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가 저랬다가, 오락가락 출산정책
과거 베이비붐 시대에 정부는 출산억제정책을 펼친바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 되자’(1970년대)라면서 인구조절을 위해 출산율을 낮추려고 했다. 국민들이 거지꼴을 못 면할까봐, 자랑스러운 부모가 못 될까봐 오바스럽게 걱정하더니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억제가 아닌 장려로 노선을 과감히 바꾼다. 정부는 출산장려정책을 펼치면서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 자매입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라는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아이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야, 네가 원하는 것이 진정 동생이니? 그뿐이야?’라고. 나의 경우에는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찌해야하는 걸까. 허허~
인권장려정책부터 고민하시길
정부의 출산정책 이면에는 인간을 수단으로, 여성을 노동력생산을 위한 도구로 치부하는 생각이 엿보인다. 인구를 줄여야하기에 아이를 낳지 말고, 노동력저하가 우려스러워 신속하게 모두모두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성의 생식권과 사람들의 재생산권 및 양육권을 정부의 구미대로 맞춰줄 수는 없다. 재생산권은 개인의 신체적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임신, 출산, 양육에 관련된 포괄적인 권리이다. 때문에 국가는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들의 매우 고유한 권리를 정부가 나서서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통제와 지원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정책은 국가를 위해서 개인(여성)의 몸을 동원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라본다. 참 가부장스럽다. 자본주의를 위한 노동력 확보에만 전념하다보니 ‘자원’을 원할 뿐 ‘인간’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빈곤하다. 국가적 이익이나 노동력확보를 우선시하기보다는 현재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닐까.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 인간적인 사회
인간성과 공동체정신을 말살하는 신자유주의시대에, 정작 중요한 것이 동생뿐이랴. 혼자여도 잘 살 수 있고,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머리를 싸매고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것이 더 시급하단 말이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아이들이 부모형제가 없다 해도 무한한 꿈을 꿀 수 있고, 누군가를 짓밟거나 누군가에게 짓밟히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인간적인 사회’일 것이다.
덧붙임
정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