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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인권이야기] 이주 여성, 아이들과의 소통에도 언어의 편견이

나에게는 큰 걱정이 하나 있다. 큰 애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한심하다는 듯한 어조로 우리 아이 학습력이 얼마나 떨어지며 남의 아이들은 영어다 한자다 공부할 때 우리 아이는 한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 남들 공부할 때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신경을 좀 더 쓰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 밀려오는 죄책감에 한동안 힘들었다. 그리고 내키지는 않지만 방문학습지를 신청했다.

아이들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결혼한 여성 이주자들의 경험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혹시나 내가 아이들에게 내 모국어를 씀으로써 한국어를 늦게 배우는 것이 아닐까? 어쩌다 시어머니가 아이가 한국말이 늦다는 말을 하면 그게 내 잘못인양 주눅 들고 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안 되는 한국말이지만 한국말로 아이와 대화 하려고 하고, 아니면 일찍부터 놀이방에 무리하게 보내기도 한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주 여성들에게 나는 미국에서 유명한 골프 선수인 미쉘 위 이야기를 종종 한다. 미쉘위 부모는 모두 한국 사람이지만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아주 잘하고 한국말은 약간 잘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서 아이들과 당신들의 언어로 열심히 대화 하도록 해라. 남들은 돈 주고 어학연수도 가고 돈 주고 대학 가서 동남아시아어학과를 선택하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집에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 말을 배울 수 있으니.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안에서는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반대를 넘기에는 한계적이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이주 여성들은 마음 놓고 아이들과 자신의 언어로서 대화를 하는 데도 눈치가 보인다. 엄마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문화와 교육 방식의 차이로 인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문화 부적응으로 학교 수업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별 근거 없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주 여성들이 쓰는 언어가 영어였거나 미국 등과 같은 중심국에서 온 엄마들이었다면 이런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았을 텐데…….

현재 주위에 있는 이주 여성들도 아이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많은 갈등을 하고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여성들은 모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 한다. 한 여성은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더 많은 것을 더 잘 가르치고 싶다. 그런데 내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언어로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 시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당당히 이야기한다. 한국어는 금방 배울 수 있다고.”

어떤 여성은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와 대화를 했다. 그러나 놀이방에 들어가서는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한국어 발달이 다소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는 모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자신의 모국어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못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언어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한다.

아무리 찾아 봐도, 어머니가 이주여성인 경우 아이의 언어 발달이나 학습력이 떨어진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음에도 주위에서는 잘못된 편견들을 바탕으로 이들 아이들을 바라보고 어머니 언어를 쓰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한국어를 유창하게 표현해 내지 못하는 엄마와 엄마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사이에 단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여성들은 아이들과의 소통을 통한 관계에 있어서 엄마로서의 마지막 정체성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덧붙임

김민정 님은 이주,여성인권연대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