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꽤 오래전에 나온 한 공포영화의 제목이 맴도는 요즘이다.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이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남긴 이야기와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집요하게 쫓는 ‘눈’이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도 국가의 이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톡
국내 이용자 3700만 명, 점유율 93%로 국민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 ‘까톡’ 소리와 함께 매일 들여다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동안 카카오톡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런데 경찰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과 책임을 요구하다 구속되었던 정진우 씨(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내용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정진우 씨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사실을 3개월이 지난 9월말 경 통보받았다. 경찰이 보낸 통지서에는 ‘2014년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40일 동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의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에 대해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당시 정진우 씨 대화방에 있던 사람들 수는 3000여 명으로 이들의 개인정보와 함께 커뮤니티에서 나눈 다양하고도 내밀한 이야기들이 통째로 검‧경의 수중에 들어갔음을 짐작케 한다. 카카오톡 압수영장 피해사례는 비단 정진우 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카카오톡 압수 피해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피의자의 카카오톡 내용을 3개월 간 실시간 감청했다는 사실도 제기되었다. 디지털 압수수색 및 감청에 대한 영장 청구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영장집행을 허가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사찰이 이루어진 것인가에 대해 카카오 측과 검‧경이 서로 책임을 떠밀면서 변명과 다를 바 없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톡, 언제든 내 메신저 상에서의 대화가 사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며 카카오톡을 대체할 메신저를 찾아 떠났다. 그래서인지 지난 한주 동안 150만 명이 신규 가입하는 등 독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열풍이 불고 있다.
사이버 상 ‘긴급조치’는 상시적 감시 시스템
최근 카카오톡 사찰 논란으로 더 극대화된 것일 뿐, 사이버 망명에 불을 붙인 것은 박근혜 정부이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직후, 9월 18일 검찰은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를 엄단하겠다며 전담 수사팀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포털사와 함께 카카오 관계자도 참석한 대책회의를 열고 검찰은 유관기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상시적 모니터링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사이버 상 감시와 사찰을 공식화하겠다는 선포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등장한 사이버 상 ‘긴급조치’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은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쓰면 위축될 이유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국가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 자체를 불온하게 생각하는 저들은 상시적인 감시 조치가 사람들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저항의 행동을 조직해야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항의행동이다. 언제든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하는 국가권력, 공안기구에 맞서 대안적 기술을 함께 찾고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이버 망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지금 여기, 바로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곳에서 국가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계속 불안감으로 부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지메일에 이어 최근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은 보안성이 더 높다는 이유 때문인데, 공권력은 언제든 내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직접 가져갈 수도 있고, 대안적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 수도 있다.
사이버 상 ‘긴급조치’ 발표 이후 카카오톡 사찰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수사상 적법절차,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책임 떠밀기 식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진우 씨는 압수수색 자료 공개 등 검찰과 카카오 측에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사를 위한 정보수집이라는 미명 하에 별다른 제한 없이 함부로 이루어져왔던 공안기구의 디지털 압수수색 및 감청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정보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운동도 주목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인 공안기구를 직시하자. 그토록 공안기구가 감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단지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수입쌀 전면개방, 민영화 등 전 방위적으로 박탈되는 권리를 지키며 서로의 삶을, 존엄을 지키려는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감시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이버 망명의 흐름이 나아가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저항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