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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인권의 원칙 잃은 유엔 북인권 결의안

지난 17일(현지 시간)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는 북인권 결의안이 통과됐다. 다음 달 중순에 있을 유엔 총회 표결을 앞두고 있는 이 결의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통과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불참 혹은 기권해온 한국 정부는 이번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투표에 앞서 한국 정부는 “금번 결정이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신장에 기여하는 것”인 동시에 “핵실험 이후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인권분야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구체적으로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한 실질적 배경에 대해 △북 핵실험 강행을 통한 국제 여론 악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한국 정부 초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출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치적 접근으로 인권 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주장해왔지만, 정작 국제 정치의 명분 아래 인권의 원칙을 접고 말았다. 인권의 기본을 무시한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 선출, 유엔인권이사국 선출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대화와 협력’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할 북한 역시 유엔 결의안이 “정치적 모략의 산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는 유엔의 인권옹호 활동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 국가의 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 채택과 같은 방식의 ‘정치적 낙인찍기’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정치적 낙인을 통해서는 당사국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엔의 국가별 결의안과 보고관 제도는 유엔 인권레짐 개혁의 주요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지난 유엔 인권이사회 창립 당시에도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비동맹국가들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유엔의 국가별 결의안 제도에 대해 반대해왔다. 유엔의 국가별 결의안 제도가 강대국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엔은 강대국들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침묵해왔고 강대국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결의안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효력을 갖지도 못했다. 이번 투표를 전후해, 쿠바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유엔 결의안이 유엔헌장과 비동맹운동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수단 역시 인권문제는 결의안 같은 일방적인 수단보다는 상호 존중 속에 대화와 협력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면 이는 즉각 개선되어야 한다. 북 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을 개연성은 높다. 북의 인권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원인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인권침해에 대한 내·외부적 근본 원인만 지적하는 근본주의적 접근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에는 침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편으론 경계해야 한다. 인권은 언제 어디에서든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권을 통한 국제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사회에서 인권 개선의 일차적인 주체는 그 사회 구성원들일 수밖에 없다. 국가 주권과 구별되는 권리로서의 이러한 인민들의 자결권은 인권의 보편성과 함께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인권의 기본 원칙이다. 북 인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인권의 보편성’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비롯한 민간 인권운동진영 등은 한반도 인권의 일주체로서 다른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과 남한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북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남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맥락에 있다. 또 ‘북한 인권’ 담론은 최근 남한 사회의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한편 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한반도 평화 전반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적 생존권을 주장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이제라도 남북의 모든 인권주체들은 분단 모순 해결의 차원에서 한반도 인권 현실에 대해 좀더 주도면밀하게 접근하고 대안적인 인권 상황을 모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