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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시 마주한 숙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보내며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지금도 그 복잡한 마음을 좀 풀어써볼까 했는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냥 10주기를 지나며 들었던 고민 몇 가지만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 스스로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올해는 인천에서 열리는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부터 참석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추도사를 하더라고요.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직함을 가진 이들의 추도사가 이어졌습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일의 모양새는 갖추었는데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리로 표시된 빈 의자를 사진기사로 보았는데, 글쎄요, 대통령이 참석한들 그 내용이 채워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여러 공직자의 추도사는 대체로 뻔한 내용이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내세우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기술과 현장 중심 대응을 강조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자체 재난대응훈련의 성과를 내세웠습니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시민참여를 강조했고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 중요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제각각일 때는 책임 떠넘기기의 또 다른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이태원참사에서 이상민 장관이 현장 지휘가 중요하므로 자신의 지휘는 부적절하다고 소방청에 책임을 떠넘겼던 것처럼요.

기술도 중요하고 훈련도 중요하고 시민참여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정부가 방기한다면 제 기능을 하기 어렵습니다.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의 인정은 그 역할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재난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난안전시스템의 개별 요소를 개선하는 것 이상으로 그 요소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구조를 짜고 각자의 역할을 규정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등의 일을 넘어서, 그 시스템이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목표를 시스템에 각인시키는 일일 텐데요, 세월호참사나 이태원참사에서 확인된 것은 바로 그 목표의 부재였습니다. ‘구해야 한다’는 목표 말입니다,

세월호참사 해경 지휘부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의 서사 중 하나는 ‘세월호처럼 큰 배가 그렇게 빨리 침몰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는 분명 이례적으로 빠르게 침몰했습니다. 조타기 고장과 과적, 불량고박 등의 원인이 중첩되어 좌현으로 기울며 표류하기 시작했을 때 선체로 들어오는 물을 막아야 할 수밀문이 모두 열려있던 탓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해경이 미리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해경에 “사태가 낙관적이어도 항상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조치를 강구할 것”이 기대되는 것은 상식 아닐까요?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해경 지휘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구조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요. 세월호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해경에 주어진 시간을 가늠하며 동원 가능한 자원을 파악하고 그 조건에서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조치가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휘부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해경 지휘부가 주고받은 통신기록의 내용을 보면 승객을 구조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구조되기를 바라는 것과 구조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습니다. 그 상황이 자신의 책임 아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지의 문제죠. 즉 침몰 시간을 예측하는 것부터가 해경의 책임이었던 것입니다.

예상할 수 있었나 없었나가 쟁점이 된 것은 이들의 재판이 과실치사의 법리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상할 수 있었다면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이들의 과실이 되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예상할 수 없었다는 데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재판을 끝냅니다. 침몰 시간을 예상했어야 하는데 예측하지 않은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 퇴선명령도 비슷합니다. 퇴선명령은 선장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선장이 하도록 지시했다면 그 판단에 대한 책임도 해경이 져야 합니다. 해경에 신고가 접수된 순간부터 승객 구조에 대한 최종 책임은 해경에 있는 것이니까요. 해경 조직 안에서도 세월호참사에서 해경 지휘부가 잘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법은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말았습니다. 책임자에게 책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세월호참사에서도 이태원참사에서도 당혹스럽고 난감한 문제입니다. 애초에 책임을 모르니 책임을 지라고 하면 도통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안전시스템이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인 줄 모르면 그것은 안전시스템이 아니라 또 하나의 행정시스템일 뿐입니다. 그러면 공직자에게 ‘책임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일까요? 그렇게 보기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청와대와 각급 정보기관들이 무엇을 했는지 상세히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반국가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깁니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힘이 국가를 지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참사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재난이 어떻게 발생했고 왜 구조에 실패했는지 밝히는 일보다 책임을 말단에서 차단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히려 시민의 ‘안전의식 개혁’이 필요하다(김기춘)고 하면서요. 각종 안전대책을 쏟아내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재난안전 담당 부서는 기피 부서에 순환직일 뿐 전문성을 길러내지 않습니다. 해경이나 경찰에서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업무들은 주변화됩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상식과 실제 국가의 괴리가 참사를 통해 드러나니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유언비어가 떠돌기도 합니다. 『민중, 저항하는 주체』라는 책에서는 “민중언어 가운데서도 유언비어에서 저항성이 가장 또렷이 나타난다”고 평가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정보도 부족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석해보려는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라고요. 세월호참사에서 외력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던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여러 의혹이 해소될 만큼의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의혹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밝혀진 사실조차도 함께 기억하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바꿔야 할 것은 많고 심대한데 그걸 바꿀 ‘우리’가 되어가는 일이 어려운 것이죠.

세월호참사는 우리 사회가 재난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재난은 우연히 닥치는 불행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배경과 원인을 가지는 사건이라고요. 우리가 재난으로부터 조금 더 안전한, 재난이 닥치더라도 다르게 겪을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려면 사회구조적 원인을 잘 짚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구조의 문제를 압도하는 공직자 개개인의 책임의식 없음이 동기를 떨어뜨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난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방법을 아직 잘 익히지 못한 우리가 멈칫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유가족과 시민이 어떻게 다시 변화의 키를 잡고 움직여야 할지가 큰 숙제로 다가온 10주기였습니다. 그 숙제가 무엇일지 함께 헤아리는 일부터 필요할 텐데요, 10주기 앞두고 나온 몇 권의 책을 추천해봅니다.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2014년생』. 조금씩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계속 나아가야 할 길이 어때야 할지 고민하기 위한 실마리를 건네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쯤에서 함께 걷고 있는지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