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센터 ‘들’은 2010년부터 ‘빈곤과 청소년팀’(아래 빈청팀)을 만들어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고민하면서 정리했던 5가지 주제를 가지고 지역아동센터(아래 센터)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기사의 꼭지는 △자존감 △돈 △학생인권 △성・연애・섹스 △폭력이다. 각 꼭지가 워낙 묵직해서 논의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지만 청소년에게 빈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현장의 고민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난한 집 애들이 그렇지 뭐’라는 식의 꼬리표나, 빈곤을 단지 ‘지원되는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하고자 했다.
9년 동안 해왔던 인권단체 활동을 내려놓고 지역아동센터에서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실무자로 살아온 지 올해로 3년이 된다. 애초 활동공간을 바꾼 이유는 인권활동을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좀더 ‘자~알’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었기에 사실 환경이 달라지는 것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날 무렵 이런 자신감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나에게 남은 건 미해결 상태의 고민들뿐이었다. 청소년들이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소통이 되지 않을 때면 내가 청소년 담당 실무자로 적절한지, 그동안 주장해온 인권의 원칙을 나는 이곳에서 실천하고 있는 건지,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논리를 어느 순간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가장 혼란스러운 건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이며, 빈곤은 한없이 ‘결핍’으로만 느껴지는 순간을 지역아동센터에서 보게 될 때였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두 친구를 소위 잘 나가는 학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도록 연결했지만 겨우 2번 나가고 ‘무책임’하게 때려치우거나, 센터에 와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한 친구들을 볼 때면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리고 더욱 힘든 건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가 지역아동센터에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청소년은 있지만 담당 실무자가 없는 경우가 많고, 있더라도 센터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고민만 싸안고 있다가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거나 떠나는 게 고작 다인 선택지였다.
빈청팀은 이런 청소년 담당 실무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기를, 더욱이 자신의 노고를 청소년 인권을 침해하며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 않기를 바라며 각 주제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더불어 인권을 담지한 실무자들이 센터에서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인권을 ‘통한’ 교육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고민을 정리했다.
센터의 노동조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담당 실무자들이 꿋꿋하게 현장을 지킬 수 있는 건 청소년에 대한 열정과 애정 덕분일 게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넘치는 열정과 애정이 청소년들이 처해있는 빈곤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때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센터에서 경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과 밀착해서 지내다보면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거나 자원 연계를 통해 원하는 바를 지원하고 싶은 유혹에 나 또한 빠지곤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실무자는 주고, 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받는 위치로 고정된다. 결국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로 인식하거나 시혜의 대상으로 정체화하기 쉽다. ‘파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파이를 만들지, 그 ‘파이’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인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로만 사회복지를 바라보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센터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청소년들에게 열심히 ‘파이’를 나눠줬는데도 건강해지기는커녕 더 비실비실해지기만 할 때 실무자들은 크게 실망하게 된다. ‘이만큼이나 줬는데 쟤는 왜 저러나?’ 청소년에 대한 애정으로 버티기는 하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실무자들도 이들의 상황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끈기 없음, 그리고 미성숙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어느새 빈곤가정의 청소년들은 자존감이 낮고, 불성실하며 책임감도 없는 ‘문제덩어리’지만 그래도 뭔가 계속 채워줘야 하는 ‘불우한 존재’로 보편화시키기에 이른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괴로웠고 지금도 불쑥불쑥 이런 고민들이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예의 없는 것들!’, ‘부모가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폭력적이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내뱉는 말 속에 빈곤가정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 숨어있다. 이런 편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편견이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덧붙임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