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볼 책은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재미마주)라는 그림책이야. 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만두를 빚는 이야기지. 할머니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만두를 만들어. 밀가루 반죽이 어찌나 큰지 울타리 밖을 넘어 소나무 숲을 지나갈 정도니 말이야. 커다란 만두 모습과 장난스런 동물들의 표정을 보며 읽다보면 어느새 이 책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이 재미있는 책에도 그림자 괴물이 숨어 있어. 그걸 어떻게 아냐고. 잘 들어봐. 이 이야기 속에서 만두를 빚는 친구들은 모두 숲속의 동물들이야. 할머니가 종을 댕댕 쳐서 모든 동물들이 모이도록 해. 할머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동물들을 보면서 조는 동물들과 일이 서툰 동물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해. 이레가 지나도 만두소가 줄어들지 않자, 동물들은 지쳐서 모두 자리에 누워버리지. 그러자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를 만들자고 해. 결국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가 만들어져.
그런데 이렇게 만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약간 이상한 게 있어. 할머니는 수많은 숲속 동물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동물들에게 도움을 정중하게 부탁하지도, 동물들이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지도 않아. 할머니는 설날에 만두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만두피도 만두소도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동물들을 부르고 일을 시키는 것도 모두 당연한 거야. 그래서 망원경을 들고 혹시 일을 못하나 졸지 않나 감시까지 해. 물론 동물들은 만두를 좋아하고 만두 만드는 일을 즐겁게 하지만 이레가 지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는 것은 너무 심했어.
그런데 왜 동물들은 아무도 할머니에게 반대를 하지 않는 걸까? 만두가 싫을 수도 있고 일이 너무 고되다고 불평할 수도 있고 동물들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잖아. 동물들과 할머니가 함께 모여 무얼 만들지 얼마나 많이 만들지를 의논할 순 없는 걸까? 동물들은 모두 할머니의 말에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보여. “어른이 시키는 일은 모두 너희들을 위한 일이니까 군말 하지 말고 일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일까 동물들 수 십 마리가 온 힘을 다해 도와주었어도 이 만두를 만든 주인공은 동물들이 아니라 손 큰 할머니야. 그래서 제목도 『숲속 동물들과 함께 만든 만두』가 아니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가 되는 거지. 어때, 이 그림 책 속에 숨은 그림자 괴물이 이제 보이니?
두 번째 책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이야. 이 이야기는 한 마리 수탉에 대한 이야기야. 이 그림책은 정말 예뻐. 커다란 수탉의 깃털도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그런데 이야기를 읽어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들이 있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수탉은 처음부터 아주 튼튼해 보이는 수평아리로 태어나. 동네에서 가장 씩씩하고 힘센 이 병아리는 점점 자라나 이 동네에서 가장 힘센 수탉, 아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돼. 그런데 어느 날, 더 힘 센 수탉이 나타나서 싸움에 진 후 주인공 수탉은 완전히 바뀌어버려. 매일 술만 먹고 신세 한탄만 하지. 더욱 나이가 들어 고기가 잘 씹히지도, 술을 더 마시지도 못하게 돼. 이렇게 절망에 빠진 수탉에게 아내가 말을 해. 당신은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고 말이야. 그러면서 손자들과 자식들이 얼마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랐는지 보여주지. 그 모습에 수탉은 기운을 차린다는 이야기야.
그런데 이 재미있는 그림으로 가득 찬 책 속에도 그림자 괴물이 숨어 있는 게 보여.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바로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이란 말 때문이야. 주인공 수탉이 살아가는 목적은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수탉이 되는 거야.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어. 그래서 젊었을 때 자신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다가 믿었을 땐 제일 행복한 수탉이 되지만 싸움에서 지고 난 뒤에는 그냥 술주정뱅이가 돼버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지.
게다가 가장 힘이 센 수탉이 돼서 하는 일이란 암탉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즐기는 것과 고기를 뜯고 싸움을 하는 것 빼곤 없어. 정말 이 수탉에게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이란 말이 왜 필요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아니어도 좋으니까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는 그런 수탉이 되면 안 되는 걸까?
마지막에 수탉이 기운은 차리는 것은 아내의 격려 때문이야. 아내는 수탉에게 자식들이 잘 자랐음을 보여 주지. 그런데 이 수많은 자식들은 누가 다 키운 걸까? 분명한 것은 힘으로 “세상 제일”이라는 이 수탉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야. 수탉은 싸움에서 진 후 세상에서 가장 술을 잘 먹는 수탉이 되어 신세 한탄만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 수탉이 잘 자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보며, 자신감을 되찾을 자격이 있기나 한 걸까? 이 그림책의 마지막 말처럼 수탉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꼬리 깃털을 활짝 핀 모습이 아름다워도 되는 걸까?
마지막 이야기 할 책은 『우리아빠, 숲의 거인』(사계절)이야. 이 책은 그림도 멋지지만 이야기도 재미있어. 해적들도 나오고 거인도 나오고 흥미진진하지. 하지만 이 책에도 어김없이 그림자 괴물이 숨어 있어. 한번 살펴볼까?
이 책은 아이가 들려주는 엄마 아빠의 사랑얘기야.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기 전에 공장에 다녀. 코끼리를 통조림에 넣는 힘든 일을 하지. 그런데 어느 날 예쁜 것을 좋아하는 해적들이 엄마를 잡으려고 해. 엄마는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지. 도망간 엄마가 간 곳은 숲이야. 그곳에서 엄마의 모기 소리 같은 비명소리를 들은 아빠가 해적들을 혼내주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하지만 엄마의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지. 숲에 살고 거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야. 결국 엄마는 새장 속에 갇히고 아빠는 숲에서 울음을 터뜨려. 아빠의 울음소리에 잠을 못잔 사람들이 항의를 하자 결국 엄마의 부모는 아빠와의 결혼을 승낙해.
그런데 엄마는 결혼 한 후 아빠에게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 결국 아빠는 숲에서 나와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점점 작아져서 말도 하지 못하는 인형처럼 변해. 그제야 엄마는 잘못을 빌고 아빠를 숲으로 대려가 함께 살게 돼.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거기에 딱 맞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 하지만 뭔가 가시처럼 걸리는 부분이 있어. 그게 바로 이 책의 그림자 괴물이지.
먼저 이 책에 나와 있는 엄마의 모습을 봐봐. 엄마는 해적들에게 쫓길 때도,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할 때도 그것에 맞서려고 하지 않아. 그냥 아주 작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새장에 갇혀 눈물을 흘리는 약하고 힘없는 존재일 뿐이지(해적이 좋아할 만큼 예쁘기도 하지). 그래서 이 약하고 소극적이며 예쁘기만 한 엄마는 해적에게 맞서거나 새장을 스스로 나오지도 못해.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호하는 사람은 바로 거인 아빠지.
그런데 엄마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때가 한 번 있어. 바로 아빠에게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지. 엄마의 말에 거인 아빠는 모든 걸 버리고 도시로 와. 엄마의 편한 삶을 위해 아빠가 희생하는 거야. 이 책에서 결혼은 오로지 아빠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져. 그런데 정말 현실에서도 이럴까? 엄마는 언제나 약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존재이고 아빠의 희생만 강요하는 존재인 걸까?
이야기를 보면 마지막에 엄마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은 인형 같은 사람이 아니라 숲의 거인이었던 아빠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그런데 이 장면도 좀 이상해. 엄마가 좋아한 것은 아빠였을까 아니면 힘세고 몸집이 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거인이었을까? 만약 아빠가 거인이 아니라 보통 남자였다면 엄마는 아빠에게 첫눈에 반하지도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만 그 내용은 결국 엄마가 희생해서 아빠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야. 물론 자연 속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니 좋지 않느냐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그리 기분이 좋지 않는 건, 숲에서 사는 엄마의 고민이이 어디에도 들어나지 않다는 점이야. 정말 숲에서는 사는 엄마는 거인아빠에게 보호받으며 행복하기만 할까? 거인 아빠의 힘으로 유지되는 숲은 정말 평화로울까? 그냥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며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 행복한 결말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으로만 가능한 것일까?
이번 공룡 트림은 세 권의 그림책에 숨은 그림자 괴물을 살펴보았어. 재미있는 책들을 볼 때에도 그냥 읽는 것 보다.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르는 그림자 괴물을 찾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어때, 책이 훨씬 흥미진진해지지 않아?
덧붙임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