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는데…’
‘인권교육에 쓰는 자료를 하나하나 만들어서 할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야.’
이런 고민은 인권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만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제기되는 인권의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인권교육을 오래 해온 사람들에게도 늘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기본적인 활동자료에 대한 기다림은 너무도 오래됐다.
숨 고르기 : 이제 같이 해볼까?
인권교육 워크숍에 참여하고 실제 교육을 해 온 돋움이라도 다양한 인권의 주제·문제를 정확히, 미리, 모두 파악하고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인권교육을 계획하더라도 프로그램을 짜고, 적절한 이미지를 찾아내고, 도움이 되는 읽을거리를 찾는 것이 녹녹치 않기에 돋움이 혼자 준비하는 ‘나 홀로 인권교육’은 쉬이 지치게 된다.
물론 프로그램화 된 것이 인권교육 활동의 전부일 수 없고 꿈틀이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가 인권교육의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학교나 공부방 같은 교육현장에서 인권교육의 문을 두드릴 때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꿈틀이의 이야기를 풀어낼 그릇이다. 그런 점에서 인권교육 프로그램과 이야기를 엮은 『인권교육, 날다』는 하나의 그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날개짓 : 인권돋보기
돋움이를 북돋고, 실천을 담보하는 인권교육에 대한 긴장은 구체적인 문제 앞에서 두드러진다. 인권교육이 단지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는 말로 끝나지 않고,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네? 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등의 질문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인권문제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강권 같은 사회권이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권리’라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 ‘돈 없으면 병원에 못 가!’라는 현실을 뛰어 넘도록 만드는 어려운 일이 인권교육에 기대되는 것이다.
『인권교육, 날다』에 실린 <병원도 수술이 필요해>라는 프로그램에도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 돈 있는 사람은 치료를 받고, 돈이 없는 사람은 병원에 못가는 것이, 불쌍하지만 당연하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개인이 저마다 알아서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하는 권리임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병원도 수술이 필요해>는 의료체계가 서로 다른 병원을 체험하는 활동이다. 그룹별로 치통을 앓고 있거나, 복통, 눈병을 앓고 있는 ‘환자쪽지’를 나눠 갖고, 꿈틀이 모두 환자가 된다. 이들 그룹은 모두 ‘돈벌어 병원’, ‘멀었네 병원’, ‘하하하 병원’을 차례로 돌며 진료를 받는다. 각각의 병원은 서로 다른 나라들의 의료체계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환자 역시 서로 다르게 진료를 받는다. 또 ‘환자쪽지’에는 직업과 소득 등의 조건도 서로 다르게 적혀 있어, 같은 병원일지라도 환자마다 진료의 내용이 달라진다. 의사 역할을 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대본은 각 병원의 의료체계에 맞춰 쓰여 의사 역할을 맡은 돋움이를 도와준다.
‘돈벌어 병원’에서 쫓겨난 환자라도 ‘하하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돈벌어 병원’은 개인보험 환자만 진료하고 국민보험환자는 진료하지 않지만, ‘하하하 병원’에서는 모두 치료를 해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하하 병원’에서는 환자가 먹는 음식이나 일하는 곳의 환경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쓰고, 환자가 직장에 제출할 수 있는 소견서를 의사가 자발적으로 써준다. ‘하하하 병원’에서는 소득이나 보험 여부에 따라 진료 받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전체적인 생활에 대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병원도 수술이 필요해>는 국민보험, 개인보험 등의 의료체계에 대한 낯설고도 일방적인 설명을 피하기 위해, 또 ‘하하하 병원’의 전체적인 보살핌을 경험하기 위해 체험활동으로 구성이 됐다. 이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건강할 수 있는 것이 권리’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꿈틀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조건에 따라 차별적인 진료 체험을 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회권 관련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나 정보인권 등 새롭게(하지만 이미 등장해 있는) 제기되는 인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더 많이 개발되고 쓰일 수 있어야 하는데, 『인권교육, 날다』에도 한 두 가지씩밖에 제시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토닥토닥 마무리
인권교육이 민간에서는 10년이 넘고, 국가차원에서도 수 년을 넘겨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인권교육과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인권교육, 날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차이·차별, 평화, 자유, 건강, 정보 등의 프로그램은 개별적 수준과 단계를 고려해 구성된 것이 아니다. <인권 맛보기>와 <인권 돋보기>로 구분하고 있지만, 조건과 상황에 따라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교육에서 담고자 하는 방향은 ‘토닥토닥 마무리’로, 꼭 필요한 자료는 <활동자료>로 인터넷에서 다운 받을 수 있어, 실제 교육을 하는 돋움이의 어깨를 한결 가뿐하게 한다.
한 번의 교육,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나눌 수 있는 인권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것이 한계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꿈틀이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똑같은 인권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다른 이야기를 꿈꿀 수 있으니까. 『인권교육, 날다』의 자유로운 변형이 진짜 날아오르는 방법일 수 있다.
덧붙임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