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이 어린이의 수호자나 어른에게 교훈을 주는 인물로 나오기 일쑤이다. 그런데 정말 현실 속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그런 존재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들을 지켜주는 사람, 어린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도 불편하다. 어린이를 항상 어른들에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그리는 어린이책이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이야기하는 어린이책이 많아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런 고민 속에서 어린이의 삶, 어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두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린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살피지 않는
먼저 소개하는 책인 김려령의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였지만 이후에 뚜렷한 일을 하지 못하는 동화작가인 오명랑이 이야기교실을 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 속의 중요한 인물은 바로 “건널목씨”라고 불리는 어른이다. 그는 건널목이 없는 도로에 카펫으로 건널목을 만들고 부모님 때문에 방황하는 도희에겐 휴식처가 되어주고 어른 없이 자라는 태석이와 태희의 보호자가 되어 준다. 이야기 속의 어른들은 도희의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고 어린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준다. 심지어 가난을 못 이겨 도망친 태희의 엄마도 돈을 벌기 위해서 잠시 떠난 것뿐이란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의 어른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선하고 착한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일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불편하고 걸리는 것이 있다.
이렇게 어린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호해주는 어른의 모습이 정말 현실일까?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양 주인공도 작가와 비슷한 책을 내고 등단한 사람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이 책이 현실적인 이야기임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현실보다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단지 카펫을 횡단보도 삼아 들고 다니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건널목씨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의 비현실성은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고 그런 보호 속에서 어린이가 자라야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교훈적인 이야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어린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문제를 살피는 데에는 여전히 소홀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 책에서는 도희의 부모님이 왜 매일 싸울 수밖에 없는지, 태희의 어머니는 아픈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모르고 일을 할 수 박에 없었는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가 없는 몇 년간을 아빠의 죽음을 겪으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두 남매의 성장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이 없다. 그들의 성장은 단지 건널목씨가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세상은 그리고 어린이들의 삶은 단지 착한 이웃, 선한 보호자만 있으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세상을 살피는 어린이책
두 번째로 소개하는 김양미의 단편집 『털 뭉치』는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이 이야기 속에도 어린이와 어른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위의 책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와는 사뭇 다르다. 첫 번째 단편 <아래 할아버지>는 아래층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친했던 채운이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죽음이라는 걸 잘 모르는 채운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대답을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전부인 이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알아가고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슬픔의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애써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담담히 그리고 조용하지만 큰 울림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또 다른 단편 <멸치>는 멸치 도둑으로 몰린 혜원이가 겪은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의 시선이 얼마나 차가운지 그리고 혜원이의 팍팍한 삶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 속의 어른은 따뜻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진짜 살아있는 어른들이다.
이야기는 그 결말도 교훈적이지도 따뜻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그저 혜원이와 동생의 현재를 보여주면 이야기는 끝난다. 혜원이와 동생이 삶을 해쳐나가는 방법도 누구의 도움이나 보살핌이 아니다. 그저 남매 둘이 서로 보듬고 의지함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이 팍팍하고 가슴 아플지라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어린이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김양미의 단편집에 나오는 어른들은 교훈적인 인물도, 따스하고 선한 인물들도 아니다. 그들은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몇 몇 어른들도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많이 존재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이지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 나오는 ‘건널목’씨 보단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어린이책이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선 세상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른이든 어린이든 세상을 살아가고 자기 나름대로 삶의 무게를 동등하게 견디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한쪽의 삶을 외면하고 그저 긍정적으로 그린다면 그것은 진짜 거짓말이 될 것이다. 이야기 소재가 판타지라서 어린이책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어린이의 삶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을 외면하고 단지 사람들을 선하고 착하게 그리려고 하는 어린이책이야 말로 아무리 실감 넘치는 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어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생생한 어린이들이 나오는 어린이책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이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덧붙임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