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막상 새해라고는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이러저러한 위기와 걱정을 주로 나누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MB 악법’을 막겠다고 비상국민행동으로 여의도 농성을 하던 끝에 맞은 새해이고, 새해부터 국회가 전쟁터가 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날을 보냈던 탓인지 해가 바뀐 것인지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겨우 일주일. 그런데 올 한해를 살아낼 일이 참으로 걱정입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다는 예고편이 그치지 않는 현실이고, 이미 현장에서는 해고와 감원이 시작되었고, 조업중단을 하는 중소기업, 심지어는 대기업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서민들, 민중들의 어려운 생활을 해결할 길이 아니라 정규직을 임시직, 일용직으로 만드는 대책이고, 복지정책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껍데기만 화려할 뿐입니다. 이 정부는 명확하게 자신의 계급을 위할 줄 아는 정부입니다. 다수 서민, 민중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소수 부자들과 재벌들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각종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예산을 책정합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의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는 처음 겪어보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나마 있던 정부가 국민 모두를 위한다는 그런 외형도 다 걷어버리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는 소수 부자와 재벌들만 살리겠다는 정책의 다른 이름입니다.
입법전쟁부터 이겨야
올해로 넘어온 입법전쟁부터가 걱정입니다. 입법전쟁에서 민주당이 선방했고, 겨우 5석의 의석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분발했고, 무엇보다 언론노조의 파업이 위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덕에 연내 직권상정을 통한 날치기 처리를 기정사실화하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법전쟁의 1라운드는 그들의 패배로 귀결된 듯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런 결과를 놓고 자중지란의 모습까지 모이고 있고, 밀어붙이기로 한 번에 끝내려던 청와대의 불만도 높아졌습니다. 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은 내부 단합도 이루어냈다고 자평하면서 우쭐하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가 더 문제지요. 이른바 ‘MB 악법’을 저지하는 투쟁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고, 저들은 국회에서 수적인 우세로 계속적으로 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덤빌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이해와 진보진영의 이해가 같을 수도 없는데, 여야 협상에서는 분명한 정치적 기반을 갖지 못했고,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투쟁에서 입법전쟁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사회 이후 정치는 법을 통해 실현됩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어떤 형식의 법이든 자신들이 지배하는 입법부를 통해서 법률을 제정하고, 그러므로 그 법 틀 안에 피지배세력들을 가두어두려고 합니다. 법의 권위를 빌어서 행하는 통치, 그것은 독재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수권법’을 통해 통째로 권력을 장악합니다. 박정희는 아예 헌법을 뜯어고쳐 주권자인 국민이 결코 직접 자신들의 대표조차 뽑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명박이 추진하는 MB 악법들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이명박 노믹스를 구현할 법적인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당연히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 권력을 전 영역에서 합법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개별 법률안들이 문제가 아닌 거지요. 개별 법률안들도 심각하고, 어마어마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문제이지만, 이들 법률안들이 담고 있는 그 지향을 읽어낼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결국은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이번 입법전쟁은 민주주의 수호 투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이루어온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조차도 파괴하겠다고 덤비는 것에 맞서서 싸우면서 오히려 사회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비전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역사에서 진보세력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헌신해왔습니다. 당장은 자신들 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전체 인민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들은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관점을 너무 협소하게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촛불세력과 민중이 연대하는 투쟁을
올해 열심히 투쟁하면 어떤 국면이 열릴 런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위기의 상황에 맞서는 진보세력이 무기력감과 분열상을 극복하고 다시금 투쟁전선을 회복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에 거대하게 타올랐던 촛불세력이 새로운 저항세력으로 등장한 우리사회에서 여기에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넘어 사회전반의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까지 담보하는 조직된 대중의 투쟁이 결합되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심각하게 다가오는 경제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앞에 체념하거나 ‘묻지 마’ 살인이나 자살 같은 절망적인 행태를 보이게 되겠지요. 올해는 어쨌거나 벽두부터 격동의 해를 예감하고, 그 격동의 해를 제대로 준비했으면 합니다. 어디서 투쟁이 시작되고 지배세력을 균열시킬 거대한 파고로 나설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은 없지만, 촛불세력과 민중들이 결합하는 그런 투쟁을 일구는 일을 진보세력이라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해는 기축년, 소의 해입니다. 소처럼 뚜벅뚜벅, 의연하게 걸어야 하는 것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모든 위기를 지배세력의 위기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절실할 때입니다. 인권운동도 개별 권리 하나하나보다는 역동적인 정세 속에서 전체 민주주의와 인권의 실현을 고민하는 그러면서 전체 진보세력의 연대투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희망은 그런 가운데 찾을 수 있고, 그것만이 진정한 희망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봄은 우리 스스로 찾아낸 희망을 부여잡고 독재 권력과 제대로 싸우는 그런 계절이기를 바랍니다.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듯 촛불보다 더 거대한 저항을 일구는 것만이 절망적인 경제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리대로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의들이 더욱 풍부하게, 더 집중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다사다난한 해가 되겠지만,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임
* 박래군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