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6일 창간한 <인권오름>이 100호를 발행하고 곧 2주년을 맞습니다. 인권이 사람들의 삶을 아늑하게 품을 수 있기를, 인권의 주체들이 인권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인권이 부당한 현실을 뚫고 굳세게 솟아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년 동안 조용히 걸어온 길, 그 길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조금 느린 호흡으로 걸어가면서, 더욱 많은 분들과 찬찬히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인권오름>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어느 하루라고 인권활동가들을 몰아세우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2년 사이 한국의 인권 현실을 크게 후퇴시킬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나 FTA와 같은 굵직한 사안들이 한국 사회를 휩쓸었고 얼마 전 대선을 거치며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정권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은 가파르게 한국사회를 치닫고 인간의 자유는 기업의 자유에 저당 잡히고 차별을 넘어 노골적인 혐오마저 날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에서 <인권오름>이 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가끔은 맥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인권소식을 단순히 전달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같은 소식이라도 진보적 관점으로 뜯어보려는 노력이 행여 누구든 하는 이야기라도 하고 또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빛깔로 전하려는 노력이 행여 분명한 주장일수록 긴장하는 권력에 뭐라도 하나 끝장을 보자며 달려드는 기세를 스스로 누그러뜨린 것은 아닌지, <인권오름>을 발송하는 순간이면 마음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삶살이 가까이에서 나지막이 인권이야기를 전하려는 <인권오름>의 노력은 많은 독자 분들과 만나 작지만 끈질긴 힘을 얻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부족하지만 사회 구석구석에 인권의 렌즈를 들이대겠다는 각오는 많은 인권의제들을 끌어냈고 진보적 관점을 벼리겠다는 욕심은 인권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의 안개를 한 치만큼은 걷어냈다고 스스로 토닥거려보기도 합니다.
이제 <인권오름>은 다시 한 봉우리를 걸어가려 합니다. 여전히 ‘인권’이 궁금할 때 들러볼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고 아직 ‘인권’이라는 단어로 갈무리되지 않은 생 목소리들과 민중의 삶 자락 자락마다 배어있는 냄새를 전할 ‘매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제한한 시야에 갇혀 입바른 소리만 하는 ‘인권’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려는 포부를 담은 ‘인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걸어갈 길은 여러 인권단체들이 함께 걷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편집과 발행을 책임지지만 다른 인권단체들과 함께 기획을 하면서 <인권오름>의 마루를 더욱 너르게 만들려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만의 깜냥으로는 담기 어려운, 하지만 독자들과 만나 더욱 소중해질 이야기들을 전하려고 합니다. 서로 토닥이며 함께 걷는 인권단체들도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오래 전부터 고정꼭지 기사를 제공해온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과 더불어, ‘경계를 넘어’,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전쟁없는 세상’,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기획과 기사제공 등을 합니다. [시설 밖으로, 세상을 향해], [이반의 세상, 세상의 이반], [교과서를 던져라], [발로 걷는 평화교육] 등이 <인권오름>의 너른 마루에서 독자들을 기다리는 꼭지들입니다.
<인권오름>은 다음 주부터 홈페이지의 주소를 http://hr-oreum.net로 바꾸고 옷도 갈아입어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2년 동안 걸어온 길에 보내주신 응원이 다시 한 봉우리 걸어갈 기운을 북돋는 샘물이었습니다. 쉽게 쓰러지지는 않겠다는 약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인권오름>이 다시 걸어갈 길에 더욱 많은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비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100호
- 일반
- 인권오름
- 200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