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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로 물구나무] 자리를 잘못 찾은 이름표

이름표가 없어야 할 곳, 있어야 할 곳

이름표를 다는 이유는 이름을 기억하고 서로를 좀 더 쉽게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정작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있는 이름표를 자주 만날 수 있다.



학생부 교사가 버티고 선 교문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조금씩 위축된다. 교사에게 지적받지 않기 위해 머리 길이와 옷매무새, 가방 색깔까지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이름표다. 아예 교복에다 박음질을 해둔 학교도 많다.

학교 현장에선 오직 학생들만이 이름표를 단다. 이 때 이름표는 단순한 식별의 의미를 넘어 통제를 위한 도구가 된다. 이름표를 달아야 하는 학생과 이름표가 없는 교사는 곧 통제의 시선 아래 늘 놓여있어야 하는 학생과 보이지 않는 통제자를 의미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이름표 착용을 의무화시킴으로써 학생들을 좀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다.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이름표 착용 강요는 분명한 개인정보에 대한 침해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너무 쉽게 잊힌다.

한편 정작 이름표가 있어야할 곳에는 이름표가 없다. 얼마 전 장애인 집회 당시에 본 전경들의 복장.

<사진 제공: 박김형준>

▲ <사진 제공: 박김형준>



시위 도중 농민 사망사건으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문제 되자, 올 1월 경찰은 근무복에 개인 명찰을 달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시민이 자신과 접하는 공권력의 행위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자신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그런데도 집회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와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전․의경들의 제복에는 이름표가 없다. 진압부대의 물리적 폭력이 벌어질 수 있는 집회 현장에 이름표도 없이 전․의경을 배치하는 것은 시민들이 ‘익명성’ 뒤에 숨은 공권력의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음을, 그러면서도 대처할 길이 없음을 의미한다.

며칠 전 FTA 반대 집회 현장에서 다시 전경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이 현장에서도 전경들은 익명성이 보장된 검은 시위 진압복 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폭력의 향연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