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주>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은 그동안 관계당국으로부터 감시와 격리의 대상이었고 비감염인으로부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감염인들의 인권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누려할 권리로부터 그들이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포와 격리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에이즈예방법과 관련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꼭 필요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감염인들에 대한 비감염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도 조금씩 깨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와글와글 깔깔]은 에이즈인권주간 포지티브라이츠(Positive Rights) 문화행사에서 공연된 <파워인터뷰>의 극본을 싣는다. 인권을 외치는 감염인들의 목소리에 두 귀를 닫고 감시와 격리, 공포의 정책만 고집하는 관계당국의 태도를 꼬집었다.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은 그동안 관계당국으로부터 감시와 격리의 대상이었고 비감염인으로부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감염인들의 인권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누려할 권리로부터 그들이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포와 격리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에이즈예방법과 관련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꼭 필요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감염인들에 대한 비감염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도 조금씩 깨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와글와글 깔깔]은 에이즈인권주간 포지티브라이츠(Positive Rights) 문화행사에서 공연된 <파워인터뷰>의 극본을 싣는다. 인권을 외치는 감염인들의 목소리에 두 귀를 닫고 감시와 격리, 공포의 정책만 고집하는 관계당국의 태도를 꼬집었다.
나기자 : 안녕하십니까?
오늘 인터뷰는 아주 어렵게 모셨습니다.
불철주야 어떻게 하면 감염인들이 조용히 살아주나, 걱정하고 고민하시는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인 너시민 씨 나와주셨습니다.
너시민 : 정부 고위 관계자 너시민입니다.
나기자 : 바쁘실텐데, 아주 어려운 발걸음 해주셨습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십니까?
너시민 : 그러지 않아도 요즘에 감염인들이 말이 많아져서, 다른 고위 관계자들과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 조용히 시킬까 하는 1억짜리 연구 프로젝트를 하나 발주하라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나기자 : 아, 쓸데없는데 돈 쓰시느라 정말 바쁘시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말들이 많아진 건가요?
너시민 : 아니, 이 사람들이 인권이네 어쩌네 하면서, 스멀스멀 사회로 기어들어오려고 하는거죠. 정책에 감염인이 참여해야 한다고 하질 않나, 병원에서도 진료거부 하지 말라고 하질 않나, 익명으로 보고하라고 하질 않나, 직장도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아,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조용히 살라고 치료제도 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불안하지 않게 좀 찌그러져 있으면 안됩니까? 우리가 왜 감염인 지원해주겠습니까? 병 가진 놈들은 좀 지들끼리나 만나면서 우리 이 깨끗한 사람들, 우리들하고는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거 아닙니까? 요즘 불안해서 잠이 안 옵니다.
나기자 : 왜 그렇게 불안하신 거죠?
너시민 : 무섭잖아요. 사실 HIV가 그렇게 쉽게 전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감염인들하고 같이 잘 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해이해질 거 아니예요. “HIV는 무서운 거다”, “에이즈 걸리면 신세망친다”고 해야 사람들이 조심할텐데…….
나기자 : 아니, 그러면 이번에 정부도 감염인 인권증진이 중요하다면서 법도 고치고 하던데, 그건 무슨 꿍꿍이신거죠?
너시민 : 인권은 무슨 인권? 우리야 좀 조용히 있으라고 당근 주는 거지. 걔네들 사람취급하면 큰일납니다. 우리가 고친 거요? 그거 생색은 나지만 효과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런 게 저희가 몇십 년 동안 갈고 닦은 원천기술이라는 거 아닙니까?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제 취미가 낚시예요. 한마디로 낚인거죠.
나기자 : 그럼, 법을 고치고 중요한 정책결정을 할 때 감염인을 만나시거나 하지는 않는 건가요?
너시민 : 걔들이 뭘 알겠어? 좀 만나주는 척하는 거는 밑에 애들 시켜서 입이나 막으라고 그러는 거고, 중요한 결정은 국민의 정서를 반영해서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거죠. 사실은 말이지, 우리끼리 얘기지만 걔들 좀 어디다 가뒀으면 하는 게 우리 마음이지. 세상 무서워서 그렇게 쓰질 못하는 거지. 잘 모르는가 본데, 알고 보면 우리 법은 실제로 감염인을 교묘하게 가둬두는 거거든.
근데 이것들이 이걸 눈치 채더라구.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에이즈법 조금 몇 줄 바꾸면서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하고 말로 떠들어 댄거야. 사실 이번에 들어간 익명검사 그거, 원래 지침에 있던 거야. 그리고 직장에서의 차별금지. 사실 이거 제대로 안되는 거거덩. 어떻게 감염인보고 평범한 직장 맘대로 다니라고 해? 그냥 입발린 소리지. 그거 할려면 직장에서 에이즈 검사를 안하게 하거나 아니면 결과통보를 본인에게만 해주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진짜로 감염인들이 세상에 나와서 돌아다닐 거 아냐. 그러면 큰일 나. 무섭잖어.
나기자 : 언제까지 그렇게 가둬두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왔는데, 왜 감염인들은 계속 늘고 있는 건가요?
너시민 : 그야 모르지, 그래두 우리 칭찬 많이 받았어. 다른 나라보다 감염인수가 적잖아. 국민들한테는 많이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선전해서 무섭게 조심하라고 해놓고, 예산 딸 때도 그래야 하지만, 국제회의 나가서는 자랑하는 거지. 우리가 인권우선의 정책을 펴서 이렇게 잘된다고 말이야.
나기자 : 밖에 나가서는 인권우선정책을 편다고 자랑하시는 거 보면 이게 창피하기는 하신가보네요? 그렇게 감염인들 입 막는다고 치료비 주고 있지만, 실상 2000년 이후 신약 10개 중에서 한국에 수입된 건 2개밖에 없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감염인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생색내기에 불과하구요. 국민들한테는 감염인들이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되는 것처럼 편견을 조성하구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우리 감염인과 국민들이 예방에 힘쓸 수 있겠어요? 에이즈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건데, 감염인들은 자존감도 없고 자원도 없고, 국민들은 감염인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고…….
너시민 : 우리는 그런 근본적인 건 생각 안 해요. 그런 거 하려면 골치 아파. 티도 안 나고. 그냥 지금 국민들 정서, 그거에만 부합하도록 해야 욕도 안 먹고……. 사실 감염이 더 늘어난다고 내가 걱정할 거 있나?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난 꿈이 큰 사람이에요. 이 자리는 다 거쳐가는 자리야. 어떤 놈인지 똥줄 좀 타겠지, 뭐.
(띠리리링 띠리리링)나 전화 좀 받고.
뭐라고? 보고서 글자 포인트를 12로 바꾼다고? 아니,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11포인트에 장평 95, 자간 -5라는 거 몰라? 뭐? 그게 요즘 추세하고 안 맞는다고? 뭐, 그렇다면 두어 차례 관계 고위자 회의를 해야 되겠네. 뒷풀이는 한우 갈비집으로 잡어. 꼭 국산 한우인지 확인하고. 어, 그래. 요즘 광우병 무서워서 말이야. 알았어. 곧 간다 그래.
나 가야 되는데. 급한 회의가 있어서. 나 지금 나갑니다.
나기자 : (당황하며)너시민 씨, 인터뷰 하다가 어디가시는 거예요? 너시민 씨!
아니 이 너시민 씨가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에서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하다”라고 말한 그 사람이 아니었군요. 사람 잘못 불렀잖아요!! 오늘 <파워인터뷰> 여기서 마칩니다.
덧붙임
변진옥 님은 에이즈예방법대응공동행동과 나누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