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세 번째 토요일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팽팽문화제가 열린다. ‘평화바람’의 친구로 처음 군산에 갔을 때 마을과 바로 붙어있는 거대한 미군기지를 보고 놀랐었다. 기지 확장을 이유로 강제수용된 하제마을에는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2가구 그리고 600년 이곳을 지키고 있는 팽나무가 있다. 대대손손 살고 자라온 곳, 감자와 배추 여러 작물을 심고 가꾸어 나누어 먹던 곳, 삶으로 가득했던 이 터가 죽음의 기지가 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걸음을 새기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런 시간이기도 한 팽팽문화제에 함께 걸음과 숨결을 보태고 싶어 가는데, 그러다 지난 5월 알게 됐다. 올해로 평화바람이 20년이라는 것을.
사랑방 30년을 맞아 올해 초부터 준비한 30주년 사업을 정리하고 후원인 모집부터 행사까지 기꺼이 엮어준 사람들로부터 든든한 기운을 잔뜩 받은 감응 그리고 감사함이 또 다른 오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평화바람이 자신의 20년을 기억할 어떠한 계획도 없다는 걸 알았는데 그냥 지나치고 올해를 보낸다면 너무도 아쉬울 게 분명했다. 평화바람의 친구로 지난 걸음들을 함께 기억하며 또다시 걸음을 이어갈 기운을 북돋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들로 통하고 모이게 된 평화바람의 친구들이 36번째 팽팽문화제가 열리는 11월 25일을 디데이로 삼고 9월부터 작당모의를 해왔다.
나에게 평화바람은 인권운동사랑방 선배 활동가들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2003년 11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평화유랑으로 시작된 평화바람과 평택 대추리 투쟁에서 더 깊이 가깝게 만났다고 알고 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처음 만난 평화바람은 희망버스를 타고 모인 부산, 쌍용차 분향소가 있던 대한문,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밀양, 구럼비를 부수며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 그리고 지금 미군기지 확장과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해 싸우는 군산으로 쉼 없이 불어왔다. 언제 어디로든 ‘꽃마차’를 타고 가서 그곳 현장에서 살아가고 지키고 싸우는 것, 그렇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 투쟁과 삶이 고스란히 포개지는 평화바람이다.
하제마을을 기록한 사진전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된 전시공간을 ‘군산평화박물관’으로 만들어 군산에서 군사기지 반대 투쟁의 역사를 비롯해 한국과 세계에서 이어져 온 평화운동을 알리고 있다. 미군기지로 쓰지 못하도록 하제마을을 팽나무와 함께 지키고, 전투기를 위해 새만금 신공항을 짓겠다며 파괴하려는 수라갯벌을 저어새들과 함께 지킨다. “전쟁 말고 평화” “공항 말고 갯벌” 평화바람이 오늘 생명과 평화의 장소로 지키고 싸우고 살아가는 군산에서 걸음이 포개지고 외침이 더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의미라고 생각하며 준비한 자리였다. 드디어 디데이! 평화바람 스무살 생일잔치를 겸한 36번째 ‘특별한’ 팽팽문화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수많은 평화바람의 친구들로 성황리에 열렸다.
2003년 유랑을 시작하며 평화의 바람잡이가 될 것이라 말했던 평화바람은 2023년 오늘도 사람들 사이 그리고 현장들을 가로지르며 평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유랑을 꿈꾸고 이야기한다. 따뜻하지만 강단지고, 묵직하지만 주저함 없고, 힘들고 어려워도 신명나게 놀고 웃을 수 있는 평화바람 덕분에 오늘과는 또 다를 내일을 떠올린다. 그래서 고맙고 그러한 평화바람의 친구라 좋다. 작당모의에 함께 한 이들과 평화바람의 친구들 뒤에 ‘평지풍파’란 이름을 붙였다. 평화바람과 함께 지랄 맞은 세상에 풍덩 뛰어들어 파도가 되려는 사람들, 평화바람의 친구들이 바람처럼 많아지면 좋겠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될 바람이 더 큰 우리로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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