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 개인과 개인 간에 어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느냐 만은 그 ‘다름’이 한국 내에서 한 가족과 가족이 다른 것, 또는 계층과 계층 간에 뭔가가 다름 등과 비교 했을 때, 그 편차가 더 심하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인도네시아 시골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살던 곳은 해발 600미터 정도 되는 지역으로 아침과 저녁에는 날씨가 쌀쌀해서 샤워를 하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동네사람들 다 하는 아침 샤워를 생략하고 간단한 세수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유독 한 친구만 “샤워했니?”라고 물어본다. 그것도 매일 아침마다. ‘이 친구가 어떻게 내가 샤워를 안 하는 줄 알고 나를 놀리지?’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되고, 힘들고, 혼자서 울기까지 했다. 주위에 아무도 의논할 한국 사람도 없고, 그때는 정말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말을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꼭 복수해 주리라 속으로 다짐 또 다짐을 했다. 어느 날 멀리서 방문한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하는 인사말 중의 하나라고 한다.
50대 남편이 우악스럽고 노란 굳은살이 두껍게 낀 손으로 임신한 베트남 아내를 때렸다. 남편 얘기를 들어 본 즉, 늦게 퇴근을 하고 돌아 왔는데 아내가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는 것이다. 침대 베개 밑을 보니 밀가루 반죽 밀대가 있었다. ‘내 얼굴을 때리더니만, 내가 잘 때 나를 어떻게 하려고 이런 것까지 가져다 놓았구나’ 라는 생각에 아내를 때린 것이었다. 이후 베트남 아내 말을 들어본 즉, 아무도 없는 집에 있으면 귀신 나올까 무서워서 베개 밑에 밀대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무서우니 일찍 들어오라고 투정을 부리면서 얼굴을 살짝 토닥거렸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남편 얼굴을 토닥거리는 것은 애교의 일종이라고 한다.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트남 여자는 귀신을 쫓고 아이가 건강하길 바라며 아이 베개 밑에다가 과일칼을 놓아두었다. 놀란 남편은 위험하다며 과도를 빼앗았고, 그녀는 과일칼 대신 칼 비슷하게 생긴 버터나이프를 베개 밑에 놓았단다.
한 베트남 여자의 이혼소송을 돕기로 했다. 소송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말도 없이 두 번 이나 그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약속 좀 잘 지켜라. 이혼을 안 할 생각이면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라며 전화로 화를 좀 냈다. 근데 그가 “아이 씨” 이러는 게 아닌가! 이혼하고 싶다고 도와 달라고 한 사람은 누군데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이 씨”라니……. 너무 화가 나서 통역을 도와주는 베트남 사람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선생님, 베트남에서는 ‘아이 씨’라는 말이 욕이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 시댁식구들 앞에서 이런 ‘아이 씨’ 했다가 남편에게 혼났어요”라고 한다. 사실 지금도 이 ‘아이 씨’라는 게 어느 수준의 감탄사인지는 감이 오지 않지만 어찌 되었던 욕은 아니란다.
잠시 실직상태에 있는 남편에게 베트남 아내는 “일 없어 남자 돈”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돈을 못 버니깐 이 여자가 나를 무시하고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구나’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는 아내를 집 밖으로 내 쫓았다. 여기서 아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힘들어하니깐 내가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서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사회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하고 배울 기회가 적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 아시아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지함과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이런 편견과 선입견에 저항력이 약한 일단의 한국남성과 그 가족들, 이런 각각의 요인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위의 사례와 같은 웃지 못할 사건들이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요즘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이주노동자나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을 초대하여 아시아 각 나라의 풍물, 문화와 음식 등을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한글 공부를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며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와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작은 씨앗을 보는 듯하다. 그런 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김민정 님은 이주,여성인권연대 정책국장입니다. 이 글은 김민정 님이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