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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사랑방이 30년 운동 맛집의 전통을 이어가길 바라는

원동일 님을 만났어요

이번 907기후정의행진 집행위원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집행위원이었던 원동일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크고 작은 기후정의운동의 현장에 늘 함께하면서 웃음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원동일 신부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랑방 후원인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프레드릭 원동일 신부입니다. 교구 1지구장이면서 기후정의생태환경 지역담당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멸종반란 가톨릭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곳에서는 F1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F1은 신부를 뜻하는 파더, 제 성씨인 원을 합쳐서 '파더원’을 F1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기억하는 첫 장면은 2021년 멸종반란의 COP(기후변화당사국총회) 규탄 퍼포먼스때 영국 총리 역할을 열정적으로 했던 모습입니다. 그 뒤로도 저에게는 가장 열심히 기후운동을 하시는 종교인이신데요. 기후운동에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본당 신부로 20여 년을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사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정록 님이 기억하시는 멸종반란 퍼포먼스때 맡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할이 거리에 본격적으로 나선 첫 기억이긴 합니다^^ 본당 신부로 생활하다가 2020년에 의정부교구의 1지구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성당에 매여 있는 본당 신부와 달리 지구장은 지역기반으로 활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활동을 고민하게 됐죠. 마침 2021년에 남양주 지역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을 결성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저에게 참여요청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기쁘게 받을 수 있었던 건,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인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찬미받으소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지켜야
할 헌법과 같은 규범인 ‘회칙’으로 지구 전체를 향해 반포된 것입니다. 2015년 6월에 반포되어서 파리기후변화협정 체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랜만에 저를 본 분들은 ‘요즘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 시대의 흐름에 나를 맡겼을 뿐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가톨릭기후행동, 멸종반란 활동, 이번 9월 기후정의행진에는 집행위로도 함께하셨습니다. 지난 몇 년간 기후정의운동의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4년 동안 계속 배우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처음에는 기후운동을 하는 분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같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서 배워지는 게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 생각의 방향, 선택 이런 게 알게 모르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나도 계속 배우게 됩니다. 

가톨릭기후행동에는 수녀님들이 많은데, 저는 수녀님들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에서 많이 배웁니다. 수녀님들은 신부들과 달리 계산하지 않더라구요. 멸종반란은 젊은 활동가들이 굉장히 급진적인 점 그리고 돌봄을 중요시하는 그런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런 점은 가톨릭 안에서도 맞닿는 지점이 있어요. 가톨릭에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모두를 깨우는 날카롭고 뾰족한 행동을 말하죠. 그리고 돌봄은 ‘서로 사랑하여라’와 연결되구요. 기후정의운동 자체가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신다는 것과 깊게 연결돼 있습니다. 기후운동이 이야기하는 물질의 과잉과 독점을 반대한다는 건 가톨릭의 신앙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저는 활동하면 할수록 저의 신앙, 복음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활동을 통해서 배우는 과정이 동시에 저의 신앙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9월 기후정의행진 집행위를 신부님과 함께하면서 인상적인 게, 신부님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항상 주변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더라구요. 미리 준비하시나요?^^

저는 이번 9월 집행위를 하면서도, 이걸 ‘일’로 생각하지 않고 ‘관계’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내 역할이라는 건, 이 관계들이 안에서 잘 흘러가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주시는 걸 받자, 뭐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일에 대한 압박감 부담감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다면 그건 웃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이 주신 거죠. 원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잘 안 가고 그랬는데, 신부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미리 유머를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역시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압박감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할 뿐입니다.^^

 

가톨릭 성소수자 앨라이 모임인 ‘아르쿠스’에도 함께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이 함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사랑방과의 접점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어떻게 아르쿠스 활동을 하게 되셨나요?

가톨릭에서 2년 전에 시노달리타스라는 모임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시작했어요. 시노달리타스는 ‘함께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이 모임을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에서 시작하면서 성소수자들을 초대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님을 만나게 됐고, 그 뒤에 그분의 초대로 부모모임에 제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 1년 정도 부모모임에 나갔고 그 계기로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님도 만나고 하면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하 ‘차제연’)도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 뒤에 퀴어퍼레이드도 가서 고해성사도 집전했죠. 

그리고 약 1년 전부터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가톨릭 성소수자 앨라이 모임 ‘아르쿠스’를 만들어서 연대하게 됐습니다. 아르쿠스는 무지개라는 뜻인데,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아직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퀴어운동의 상징인 무지개가 하느님의 언약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르쿠스’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신부님께 아르쿠스 활동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먼저 주변에 성소수자가 많다는 깨달음을 새삼 얻게 됐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자마자 부임하게 된 성당에서 만난 청년회장이 성소수자였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고민도 부족해서, 그 친구를 제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뭔가 좀 차갑게 대했던 것 같아요. 가톨릭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데 괴롭다는 그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거죠.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런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대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저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남아있었던 거죠. 이제는 성소수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연결이 되어서 하느님이 그전에 니가 못했던 것을 해라 이렇게 말한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을 만나보니까,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너무 잘 표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사제로 살면서 그 정도의 감정과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일상적인 사목활동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느낌을 받은 거죠. 일반 신자들은 평생에 한두번 할까말까한 그런 이야기들을 모임 할 때마다 성소수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싶죠. 진짜 이분들이야말로 영적인 그런 부분들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움직이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이들이 기댈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될 수도 있는데, 가장 적대적인 세력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 매우 답답합니다. 

 

그럼 이제 사랑방으로 돌아와서, 인권운동사랑방은 신부님에게 어떤 곳인가요?

물론 후원은 정록 님이 전화해서 하게 됐지만, 기후정의운동뿐만 아니라 차제연 활동에서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을 보면서 사랑방 활동가들이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부분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러면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게 됐습니다. 

원래부터 인권운동사랑방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일단 ‘사랑’이 들어가면 좋아요. 이름을 잘 지었어요.^^ 그리고 사랑방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사실은 이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형성됐는지도 궁금하죠. 사랑방은 오래된 단체이잖아요. 30년이 넘은 인권단체인데, 지금 계신 분들이 어떻게 인권운동사랑방에 합류하게 됐으며 그 가치들을 계승하고 보존하게 됐을까 싶었어요. 시대가 이렇게 많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는데 이런 인권운동이 아직도 있다는 게 신기하죠. 그러다보니 사랑방 활동가들이 궁금하구요.  

 

신부님이 궁금해하는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부탁드릴게요.

처음에 사랑방에서 받았던 좋은 인상이 나침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빛과 소금의 역할도 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역할은 때로는 시류를 거슬러야 할 때도 있는 거죠. 사랑방이 운동의 급진성과 날카로움을 벼려주면 좋겠습니다. 단체들이 후원자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고 그러면 다들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마치 음식점이 처음엔 조그맣게 하다가 커지면서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러시면 안 됩니다. 활동가들이 잘 살 수 있는 여건은 중요하지만 운동이 돈과 관련되면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보통 단체가 30년이면 짠맛을 잃을 법도 한데, 사랑방은 안 그렇잖아요? 앞으로도 후원인으로 쭉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