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에 다녀왔다. 역사의 유물로 국가보안법을 전시하기에는 여전히 서슬퍼런 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제 누구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점에서 ‘전시회’가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남영동에 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전시회’가 처음이다.
전시 공간이 재현한 권력의 폭력
전시회의 부제였던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은 5층 조사실(대공분실 당시)에 전시되었다. 경찰청 인권센터였을 때, 이 곳 조사실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났다. 경찰이 나서서 인권센터라고 꾸며놓고 운영하는 곳에서 그 때 나는 ‘관광’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5층 조사실 방 11개를 모두 열고 그곳에 들어가서 국가보안법 피해여성 11명의 이야기를 오디오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좁디 좁은 조사실에 직접 들어가 작은 백열등 스탠드 하나 켜져 있는 곳에서 헤드셋을 끼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5분~20분 정도 그 공간에 오롯이 혼자 앉아 ‘말의 세계에 감금되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어 감옥에서 아이를 사산한 여성, 회사 선배를 숨겨주었다가 남영동 대공분실 바로 이 조사실에서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보안법에서도 여성서사는 임신‧출산과 결부되고, 수배자 은신처 제공이라는 방식의 돌봄의 이야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나에게 5층 조사실 전시 경험은 ‘여성서사’가 아니라, 조사실에서 보낸 40여분의 시간으로 남았다. 이곳에서 ‘조사’를 받고 ‘죄’를 강요받으면서 몸과 마음을 상했을 수많은 이들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1층 전시실에는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를 필사하는 공간이 있다. 어두컴컴한 곳에 책상 하나 놓여 있고 스피커에서 국가보안법 조항이 반복해서 낭독된다. 자주색 조명 아래에서 꽤 긴 시 한 편을 필사했다. 죄를 인정하는 자술서를 쓰는 무섭고도 비참한 기분을 ‘전시회’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빨리 쓰고 나오고 싶은데, 왜 이렇게 긴 건지 싶다.
그런데 바로 지금도 이런 일을 반복하는 보안수사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국정원 국내 정보파트와 통합해 그 조직을 더 키우게 된다. 이렇게 ‘전시’를 경험하지만 전시장 바깥에서도 지금도 작동하는 국가보안법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내가 지금 관람하는 ‘전시회’에 놓인 국가보안법과 여전히 작동하는 국가보안법은 같은 법인가? 다른 법인가?
뒤죽박죽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말 그대로 국가안보에 해를 가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심의 사상과 생각, 양심까지도 국가권력이 판단해 형벌에 처하는 법이다. 무엇이 국가안보에 해를 끼치는가는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마냥 ‘자의적’일 순 없기에 남북관계, 탈냉전, 민주화 투쟁, 체제변혁적 사회운동 등과의 역관계에 따라, 역사적 조건변화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의 내용과 역사를 정리한 4층의 전시공간은 말 그대로 ‘정리할 수 없음’을 전시 자체가 보여주는 듯 한 느낌이었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린 대자보들, 빼곡한 재판기록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마치 ‘자본주의’가 그러하듯이 변신을 거듭하면서 국가권력의 수호자로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 86세대가 고문당했던 대공분실이었던 곳에서 ‘전시’되는 국가보안법과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결국 권력획득 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 지금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힘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단단한 물적 토대 위에서 국가보안법이 작동하지만 그 힘이 무엇을 겨냥하는 것인지, 이런 토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해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없어진 줄 알고 있는 답답한 2020년이다.
덧붙임) 8월 24일에 시작된 전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되었다가 얼마 전에야 재개관했다. 10월 18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고 하니, 후원인들도 꼭 한 번 들렸으면 좋겠다. 온라인 전시로는 현장의 기운을 도저히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