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98년부터 6년여 발전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로 활동(현재는 인권과 극빈에 관한 독립전문가)한 아르준 센굽타(Arjun Sengupta) 씨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들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최근 개발과 인권간의 문제, 발전권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인권오름>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한다.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1) 발전권의 이론
1. 인권으로서의 발전권
발전권이 인권으로 여겨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발전권을 인권으로 인정하느냐(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와 발전권과 관련된 의무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를 구분해야 한다. 법실증주의 전통에서 인권이란 한 사회가 스스로의 권위로 자신에게 부여한 권리이다. 어떤 외적인 권위에 의해 부여되거나 자연적인 또는 신적인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회의 개념에 따라 한 사회 속에서 법을 만드는 권위에 의해 인정됐기 때문에 인권인 것이다. 일단 규범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지면 이들 권리는 사회에 구속력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의 주장을 국가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들과 국제 사회에도 할 수 있다. 유엔은 이런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국제조약을 채택하고, 국가들이 그것에 서명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그것을 비준한 국가들에게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의무를 지우는 등으로 특정한 인권의 의미는 점차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요구한다. 인권운동의 초기 역사에서는 권리에 부응하는 의무가 너무 경직되게 이해됐다. ‘완전한 의무’라 일컬어진 이 관계에서는 실현가능할 경우에만 권리가 권리로서 수용가능한 것이 될 수 있고, 의무자가 의무를 수행할 것으로 증명된 방법이 있는 경우에만 권리는 의무와 관계 맺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경직된 권리관은 권리-의무관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에 굴복하게 됐다. ‘불완전 의무’로 일컬어지는 견해에서는 ‘인권에 대한 요구는 (인권의 실현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실현의 의무가) 제기되는 것’이고, 그래서 권리는 타인, 국가 또는 국제사회 등 그 권리의 이행에 기여할 수 있는 행위자들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떤 요구가 권리로서 인정되려면 그 권리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회적 목표이거나 ‘선언된 권리’ 또는 ‘추상적 권리’에 머물 수 있다. ‘불완전 의무’의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권리의 실현가능성은 구성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유효한 권리’가 재판할 수 있는 ‘법적’ 권리로 전환되는 입법이 그런 절차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다양한 의무자를 구속하는 합의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은 많다.
인권은 모든 국가, 시민사회, 국제사회가 성취해야 할 보편적 기준과 규범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런 권리들을 성취할 수 있기 위한 불가침의 의무를 이들 모두에게 부과한다. 발전권을 인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적용성과 불가침성을 가진 권리의 지위를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발전권의 실현을 위해 국가적 및 국제적 자원과 능력을 최우선 순위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사회기관, 국가, 국제사회에 발전권을 실현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2. 발전권의 내용
발전권은 발전의 과정을 언급한다. 발전의 과정은 인권의 실현으로 귀결돼야 하고, ‘권리에 기반한 접근’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란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는 것으로 참여적이며, 비차별적이고, 책임성이 있으며, 의사결정과 발전과정의 열매를 공유하는 데 있어 평등한 투명한 과정이다.
발전의 목표는 의무자가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는 권리소유자의 요구 또는 권리의 시각에서 표현돼야 한다. 유엔 발전권 선언은 발전권 실현의 일차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발전권을 유효하고 구체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권리들이 적절한 사회 제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의무 수행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발전권의 내용은 유엔 발전권 선언에 근거하여 분석할 수 있다. 선언 1조는 “발전권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기에 모든 인간과 민족들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 발전에 참여하고 이에 기여하며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 속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
여기서 세 가지 원칙이 나온다. 첫째는 불가양성이다. 발전권은 빼앗기거나 협상될 수 없다. 둘째는 발전의 과정을 인권의 실현과정으로 정의한다. 셋째는 발전과정에 ‘참여하고 기여하며 향유할 수 있는’ 권리의 용어로써 발전과정을 정의한다. 이런 권리를 의무자는 보호하고 증진해야만 한다.
선언의 전문에 있는 발전에 대한 정의는 “포괄적인 경제·사회·문화·정치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에 대한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선언 2조 3항에 따르면 국가는 위에서 말한 발전과정을 목표로 국가발전정책을 공식화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선언 8조는 이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기본적 자원, 교육, 보건 서비스, 식량, 주거, 고용 그리고 소득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모든 사람의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하고 “여성이 발전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보장하는”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또한 “모든 사회적 부정의를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경제·사회적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
3. 발전의 ‘과정’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
발전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는 발전, 소득분배 없는 산업화, 소규모나 비공식 부문이 주변화되는 발전 등. 관습적인 의미에서는 이 모든 것이 발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평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한 인권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없다.
부와 경제력의 집중으로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제성장, 사회발전의 지표나 교육, 보건, 성별균형에서 어떤 개선도 없는 경제성장, 인권기준을 존중하는 환경 보호가 없는 경제성장,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정치적 권리의 침해와 결합된 경제성장은 인권적인 발전을 실현할 수 없다.
물질적 상품 생산과 시장에서 잘 팔리는 서비스의 성장에 여념이 없는 경제 발전에 대한 통상적인 접근법과 발전권의 접근은 상당히 다르다. 발전권은 형평과 정의의 과정을 의미한다. 발전권 선언을 논의하고 채택하는 과정에서 발전권의 지지자들이 요구한 것은 형평과 정의에 기초한 경제적 및 사회적 질서였다. 세계 경제에서 ‘가진 것 없는 나라들’은 부유한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결정의 권리와 이익의 분배 둘 다를 평등하게 공유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가 경제 내에서도 인권으로서의 발전은 형평성에 굳게 뿌리박아야 한다. 발전권이 인권이라는 요구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발전 과정에 대한 요구이다.
발전권에 따르면 형평과 정의에 대한 고려가 발전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빈곤은 빈민의 권한을 강화하고 극빈지역을 개선함으로써 감소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발전정책을 통해 생산구조가 조정돼야 한다. 정책의 목표는 전반적인 생산의 성장 등 여타 목적들에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면서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가능해보이는 최대치보다 성장 수준이 낮을 것 같다면, 형평성에 대한 배려를 위해 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참여적이어야 한다. (발전권의) 수혜자들이 충분히 참여하는 속에서 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수준의 복지를 누릴 수 있으려면 구호품이나 보조금을 통한 단순한 소득의 이전은 옳은 정책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할 기회를 제공받거나 자영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며, 이것은 시장의 힘에 단순 의존함으로써 보장될 수 없는 활동들을 요구한다.
발전이 단지 소득의 증가만이 아니라 교육, 보건, 사회적 발전과 인간발전의 확산이라는 주장은 국민총소득(GNP)을 최대화하려는 원칙들에 설득되었다. 1인당 생산의 증가가 인간에게 자기 환경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주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유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철저히 규명하지 못했다. 기회의 ‘형평’을 보장하기 위한 진지한 행동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국민총소득이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개인들’이 자신들의 환경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채택된 구체적인 정책들이 없고서는 자유가 국민총소득과 함께 자동적으로 증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틀이 또한 인간발전접근법에 도입됐다. 아마르티야 센(Amartya Sen)은 발전과정을 “실체적 자유의 확대와 동등시되는 복지의 확대”이자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유형을 이끌 수 있는 능력(capabilities) 또는 소중히 여길 이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의 확대”로 정의했다. 이런 능력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자유야말로 발전의 ‘구조적 역할’이자 ‘수단적 역할’ 속에서의 발전의 ‘일차적 목적’이자 ‘원칙적 수단’이다. 여기서 “능력”이라 불리는 것은 좋은 건강상태에 있는 것, 교육받는 것,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 자유롭게 말하는 것, 자유롭게 결사하는 것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하거나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발전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유형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실체적 자유의 확대가 된다. 발전에서의 이런 능력은 그 능력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교육받고 건강하면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시민·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민의 자유로운 기관은 이런 과정에 필수적이다.
발전권은 인간발전 개념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인간발전에 대한 권리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발전이란 실체적인 자유를 확대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인권을 실현하는 발전과정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인간발전이 인권으로 주장되면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된다. 이것은 단지 발전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성취돼야하는 방식인 것이다. 목적이 인권을 실현하는 것이자 이를 실현하는 과정 또한 인권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모든 인권의 특질을 가져야 한다. 즉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형평과 참여의 개념을 존중하는 것이다.
발전권의 실현은 인간발전의 증진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제시하는 인간발전지표같은 것들은 대개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 문해력, 학령기 등의 보건·교육 지표들을 조합한다. 그러나 이런 지표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런 지표들이 어떤 방식으로 증진됐는지, 또는 인권을 실현한 것인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그 결과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다양한 사회 정책들의 결과물에 초점을 뒀다. ‘인권적 사고’는 이러한 산출의 성격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것이 나오게 된 방법에 대해서도 유념한다. 이런 점에서 발전권의 접근은 인간발전에 대한 접근을 그 안에 포함하는 것이다. 발전권은 인간발전의 과정을 인권의 기준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후 이어질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재판가능성
이행 감시
집단권 대 개인권
자원의 제약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발전의 과정
과정으로서의 발전권의 부가가치
<발전권의 실천>
발전 원조
발전 계약
실례가 되는 프로그램 요소
경제 성장의 중요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재판가능성
이행 감시
집단권 대 개인권
자원의 제약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발전의 과정
과정으로서의 발전권의 부가가치
<발전권의 실천>
발전 원조
발전 계약
실례가 되는 프로그램 요소
경제 성장의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