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강사 위탁교육기관 선정 결과에 관한 의견서
1. 선정 결과는 애초 이번 사업이 무리한 계획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인권교육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는 지난 7월 23일 '인권교육강사 능력향상과정 위탁기관' 선정 사업과 관련한 비판적 의견을 담은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당시 질의서를 통해 우리 네트워크는 이번 위탁기관 선정 사업과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위탁기관 선정 사업의 목적과 선정 기준이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인권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인권 강사'가 아닌 '인권교육 강사'의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제대로 선정될 수 있는지가 의문이라는 것.
둘째, 특히 경찰, 검찰, 교정공무원 등 법집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참여형 인권교육 프로그램이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경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 또는 단체,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위탁 교육기관 선정은 인권교육에 대한 중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위탁 교육기관을 선정하기에 앞서 법집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 예고된 2박3일간의 짧은 교육 일정으로는 인권교육 강사를 전문적으로 길러낼 수 없으므로 장기적인 양성 계획을 밝혀달라는 것.
위와 같은 네트워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28일 다음과 같이 답변하면서 이번 사업을 강행했다. 첫째, 참여형 인권교육의 저변이 미약한 현실에서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인권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구분하는 실익이 크지 않고, 심사와 협상 과정에서 참여형 인권교육에 대한 고려가 적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 둘째, <경찰인권교육방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고, 응모기관과의 협상을 통해 인권교육의 방법론을 보완하도록 하겠다. 셋째, 참가자들에 대해 추후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번 위탁기관 선정 결과를 보면, 우리가 지적하고 우려했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네트워크의 의견을 일정 부분 수렴하여 응모 기관이 제출한 교육 계획서의 보완을 요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충실하고 입증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교육의 전문성을 구축하지 못한 기관과 짧은 기간 협상을 통해 교육 내용을 보완한다는 것은 무리한 계획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2박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내용을 무리하게 끼워넣어 오히려 교육효과를 반감시키는 계획이 잡히게 되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가볍게 치부하면서 인권교육의 원칙을 훼손한 데 대해 우리 네트워크는 심각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
2. 계획된 교육내용으로는 결코 인권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
위탁기관으로 최종 선정된 방송통신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인권'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지는 모르나, '인권교육'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은 전혀 갖추지 못한 기관이다. 그 결과, 전체적인 교육 일정에 인권교육의 원칙과 방법론이 체계적으로 녹아들어가도록 배치하지 못한 채, 단지 강사들의 '강의와 토론'이라는 매우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교육 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교육' 강사들을 교육한다는 간판을 내걸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인권 워크샵'과 구분되지 않은 교육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교육으로는 참가자들에게 해당 분야의 인권 지식과 경험을 접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참가자들로 하여금 인권교육에 대한 감수성과 원칙, 방법론을 배우고 익히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해당 분야에서 연구와 상담, 사건 해결 등을 담당해 온 내·외부 전문가들이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주제들이 짧은 강연의 형식으로 전달되면서 이들의 소중한 지식과 경험마저도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인권 주제가 참여형 프로그램 안에 녹아들어가 참가자의 감수성을 증진시키는 인권교육 프로그램으로 볼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을 내놓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책임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분야와 법집행분야의 인권교육 강사를 함께 교육할 기관을 무리하게 공모하지 말았어야 한다. 학교 분야와 법집행 분야 인권교육의 발전 정도가 상이함을 고려하여 두 분야를 구분함으로써, 이미 학교 인권교육 분야에서 오랜 연구와 고민을 진척시켜 왔으며 현장에서 실험해 온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어야 한다. 또한 법집행 분야의 경우에는 위탁교육기관을 선정함으로써 국가인권위원회의 책임을 외부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법집행 분야 인권교육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충실한 연구를 먼저 진행했어야 한다.
3. <경찰인권교육방법>도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법집행 분야의 경우 교육기관 선정에 앞서 인권교육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네트워크의 지적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인권교육방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음을 들어 이번 선정 사업이 무리한 계획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경찰 인권교육 지침서인 <경찰인권교육방법> 역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으며, 지침서에 담긴 프로그램들의 효과가 얼마나 검증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이 지침서는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해 온 인권교육 지침서 가운데 매뉴얼북으로서의 체계와 구체성을 비교적 충실하게 갖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매우 일반적인 범주에서 인권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과 인권보호 방법을 다룬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을 뿐, 법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개별 프로그램들과 긴밀한 연관 속에 배치되어 있지 못하다.
인권보호 프로그램을 제시한 2부의 경우, 경찰들 상호간의 의사소통 능력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짜여져 있을 뿐,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당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예를 들어 '에이즈 게임' 프로그램은 경찰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높이며 과학적 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으나, 피의자의 인권에 관한 감수성을 높이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불명확하다. '청소년을 대하는 10대 원칙 정하기' 프로그램 역시 청소년을 '인권의 주체'로 바라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잘못된 지도로 청소년들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밖에 전달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인권감수성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여성' 관련 인권 감수성 프로그램들을 보면, 성역할 고정관념을 다룬 프로그램만 몇 가지 제시한 뒤, 곧장 성폭력 피해 사례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짜여져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여성을 인권의 주체로 존중하고 수사과정에서 여성들이 당면할 수 있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변화 가운데 매우 부분적인 일에 불과하다. 인권감수성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는, 그들을 인권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없이는 길러질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지침서가 제시하고 있는 인권감수성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갈등해결능력 향상 프로그램의 경우는 비교적 충실하게 잘 짜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피의자라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얼마나 고려하여 짜여진 프로그램인지 의문이다. 갈등해결능력은 한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경찰 조직내 다양한 갈등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로서 갈등해결능력 프로그램을 다룬다면, 경찰과 피의자의 관계를 보다 충실히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과는 별개로도 이 지침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동성연애자, 매춘부(p.96∼97)라는 반인권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 △경찰의 인권보호 역할을 "약하고 불쌍한 어린 미성년자들을 매매춘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고 악덕 성인 업자들을 혼내준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등 인권의 주체를 구제의 대상으로 대상화하고 있는 점(p.101), △성폭력 피해자와 관련한 상황 예시에서 "조신하지 못한 행실이나 경찰에서의 오만한 태도 등 Z양을 동정하고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담당형사"라는 식의 남성중심적·경찰중심적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는 점(p.138) 등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세련되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제시되는 교육자료에 편견이 들어가 있다면 성공적인 인권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지침서가 '인권교육 지침서'의 이름을 달고 현장에 배포되고 이용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지침서를 배포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적한 부분을 보완하고 잘못 사용된 반인권적 용어들을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현재 일정 기간 연구 노력을 거쳐 그나마 개발된 법집행분야 인권교육 프로그램도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인권교육에 관한 고민을 기울여오지 않았던 외부 기관을 선정하여 무리하게 교육을 강행하는 것은 실패를 내정할 수밖에 없다. 설령 경찰 인권교육 프로그램이 훌륭했다 해도 검찰, 교정시설은 각기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는 기관인 만큼, 경찰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곧장 검찰과 교정 공무원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하라.
우리는 9월과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위탁교육의 전 과정까지 충실히 모니터하여 향후 최종적인 평가 결과를 다시 한번 제출할 계획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향후 인권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인권교육 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덧붙여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에 치중하기보다 인권교육의 원칙을 존중하면서 장기적인 호흡으로 인권교육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에 주력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2004년 9월 1일
인권교육네트워크 (직인 생략)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