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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의 한달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밀양 행정대집행 10년, 다시 타는 밀양희망버스 탑승 후기

지난 4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밀양대책위)가 사랑방으로 제안 하나를 해왔습니다. 10년 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 그 과정에서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어떤 반성도 없이 핵발전 확대 정책을 펼치려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를 함께 조직하자는 것이 제안의 핵심이었습니다. 안식년에서 복귀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밀양대책위 사랑방 담당자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적응에 허둥대기도 바쁜데 갑자기 전국 단위가 모이는 집회를 조직하려니 솔직히 부담감이 컸는데요. 그 부담감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10년 전 함께했던 밀양 투쟁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0년 전 저는 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아니었습니다. 사랑방 상임활동을 염두에 두고 사랑방을 자주 들락이며 자원활동을 할 때였는데요. 마침 그때 밀양희망버스 준비 회의가 한창일 때라 사랑방 동료 활동가들과 참여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회의는 제가 사랑방을 벗어난 첫 외부회의의 경험이기도 했는데요. 회의에서는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공권력의 폭력을 온몸으로 맞서는 상황이 공유되었어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협박은 물론, 조롱하기까지 하는 공권력의 모습 앞에 주민들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급한 마음으로 더 많은 연대를 모으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던 나날들이 떠오릅니다.

저와 같이 다급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까요.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은 전국적인 연대의 마음을 모아냈고, 두 차례에 걸쳐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출발하며 의제와 지역을 넘나드는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밀양의 구호는 전력 생산에서부터 전달, 소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부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노골적인 국가폭력은 공권력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해 온 또 다른 지역의 주민, 노동자, 철거민이 밀양과 함께 싸울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연대 투쟁의 장이었던 밀양은 서로 다른 운동의 의제가 연결되고 교차하며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곳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허란, 최형락(밀양 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아카이브)

하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밀양에는 결국 송전탑이 들어섰습니다. 부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을 드러낸 밀양송전탑 투쟁은 여느 투쟁이 그러하듯 마냥 현재 진행형일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투쟁이 일단락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제 안에는 서로를 가로질렀던 그 진한 연대의 경험을 공동의 평가로 남기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가졌던 물음은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긴 채 저의 밀양 투쟁의 경험은 그렇게 갈무리되었습니다.

제 안에 밀양 투쟁에 관한 질문이 남은 이유는 송전탑을 끝내 막아내지 못해서 일지도, 열심히 함께 싸웠던 이들이 여러 이유로 흩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밀양은 강렬한 경험인 동시에 마음 한켠에 남아버린 과거형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시 밀양으로 모여보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왜 이제 와서 다시 밀양으로 모이자고 하는 걸까?’ 송전탑이 다 들어선 마당에 어떤 싸움을 할 것이며, 더 연로해진 주민들과 어떤 투쟁을 이어가려는 것인지, 무엇보다 앞서 풀지 못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다시 모이면 어떤 다른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지와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죠. 풀지 못한 질문을 품은 채 내가 누군가에게 밀양으로 다시 모이자는 말을 건넬 수 있을지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10년 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품었던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연대할 수 없고, 더듬어 가며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겠지요. 저의 질문과 혼란을 잠시 제쳐두고 밀양의 요청을 살피니 변화가 보이더군요. 밀양으로 다시 모여보자는 초동을 제안하는 이들에도 변화가 있었고, 밀양 싸움을 다시 이어가기 위한 고민의 변화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밀양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우는 국가 권력의 부정의를 외치는 싸움에서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는 기후정의운동의 목소리가 모이는 투쟁의 현장으로 확장하고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할매, 할배들의 눈물 나는 투쟁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에 정의를 외치는 투쟁으로 밀양을 발견하고 함께 싸우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식년 복귀와 동시에 조직력은 없지만 조직담당자가 되어 밀양 투쟁을 함께 했습니다.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전화를 돌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렇게 전국 25명의 조직담당자, 전체 기획단 약 50여 명이 가열차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6월 8일 전국 20대 버스와 개인 참가자들이 폭우를 뚫고 밀양으로 모였습니다. 약 1,000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국가폭력의 문제는 물론 자본주의 에너지 체제의 문제를 폭로하며, 탈핵과 탈석탄을 외치며 에너지 정의에 부합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자리가 성사된 것 입니다.(이 글을 빌어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사진 출처 :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주년, 6월 8일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 기획단



이번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 탔던 한 분의 이야기가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10년 전 밀양 행정대집행 현장을 함께 지킨 빈민 운동 활동가였는데요. 그는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묵살한 채 수도권으로 보내진 전기가 결국 도시 빈민을 쫓아낸 자리에 들어선 고층빌딩에 공급되어 도심을 환하게 비추는 현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밀양을 그저 과거형으로 두었던 제게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는 말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나가는 운동이 사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고, 그래야 10년 전 투쟁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도 찾고 다음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구나를 깨닫게 한 것이죠. 그제야 사랑방 동료인 미류가 이번에 밀양에서 제안한 집회가 ‘고마운 초대’라고 한 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밀양을 떠올리며 과거의 장면들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제가 어떻게 밀양과 만나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도록 밀양에서 먼저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말 그대로 고마운 초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집회를 계기 삼아 기후정의를 위한 탈핵탈송전탑 운동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밀양대책위 활동가의 모습을 보며, 이번 만남만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만남을 예감하게 됩니다. 이제는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기보단, 각자의 자리에서 펼치는 투쟁이 빚어낼 연결 고리를 더욱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