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후원인 인터뷰는 이역만리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이진행 님입니다. 작년 10월, 세상이 너무 답답해서 후원금을 증액하겠다는 반가운 연락을 주었던 후원인이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재외 후원인 이진행 님을 온라인으로 만나봤습니다.
사랑방 후원인들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진행이라고 합니다. 캐나다 선더베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 마케터 일을 하고 있어요. 디지털 노마드(디지털 유목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까, 한국, 캐나다 등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공공미디어 운동을 했었고, 잠깐 자영업도 하다가 이제 캐나다에 정착한 지 4년째가 되어갑니다.
'디지털 마케터'라는 직업이 조금은 생소한데요. 어떤 일인가요?
디지털 마케터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홍보활동, 브랜딩, 마케팅과 같은 일을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랑방 후원인 소식지도 마케팅 일환이기도 하죠. 그밖에 단체나 기업들에서 운영하는 SNS, 블로그 등도 그렇구요. 전체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고 브랜딩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있고, 실제 집행은 기술이 있는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 등이 했다면 이제는 각종 툴이 너무 잘 만들어져 있고, AI도 잘 활용할 수 있어서 일반인도 충분히 각종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혼자서 마케팅 전략부터 실제 집행까지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혼자 할 수 있을 만큼만 해요. 일반적인 마케팅 대행사처럼 엄청나게 많은 물량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업무량 자체보다는 '영혼 없는 마케팅'을 하는 게 어려워요. 제가 마케터이지만 그걸 직접 운영하는 사람만큼의 일체화는 안 되니까요. 의뢰받는 일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기 마련이구요.
예전에 비영리 단체들의 마케팅 전략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오랫동안 공익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들어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힘들게 준비해서 여러 행사들을 치러내는데, 사람들이 와서 이런 자리가 왜 이렇게 홍보가 안 됐냐고 하면 화가 나고 답답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대중적, 효과적으로 단체 활동을 알렸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일을 하면서 엄청난 시장경쟁 속에서 사활을 걸고 홍보전략을 짜고 자원을 투자하는 업체들을 보니 더욱 그렇죠. 제가 공공미디어 운동을 할 때는 우리는 좋은 말 옳은 말 하고 있으니까, 관심 있고 함께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결되겠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비영리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의 홍보전략 등을 같이 궁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은 있어요. 사실 예전에 활동하던 사람들과 간단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홍보/매체 전략은 상당한 자원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서 집행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민사회단체에 '홍보' 관련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해외에서는 비영리단체 홍보는 거의 모금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의 핵심은 타겟팅이에요. 이 메시지를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거냐죠. 타겟에 맞게 메시지를 만들어야 하고 효과적인 채널들을 찾아서 많이 퍼뜨리는 작업입니다. 이제 온라인 채널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런 홍보 자체가 힘들죠. 단체마다 목표는 다를 수 있어요. 해외단체들은 거의 모금활동이지만, 어떤 단체는 안정적인 후원회원을 확보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고, 지금 하는 활동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대중적 접촉면을 넓히는 게 목표가 될 수도 있겠죠.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중들을 만날 고민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디지털 마케터'의 관점에서 사랑방은 어떤가요?
사실 제가 열심히 사랑방 활동을 보고 있지는 않아서요^^;; 지인이 상임활동가라서 후원을 시작했어요. 아주 기본적인 지인 홍보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사랑방은 알고 있던 단체였어요. 저에게 사랑방의 이미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였어요. 어떤 점에서는 믿고 무난하게 후원할 수 있는 단체였구요. 제가 미디액트(MEDIACT)라는 공공미디어 단체에 있을 때,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권하루소식을 게시판에 붙여 놓는 거였어요. 그때는 온라인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았고,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영역의 소식들을 정기적으로 알려주는 인권하루소식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정론지'(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가능한 매체들은 많아졌는데, 정작 내용이 없는 거죠. 어떻게든 사람들이 클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세상이니까요. 반면 사회단체들에서 의미 있고 소중한 활동들을 많이 하고 내용도 풍부한데, 이걸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구요.
작년(2023년) 10월, 세상이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며 후원금 증액 연락을 하셨는데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딱히 뭔가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피로가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우울감이 짙어졌다고 할까요? 안희정 사건부터 우울감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게 3년 정도 흐르는 상황에서 더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정치인들은 오히려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차에 사랑방 소식지가 이메일로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린 거죠. '그래, 혼자 성질만 내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후원금을 내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증액해야겠다' 싶어서 연락했어요. 음. 이런 걸 마케터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당신이 답답할 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 해도 되는 때가 있는 거죠. 아마 9월 기후정의행진 후기*가 실렸던 소식지였던 것 같아요.
*923기후정의행진, 내년은 또 달라질 것이다(2023년 10월 발행)
각자 다른 국가에서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진행 님(왼쪽), 정록 활동가(오른쪽)의 모습.
흔치 않은 재외 후원인 인터뷰인데요. 캐나다 살이에 대해서 나눠주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사는 지역이 소도시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난민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우크라이나 국기와 캐나다 국기를 같이 게양하고 있는 집도 많구요.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이주자들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서, 이주민-난민에 대한 차별이 크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제가 호주에도 잠깐 있었는데 그곳과도 많이 다릅니다. 영어를 잘 못하거나 악센트가 특이해도 다들 그러려니 하죠. 훌륭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구가 많지 않은 이곳에도 베트남, 인도, 중국 식당이나 거리는 기본적으로 있어요. 다만 여긴 한국인들이 별로 없어서 한인마트도 없네요.
사실 캐나다 정치는 잘 몰라요. 기본적으로 언어적인 장벽이 있기도 하고, 이곳은 미국만큼 다이내믹하진 않아서 선거로 집권당이 달라진다고 해도 사회시스템의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반면에 저에게 한국은 들리는 것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은 곳이죠. 제가 캐나다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 가있는지 한국 정치 상황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작년 캐나다 산불 뉴스가 한국에서 크게 보도됐어요. 기후위기를 더 크게 체감하게 되나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극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는 않아요. 다들 그렇겠지만 일하느라 정신없죠. 그치만 올해 진짜 춥지가 않아요. 겨울에는 영하 10~20도가 기본인데 이제는 영상 기온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죠. 이곳은 보통 10월부터 4월까지는 길에 항상 눈이 쌓여있는 곳이에요. 근데 올해는 크리스마스 때 눈이 안 왔어요. 흙바닥이 보인다고 '브라운 크리스마스'라고 했어요. 농부들은 눈이 너무 안 오면 지하수가 없어서 농사짓기 어려워진다고 해요. 산불도 제가 사는 곳에서는 큰일이었죠. 이런 생각들을 하지만 또 바쁜 일상을 반복하게 됩니다. 캐나다는 '기후변화세'라는 세금이 있어요. 먼저 걷어가고 소득에 따라 환급해주는데, 그 환급금 들어올 때마다 한 번씩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평범한 캐나다 사람입니다.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여러분,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고 계신 일이 대부분 정답일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해요. 너무 힘들지 않게 스스로를 잘 돌보며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길들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이렇게 소중한 활동들이 지속 가능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