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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홍보의 장이 된 유엔 NGO 컨퍼런스

진정한 NGO 참여의 장으로 거듭나야

지난 5/30~6/1 경상북도 경주에서 제 66차 유엔 NGO 컨퍼런스가 열렸다. 유엔 NGO 컨퍼런스는 유엔에서 주최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민사회 회의이며 전 세계 약 1,0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회의다.

유엔 NGO 컨퍼런스에서는 매번 최종 결과문서(outcome document)를 결과물로 채택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작업하여 만들어내는 문서다. 회의기간 전에 유엔 NGO 컨퍼런스 측은 결과문서 초안을 웹사이트에 올려 의견을 받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 컨퍼런스 기간 중에는, 결과문서를 화면에 띄우고 참석자들과 함께 문구를 하나하나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번 회의는 ‘세계시민교육: 유엔 지속가능한발전(SDG) 목표 이행을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만큼 이와 관련된 내용이 결과문서에 담길 예정이었다.

그런데 컨퍼런스 개최일이 다가오자 이전부터 유엔 NGO 컨퍼런스에 참가해 온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문의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사이트에 올라온 결과문서 초안에 새마을 운동을 미화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 같다며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을 묻는 메일이었다. 급하게 내용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새마을운동은 농·어촌과 도시 지역 간의 경제적 및 사회 기반적 격차를 줄이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모범적 시민운동이었다. 1970년대에 이는 향후 수십 년간의 국가성장을 촉발하는데 일조했으며,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 강력히 기여했다. 세계시민성의 맥락에서 2030 의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새마을 운동을 빈곤퇴치와 개발의 모델로 제안한다.”

국제 행사의 문서에 한 국가의 특정한 모델이 들어간다는 것도 이상했고 아직 그 평가에 있어서 논란이 많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이와 같이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평가가 담기는 것도 적절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이에 국내 70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해당 문단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 문서를 유엔 NGO 컨퍼런스 측에 전달했다.( 유엔 NGO 컨퍼런스 결과문서 초안 중 ‘새마을운동’에 대한 국내 70개 인권시민사회단체 입장 발표 참조) 새마을운동으로 인해서 일부 농촌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히려 농촌지역의 국가 의존성이 증폭되었고 현재에도 농촌 경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채 열악한 상황이라는 부정적인 평가 역시 존재한다. 또한 국가와 관의 주도로 이뤄진 새마을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평가하는 것 역시 사실과는 다른 평가다.

70개 국내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가 전달되자 2차로 올라온 결과문서 수정본에서는 다행히 새마을운동 관련 부분이 삭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행사 당일, 결과문서 초안 작성 위원회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결과문서 최종 문구를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종 문구 수정 시간 때는 각국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공무원들도 회의장에 들어와 있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새마을 운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자마자 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한 외국 참가자는 손을 들고 “한 나라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과문서에 들어가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군부독재 시절에 이뤄진 운동이었다. 이 내용을 결과문서에 포함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서 필자도 손을 들고 “70개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새마을운동에 반대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소위 수출되었다고 하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효과를 평가하기에도 아직은 너무 이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독재 군부시절 때 국가와 관의 주도로 이뤄진 운동이다. 새마을 운동의 특징은 정신개혁, 경쟁과 인센티브제도인데 과연 이러한 것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인권과 개발, 민주주의에 적합한 모델인지 다시 한 번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결과문서에 새마을운동 포함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자 결국 사회자는 새마을운동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참가자들에게 별도의 방으로 가서 어떻게 내용을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새마을운동 때문에 정작 중요한 다른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에서 논의를 마치고 돌아온 참가자들은 새마을운동 부분을 결과문서에 포함하는 것과 관련하여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는 포함시키지 않고 “우리는 시민 교육과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개발 모델을 위한 몇 개의 가치 있는 교훈들을 연구했다”는 내용만 담기로 합의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회의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되었다. 새마을운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결과문서에 들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한 국가의 ‘업적’이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정신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 정신의 중요도 역시 재평가되어야 할 테지만) 강조하고 싶은 내용만 들어가면 될 터인데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결과문서에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포함시키고 싶어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많은 논란 끝에 최종 발표된 결과문서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와 그 내용은 삭제되었다. 비록 결과문서에 새마을관련 내용이 삭제되었다고 해도 이번 회의를 후원한 경상북도는 NGO 전시장을 새마을 홍보관에 가깝게 운영했고 특별 라운드테이블도 새마을운동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꾸렸다. 개막식과 폐막식에서도 새마을운동을 ‘찬양’하는 내용이 반복되었다.

유엔에서 개최하는 가장 큰 규모의 NGO 행사. 지속가능발전목표 4번 목표인 교육 의제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에도 부족한 2박 3일의 시간이 새마을운동에 대한 논쟁만 반복하다 끝났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을 이번 행사의 진행과 논의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유엔 NGO컨퍼런스는 정부 주도의 새마을운동을 마치 시민주도로 포장하여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 세계 NGO들과 유엔과의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인권에 기반한 개발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장이 되었어야 한다. 또한 이번 66차 유엔 NGO 컨퍼런스에서의 결과문서에 있는 이행 계획이 2년 후 있을 67차 유엔 NGO 컨퍼런스 때까지 어떻게 이행될지 그 과정 또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진정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유엔 NGO 컨퍼런스를 기대한다.
덧붙임

백가윤 님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