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싹을 틔운 지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인권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영역도, 교육 주체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인권교육의 ‘붐’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좋아라’하기에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인권교육의 원칙에 반하는 교육을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면서 오히려 인권교육의 힘과 가능성을 왜곡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교육과 인권교육이 아닌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인권교육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키기도 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는 갈 수 있겠지만 인권교육은 모로 가면 아예 인권교육의 길을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 꼼꼼히 따져가며 인권교육의 길로 들어서보자.
날개달기 : 알쏭달쏭, 갸우뚱~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과 물을 찾아 산과 바다로 떠나는 대신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으로 더위를 이겨보겠다며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7월 30일부터 3박 4일 동안 성공회대 평화인권센터가 진행한 ‘교원인권감수성향상 기본과정’에 교사들이 참여한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교사들이 학급에서 아이들과 함께 인권교육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며, 인권교육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게 이번 교육 참여의 동기였다.
우선 인권교육을 진행하려면 인권교육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만약 인권교육을 사회에 잘 순응하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드는 교육 정도로 이해할 경우 인권교육 프로그램도 그러한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권교육에 대한 개념이나 원칙에 대한 오해가 교육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교육을 하려는 꿈틀이에게 인권교육에 대한 원칙과 방법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실에서 인권이 박탈된 사람들이 권리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억압의 구조를 변화시켜내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권교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것도 인권교육이야?’라며 알쏭달쏭, 갸우뚱거려지는 교육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인권교육의 개념과 원칙을 좀더 구체화하는 활동을 해 보았다.
더불어 날개짓 : ‘인권교육 돋보기’로 꼼꼼하게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모둠별로 각각 한 가지씩 나눠준다. 그런 후 ‘인권교육 돋보기’로 살펴본 프로그램이 인권교육의 원칙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추가해야 할 교육 내용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큰 종이에 정리해서 발표한다.
장애인권을 주제로 한 ‘사이버 교육’은 인권교육일까? “인권교육은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금과 같이 혼자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진행하는 사이버 교육은 인권에 관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인권교육일 수 없다.” 사이버 교육이 참고자료는 될 수 있지만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인권교육이 될 수는 없다며 꿈틀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렇다면 사형제도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눠 토론을 하는 수업은 인권교육으로 적절할까? “사형제도는 극단적인 폭력일 뿐이에요. 아이들이 우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 수 있도록 사전에 교육을 해야 해요. 그런 후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모의 법정을 진행하도록 해요.” 꿈틀이들은 사형제도 자체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권의 침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인권교육의 원칙을 잘 이끌어냈다. 그런데 ‘모의법정’이라는 방식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다. 모의법정을 통해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게 된다면 그것도 인권교육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논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인권교육은 그 결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꿈틀이가 더 살펴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럴 때 꿈틀이는 인권이 다수의 지지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임을 인권교육을 통해 알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체험교육’에 대해서도 꿈틀이들은 “장애인을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거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야 함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칫 놀이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체험 후에도 꿈틀이가 장애인을 동등한 인권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필요한 시설이나 구조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이나 이해가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며 나아가 이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구조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인권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어 :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인권교육과 인권교육이 아닌 것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 마치 ‘진품’과 ‘짝퉁’을 가려 다른 교육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인권교육인지 아닌지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육 속으로 인권교육이 스며들게 할 수 있으리라. ‘어쩔 수 없어’라거나 ‘이게 최선이야’라며 현실의 벽 앞에 스스로를 가두는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로 강조되면서 인권의 잣대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바꾸는 것이 바로 인권교육과 인권교육이 아닌 것의 차이를 가려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 66호
- 인권교육, 날다
- 영원
- 200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