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도 허락도 아닌 권리의 보장이며 ‘낙태죄’ 위헌을 조속히 결정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비로소 4월 11일, 임신유지를 중단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는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민은 스스로 삶을 존엄하게 결정할 헌법상의 권리가 있으며, 특히 임신·출산이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비로소 확인되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고 외치며 지난 수년에 걸쳐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선 여성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형법에서 ‘낙태죄’가 존치되어온 6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2019년 4월 11일은 '낙태죄' 폐지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번째 날이 되었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다시 맞아 우리는 2020년을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의 첫 번째 해로 만들 것을 선언한다. 수년간 우리는 외쳐왔다. 한 국가의 경제 발전 혹은 경제 위기 해결은 인구 관리 및 가족 유지로써 가능하지 않다, 여성의 몸은 국가발전을 위한 출산 정책의 도구가 아니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우생학적 목적에 따라 생명을 선별하며 그 책임을 여성에게 처벌로써 전가하지 말라, 우리는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2020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제 우리는 권리를 요구한다. ‘낙태죄’헌법불합치를 넘어 전면비범죄화를! 안전한 임신중지와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하라!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현재의 법 조항을 대체할 대안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부터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새로운 법안 마련과 사회적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부, 국회, 의료계, 교육계,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가 4월 11일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응답해야 한다. 첫째, 국회와 정부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법 개정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라. 특히 4월 총선으로 구성될 21대 국회는 지체하지 않고 '낙태죄' 폐지 이후의 법안 마련에 힘써야 한다. 둘째,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유산유도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임신중지에 한해서라도 유산유도제 도입을 시행하여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에 여성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 의료 체계 마련과 의료인 교육훈련이 시급하다. 의료인 교육훈련은 임신중지를 대하는 태도, 약물과 수술에 관한 최신 정보, 환자의 상황에 따른 매뉴얼이나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 등을 포함해야 한다.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등 보편적 공공의료 보장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피임에 대한 정보 제공 및 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 성에 대한 가치관과 권리, 성 건강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포괄적 성교육을 시행하라.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성적 관계, 피임,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전 과정에 관한 적절한 정보 제공과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다.
여성의 존엄과 권리보장을 위해 저항해 온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과제를 확인하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외친다.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를 보장하라!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가 보장되는 2020년을 만들어 나가자!
2020년 3월 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건강과대안,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녹색당, 민주노총,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꽃페미액션,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학생행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탁틴내일, 페미당당,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