김근태 의장(현 열린우리당 의장) 사건,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 사건 등이 있다. 그는 주특기인 관절 꺾기 등의 고문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피해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경기도경 대공분실 소속이었지만, 뛰어난 고문기술 덕에 다른 지역의 기관까지 출장을 다녔고 그로 인해 정부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주요 훈장과 포장을 받으며 고속승진을 하였다.
1988년 그의 정체가 알려진 후 도피를 시작해 10년 동안 잠적하였으나 납북어부 김성학 씨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2013년까지 공소시효가 연장되자 1999년 결국 자수했다. 지난해에는 그의 고문수사에 의해서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함주명 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최근 법원은 국가와 이 씨가 연대해 14억 원을 함 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과거를 참회하겠다는 그의 출소의 변은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진정 그가 참회하는 길은 자신의 고문 사실을 낱낱이 고백하고 간첩사건과 공안사건에서 자신에게 고문수사를 하도록 지시한 배후를 밝히는 일이다. 그가 출소하면서 배후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누가 그 많은 간첩 사건과 공안사건을 혼자서 단독으로 수사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또 그의 도피를 뒤에서 봐주고 도왔던 드러나지 않은 배후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군부독재정권 시절의 고문의 기억을 밝히는 일은 이 씨 혼자만의 책무는 아니다. 이 씨와 같이 고문수사에 종사했던 공안기관 수사관들, 또 ‘이근안들’에게 고문조작수사를 지시하고 조정했던 배후세력, 이를 통해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해 독재정권의 안정화를 도모했던 자들 역시 역사의 증언대에 서서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은 이제 갓 시작되었을 뿐이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따르면 5·6공 시절에만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100명이 넘는다. 그들은 대부분 20~30년 이상을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정신적·육체적인 고문피해에 시달리고 살고 있으며, 가족들 또한 고통의 시절을 인내해 왔다. 고문피해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과거의 고문수사에 대해 국제인권법의 원칙을 적용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고문 책임자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반인도적국가범죄에대한특례법’이 한시 바삐 제정되어야 한다. 이 법안은 지난해 7월 국회법사위에 회부된 이후 의원들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된 심리 한번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문수사와 같은 반인도적 국가범죄를 단죄하려는 의원들의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또 사법부는 피해자들의 재심 요구를 신속하게 받으들여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직도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는 고문피해자들과 가족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조처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등 어두웠던 과거를 씻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과거 고문피해자들의 진실을 마주보는 데 주저해왔다.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청산함으로써 현재의 인권의 발판을 다질 수 있다. 공소시효 뒤에 숨어있는 ‘이근안들’뿐만 아니라 뒤에서 사건 조작을 지휘했던 어둠의 세력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현재의 희망을 일구어가는 일이다. 지금도 늦었다. 입만 열면 ‘민주화의 성과’, ‘민주화의 완성’을 뻐끔거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민주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바로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인권오름 >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