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권위는 의미는 있으나 뒷북인 의견 표명과 결정을 했다. 하나는 테러방지법 시행령에 대한 위헌 의견 표명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 인근 집회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결정이다. 진작 나왔어야 할 결정이지만 요즘같이 인권이 바닥으로 떨어진 시대에 뒷북이라도 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뒷북치기의 명수가 된 까닭은 보수 정권 들어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해야할 인권위가 독립성 없이 정부 눈치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대통령 직속기구화시도를 했고, 2009년 조직을 21%나 축소했으니 언제든 인력과 재정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인권위원이나 인권위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6년간 무자격자인 현병철 씨가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최이우 씨나 유영하 씨 같은 반인권적 경력이 있는 사람을 인권위원으로 임명하니 ‘인권기준에 기반한 결정’이 어려웠다.
테러방지법 제정할 때는 침묵, 시행령만 의견 표명
그래서인지 작년 하반기에 인권단체들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까지 하면서 테러방지법은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안이니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도 인권위는 입을 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테러방지법에 대해서 창립 초기부터 2007년 테러자금조발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의견을 포함해 꾸준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02년 국정원이 주도한 테러방지법에 대해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테러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인권침해 여지가 많다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테러방지법안은 이 법안의 본질적인 내용들, 즉 테러행위에 대한 개념규정과 형벌규정, 절차규정, 그리고 국가기능의 재편에 관한 규정들이 국제인권법의 기준에 위반하여 인권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소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인권침해의 대상자들에게 국제인권규약이 정한 바에 따른 적절한 구제조치가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2003년에 테러방지법 수정안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①현행법과 제도로 테러방지 대책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입법 추진은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② 특수부대 출동 요청 등의 위헌 소지와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우려 ③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될 소지가 많아졌다는 점 ④ 상당수 조항들에 헌법 및 국제인권법 위반 소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점” 등으로 입법 필요성이 없으니 입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때의 법안과 작년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테러방지법안들의 내용이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인권위는 침묵했다. 심지어 올해 3월 2일 테러방지법을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킬 때도 그 흔한 성명도 내지 않았다. 의견표명의 근거가 오랜 동안 쌓여 있어 입장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영향인지는 모르나 다행히 4월 29일 상임위원회는 테러방지법 시행령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의견표명을 했다. 테러방지법 시행령안은 국내외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항공·해양 등 테러 성격에 따라 외교부·국토교통부·국민안전처 장관 등이 테러사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대책본부장을 맡아 이를 지휘·통제하도록 돼 있다. 특히 군사 작전부대라 할 수 있는 ‘대테러특공대’를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심의의결만으로 설치·운영할 수 있고, 테러특공대는 군사시설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계엄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국회에 즉시통보하고 국회에서 철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권한이 세다. 그래서 18조에 대해 인권위는 “장·차관급에 불과한 대책본부장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고 군을 움직이는” 것이라 위헌적이라고 판단했다.
테러방지법안 폐기 의견을 낼 때
시행령안은 18조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테러 활동의 실제 권한이 있는 대테러센터의 조직구성과 운영 규정은 테러방지법에도 없고 시행령에도 없다. 12조에서 “지역 테러대책협의회의 의장은 국가정보원 해당지역 관할지부의 장(특별시의 경우 대테러센터 소속의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 또는 이에 상당하는 특정직․별정직 공무원)”이 할 수 있고, 20조에서 “① 국가정보원장은 테러관련 정보를 통합관리하기 위하여 관계기관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테러정보통합센터를 설치․운영한다”고 하는 등 국정원이 타 기관의 인적·물적 자원까지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대테러활동이라는 명분으로 지역의 주요 국가기관, 지방자치의 기관장뿐 아니라 각종 공기업, 지방공기업의 장까지 포괄하여 아우르는 “협의기구”를 만들고 이를 국정원장 혹은 그의 지휘 하에 있는 국정원 관할지부장이 동원할 수 있게 됐다.
시행령(안) 제25조에서도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과 조사․추적을 가능하게 하고 있어 언제든 누구든 ‘테러 위험인물’로 지정되면 감시대상이 된다. 테러 규정이 없기에 ‘테러위험인물’지정은 어렵지 않다. 사회운동이나 민생현안, 노동현안 등에 대한 사찰이나 제재도 언제든 가능하다. 그에 반해 인권보호관은 시정권고 정도의 자문 역할이 전부이고 민원의 처리 절차나 방법, 대테러기구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권한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을 제재할 수 있는 시행령이 아니라 테러방지법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포괄적 인권침해법의 완성이다. 모든 영역과 사회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국정원의 손에 놀아날 위험에 처했다. 시행령을 보완해서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인권위는 테러방지법 폐기를 권고해야 한다.
뒷북이 전매특허가 된 인권위, 인권의 나팔수가 되길
그러나 인권위가 테러방지법 폐기안 입장을 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인권에 관심 없고 성소수자 차별을 해오거나 실정법만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이 되다 보니 자신을 임명해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권위원을 정계진출을 위한 경력을 만드는 정도로 사고하는 인권위원들로 인해 인권 현안은 ‘인권’이 아닌 ‘임명권자’의 잣대에 좌우된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간 국제조정위원회(ICC)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인권위원 인선절차를 마련하라고 인권위 등급심사를 3번이나 보류하였다. 곧 있으면 ICC에서 한국 인권위에 대한 등급심사가 있을 예정이다. 인권위는 심사 결과에 연연하기 전에 뒷북을 거두고 스스로 우리 사회 인권기준을 높이는 나팔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사법부나 시민사회, 국회가 입장을 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결정을 내기보다는 모두가 인권침해적인 정부 정책과 활동으로 난감해할 때 인권에 관한 선명한 입장을 먼저 내야 한다. 인권위의 포지션은 뒷북 선수가 아니라 나팔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인권 인권위원들의 인적 청산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자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