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제주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고등학생들과 2주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획 프로그램 형식이었는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력 증진’이라는 좀 ‘구린’ 목표였지만, 나름 자체 안식년이었던 제가 다른 이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프로그램 진행자로 가게 된 거죠.
‘자기결정력 증진’은 근래 발달장애인 쪽 프로그램의 대세 목표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이를 실행해보는 훈련이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주장이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비장애인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 전제인데,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맞나? 뭐 진짜 능력이 부족하다 치더라도 왜 부족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리고 그 능력을 ‘증진’시켜 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발달장애인은 늘 뭔가를 증진시킴을 당하는 것이 합당한지? 결국, 능력이 부족하다는 일방적 판단으로 당사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의심들을 품은 채 당사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제가 만난 이들은 일반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었어요. 사실 거의 놀았습니다. 학교 끝나고 재활치료 대신 오는 것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방과 후 프로그램인데 얼마나 싫겠어요. 그래도 같이 지내며 노는 틈틈이 오가는 이야기 속에 그이들이 살짝살짝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 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중 몇 가지 이야기입니다.
학생들과 지내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20살이 넘으면...’이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와 어른은 뭔가에 대해 같이 정의를 내려봤습니다.
정의를 내리는 중 누군가 “권리자”라는 말을 합니다. 어른은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던 거죠. 여기서 논쟁이 발생합니다. ‘우리도 권리가 있는데 왜 어른만 권리자냐?’라는 반론이 나온 거죠. 이 반론이 한 번에 꺾이게 된 건 “너 지금 결혼할 수 있어? 술, 담배 할 수 있어?”라는 한 마디. 그래서 연달아 나온 정의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추가됩니다. 사실 이전 시간에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눴었습니다.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도 그 권리가 있고, 누군가 그 권리를 쓰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싸울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X소리였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도 계속 정의를 내려봤습니다.
“일기 안 써도 되는 사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학교에서 시키기에 매일 공책 반장 이상의 일기를 써야 하고 일기의 내용은 그날 본인이 무엇을 어디서 했는지를 써야 하며, 그걸 매일 교사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정의를 내린 학생은 뭘 쓰는 것도 엄청 싫고, 써야 할 이유도 없어서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겁니다. 쓰기 싫다고 말해봐야 안 쓰면 맞으니 별 도리가 없고... 이런... 그래서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우리 중 같은 반 학생들이 많아 집단 저항을 조직해보자고 했지만 ‘난 그냥 쓸래’라는 다른 친구들의 말에 좌절은 더 커졌습니다.
아빠랑 엄마, 그리고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며 답답해하고 화냈던 일, 어른이 되면 절대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말했던 일, 학교 이야기를 할 때 일반학급의 교사와 친구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일...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매일매일을 ‘넌 부족하다. 모자라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받지 못한 채 늘 ‘재활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취급을 당하는데 어떻게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증진’될 수 있을까요?
지난 10월 인권친화적 학교를 만들기 위한 10가지 약속 중 몇 가지입니다.
∘ 어린이와 청소년은 오늘을 사는 시민입니다.
∘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책임지는 법도 배웁니다.
∘ 두려움 없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을 때 자존감도 싹틉니다.
∘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책임지는 법도 배웁니다.
∘ 두려움 없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을 때 자존감도 싹틉니다.
∘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리에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청소년을 넣어도 마음에 탁 와 닿습니다. 일상의 삶을 손발이 묶이고 눈코입이 막힌 채 살아야 하는 이들은 누구에 의한 판단인지, 누구 때문인지 모를 ‘능력 없음’을 이유로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결론을 잘 맺고 싶은데 어렵네요. 뭐 하고 싶었던 말은 미성숙한 자가 누구인지 골라내기는 그만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시도하고 실수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고 성장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작년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너 때문이야!’가 아니라 ‘우리 같이 뭘 하면 좋을까?’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으면 합니다.
덧붙임
윤경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