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만난 지 벌써 8년 차에 접어든 친구가 곧 (한국) 바깥세상에 나가 돌아다니다 오겠다길래, 한동안 못 볼 것 같아 이번 후원인 인터뷰로 모셔봤어요. 제 사회운동/활동의 시작을 함께했던 동료이자 소중한 지지(후원^^)자, 지혜 님을 소개 드립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혜라고 합니다. 성은 잘 안 씁니다. (왜죠?) 아버지 성만 대물림되니까. 그렇다고 또 엄마 성을 호적에 넣은 건 아니라 그냥 둘 다 빼버리면 평등하다.((웃음)) 음… 자기소개 어렵네요. 요새가 저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게 좀 어려운 시기라서. 일단 최근까지는 마포 공동체라디오 ‘마포FM’에서 일했고 얼마 전 퇴사했어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도 횟수로 5~6년 정도 한 것 같고요, 전공은 디자인입니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게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 들리는 목소리, 사람들이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목소리를 키우는 일을 좀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잘 들리게. 물론 제가 어떤 당사자성을 갖고 있을 때도 있지만. 사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들은 또 잘 안 들리게 되는 것 같거든요. 오세훈, 이준석은 맨날 마이크 앞에 서는데.

관련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전 대학을 다녔는데요, 학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 요구가… 사실 안 들린다기보다는 뭐랄까, 총장이 일부러 되게 열심히 안 듣는 거죠. 막 도망을 간다거나. 아현동 철거민 투쟁에도 한두번 연대를 갔는데, 거긴 정말 물리적으로 안 보이게끔 설계됐어서 그 때가 아니면 진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쪽을 잘 들리게 하는 일이 필요하겠구나, 그런 경험들을 통해 갖게 된 것 같아요. 영화제 활동도, 영화를 매개로 마이크를 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오래 하게 된 것 같아요. 되게 멀리 있는 투쟁 현장에서도 와서 교류할 수도 있고요.

2018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새해 첫날부터 학교가 한 건물의 청소노동자 고용승계를 안 하겠다고 하여…
사무처에서 했던 점거 노숙농성에 함께~ 

그게 본인에게 왜 중요한가요?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들, 예를 들면 청소노동자 투쟁이나 철거 문제 같은 얘기들에 비록 제가 당사자성이 없더라도 해방감을 주더라고요. 뭔가 저는 저 스스로 사용자 편에서 생각하거나 효율이나 경쟁 같은 어떤 경제적인 논리를 흡수하기 되게 쉬운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 방식들이 사실은 사람을, 저를 지치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도 조금은 그런 논리로부터 방어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도 같고요.

효율, 경쟁, 그거 완전 ‘대학교' 그 자체인데, 어떻게 또 6년을 버티셨네요.((웃음))

그쵸.((웃음)) 제가 대학 끝나고 상담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런 거였어요. 4년, 휴학 포함 6년. 그저 수업 듣고 과제 하려고 학교를 왔다 갔다 했던 시간들이 유튜브 숏츠를 보면서 보낸 거랑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거예요. 다들 졸업을 해야한다 하니까 했는데, 그래서 졸업하면 그래도 조금은 미화하거나 긍정적으로 회고할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내가 6년의 시간을 바닥에 버렸다, 이런 느낌이었죠.

요새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건 제가 자꾸 제가 하는 일과 저를 분리한대요. 제가 부족한 거, 잘하고 싶은 것과 그 마음 등 그 과정에 되게 다양한 감정이나 제 노력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만족스러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결과물을 마주하는 거구요. 그걸 감당하지 못 하니까. (만족한 것만 자기 거였으면 하는 마음인 거예요?) 그렇죠. 근데 만족한 게 없어.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안 하면 민폐니까 하는 거죠. 매 순간에 제가 없었어요. ‘심지어’ 제가 없는 거예요.

제주 강정마을에 다녀온 이후엔 왜 괜찮아졌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학교에선 학교가 갖고 있는 가치와 제가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니까, 거기서 저 스스로 마음을 다지거나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그냥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는 수많은 디자인들은 되게 많은 자본과 자원을 투자해서 만들어진 되게 높은 완성도의 무언가인데, 그런 것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어요. 강정에선 제 작업의 완성도나 대단한 홍보력이 아니라 자기(우리) 이야기를 잘 담고 있냐를 봐줬거든요.

 

동료들과 함께 만든 강정마을 인간띠잇기 깃발 "늑대가 나타났다" (첫번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 6000일 웹자보 "전쟁을 끝내자" (두번째) 

후원은 어쩌다 하게 되셨나요?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요. 이름을 안다고 다 후원하는 건 아니고, 님이 여기 들어온다고 해가지고.((웃음)) 근데 그 전에도 사랑방이 홍대 쪽 가정집에 살 때 저 거기 앞집에 살았거든요. 사랑방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을 못하겠지만. (미류와 인사했던 기억이 있다고.) 네. 제가 영화제 활동도 했고 여기저기 사랑방 이름도 되게 많이 듣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적 친밀감을 느껴버린 거예요. 그래서 담배 피다가 어머, 안녕하세요- 이러고 인사했는데 ((웃음)) 너무 당황하신 거야.

음. 해미가 상임활동가가 됐다 했을 때 저한테 중요해진 지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냥 지인이 일한다고 하니 마음을 쓰고픈 마음이 하나 있었고, 두번째는 제가 동물권에 관심이 있고, 비건이 되려고도 하고 있고 해미도 그런 데 관심이 있단 걸 알고 있는데. 음. 사실 ‘인권’이라고 얘기할 때 사실상 동물권이 배제된다는 생각을 저는 했었거든요. 그랬을 때 해미가 들어가면 그 거리감 같은 게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한 이야기도 넣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더 마음이 가게 된 거죠.

일종의 미션이 주어진 거네요.((웃음)) 그 ‘배제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가령 페미니즘이 ‘비'남성의 자리에서 문제를 따지면서 시작되긴 하지만, 남성을 배제하는 건 또 아니잖아요.

‘인권’이라는 개념이 계속 확장되어 왔잖아요. 그 안에서도 시대나 맥락에 따라 주제나 구체성이 계속 변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런 인권(운동)의 흐름에서 아직 ‘동물권’은 ‘인권’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되지는 못했구나. 교차 지점이 많이 찾아지지는 못했구나, 싶었던 거죠. (동물권 논의가) 막 시작한 단계라서 그렇단 생각이 들긴 해요. 제가 관련한 고민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그때는 비건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한국에서 이 운동이 제 생각보다 훨씬 빨리 커진 것 같아요. 벌써 비건에 대한 거부감, 반발감마저 있는 수준이니까.

현재 상황에선 개인이 육식을 하지 않으려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빨리 수월하게 비건을 하는 거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있고, 그게 대기업이 만들어주는 비건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주의적 관점’으로 흘러가는 부분이 있죠. 사람들은 뭔가 ‘소비’하는 걸 강요한다고 느낄테고. 저도 아쉬운 지점이라 생각해요. 근데 그게 비건 운동의 전부냐 하면, 당연히 아니거든요. 다른 운동들이 다 그렇듯 여기도 한 가지 가닥만 있는 게 아니고 각자 결이 다 다르죠. 그런 (소비중심) 방식으로는 어떤 체제전환에 있어 한계가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랑 생각을 나누면서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당장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물을 구조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직접행동이나 구조 활동을 하는 거겠고.

비건/동물권 운동의 관점에서 인권 문제를 함께 살핀다 했을 때, 어떤 게 다르려나요?

사람의 주거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고양이나 개의 주거권을 함께 고민해본다거나, 도시화·개발로 자리를 뺏기는 길동물, 야생동물과 공존할 수 있도록 모두의 생활권이 같이 가는 방법을 고민해본다거나. 물론 저도 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웃음)) 어쨌든 이 운동은 결국 사람이 하게 되잖아요.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가 대리해서 하게 되는 거죠. 그럴 때 인간과 동물의 권리가 공존하는 접점을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IW31_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에서 동물권 운동하던 분들이 보호소나 시설에 ‘감금’된 여러 사람들과 동물의 이야기를 엮었던 거. 그렇게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면서, 제가 확장된 게 좋은 것 같아요. 제일 힘든 거라면, 친구를 조금 잃었다는 거?^^ 밥 혼자 먹기 싫은데… ((웃음))

곧 오키나와로 떠나시잖아요. 거긴 좀 어떨지 덩달아 걱정 되네요. 먼 길은 왜 떠나시게 됐나요?

‘평화운동’ 하러?((웃음)) 음. 이 말이 저한테 되게 어렵긴 하지만, 일단 강정마을과의 인연에서 시작한 건 맞아요. 처음 강정을 알게 된 건, ‘강정 해군기지 반대싸움 4000일’에서였어요. 그 때는 그냥 잘 놀다 왔다 정도였고, 뒤에 인천인권영화제 활동하다가 ‘미디어로 행동하라(미행)’ 프로젝트로 제주에 갔어요. 근데 그 때도 제2공항이 주요 거점이라 (강정을) 잘은 몰랐는데, 나중에 궁금증이 생겼어요. 강정이 중심이 되는 투쟁인 것 같은데 왜 더 다뤄지지 않는 느낌이 들까? 강정은 뭐하는 곳일까? 그래서 혼자 한달 정도 강정에서 지냈어요. 친구를 못 만들고 서울 왔다가, 또 갔어요.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이런 거 아닐까 싶어요. 그때 강정이 한창 외부에 마음을 닫고 있을 때인데, 계속해서 저한테 어떤 힌트들이 던져지는 것 같았달까. 그러다가 해군기지 건설, 비자림로 공사, 송악산 개발, 월정리 해녀 투쟁까지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제주도-오키나와-타이완. 이 세 장소가 미중 알력다툼에서 최전선으로 쓰이는 지역들인 만큼, 동아시아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지역이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섬은 ‘국경’ 무관하게 자기가 중심이거든요. 근데 자꾸만 섬을 외곽으로, 지방으로 전락시키는 거죠. 일본에서 쓰는 메인랜드, ‘본토’라는 말도 일본의 핵심은 오키나와가 아니라 동경이 있는 큰 섬이라는 거예요.*

* 지혜 님이 오키나와에 활동하러 가고 싶어진 계기가 된 글을 공유하고 싶다 하여 아래 첨부합니다. 해당 문단과 관련하여 상세한 설명도 있답니다 :) 
─ 세계평화대학 강정캠퍼스 "바다와 평화" 세미나 원고 <국경의 섬> by 송강호
(개인적으로는, 관련한 내용으로 토론을 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   

지금도 사람들에게 ‘평화운동을 하러 간다’고 하는 게 어렵거든요? 노동운동, 여성운동을 한다고 할 때와 ‘반전평화’가 제 일상에 와닿지 않는데, 근데 오히려 와닿지 않으니까 더 하고 싶은 거예요.((웃음)) 아까도 말했듯이, 경쟁과 차별 같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것들로 저 스스로를 옥죄는데, 새로운 의제나 이야기를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저한텐 그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줬거든요. 실제로는 내가 말하고 싶지만 그게 언어화되지 않고, 또 혼자서 그걸 말하기 망설여지는 억압이 있으니까, 그걸 미리 어떤 구체화된 의제를 통해 말하고 있는 이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돼요. 그러니 내가 지금 ‘평화’라는 의제를 알게 됐는데, 그게 아직 내 것으로 안 됐어. 그러면 이것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저 자신이 더 확장되고 또 해방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 거죠. 

제가 이번 체제전환운동포럼 때 '봄으로 가는 편지'를 주었던 친구입니다~ 

인천인권영화제 에코백과 함께

최근, 새롭게 발견한 자신이 있나요?

마포 FM에서 그런 걸 되게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란 사람은 하루하루 루틴에 지루함을 너무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 라디오 들으면 여러 사람의 시시콜콜한 일상 같은 이야기, 소각장 문제 같은 지역의 이슈를 들으니 하루가 지루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뭐랄까, 제가 사는 ‘동네’에 관심이 너무 없었거든요. 그냥 동네가 너무 싫을 정도로. 이사도 많이 다녔고, 그럴 때 섭섭함도 없었어요. 그런데 라디오 하면서 제가 사는 곳과 연결감을 많이 얻었던 게, 이 장소나 동네를 제가 소중하게 느끼게 된 계기 같아요. 앞으로도 이주하게 되는 여러 공간에서도 거기서 일어나는 일, 관계들에 연결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포FM 많이 들어주세요~!)

마지막으로, To. 사랑방에게.

제가 한 가지 의제에 뚜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의제를 연결하면서 잘 들리도록 많이 말하게 하고, 또 스스로 그게 잘 맞겠다 생각하는 사람인데. 사랑방도 그런 종류의 곳인 것 같거든요. 제가 또 오키나와를 가니까 국내 이슈나 원래 관심 갖던 것 외에는 멀어질 수도 있는데, 열심히(ㅎㅎ) 하던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