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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백조보다 더 아름다운 ‘미운 오리새끼’

AIDS 감염인들과 더불어 날다

외부에서 인권교육 요청이 들어와 교육을 진행할 경우 주최 측은 대부분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크게 만들어서 걸어놓고 남길만한 사진들을 카메라로 열심히 찍는다. 하지만 지난 9월에 찾아간 인권교육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준비가 부족해서? 아니면 돈을 아끼려고? 이도 저도 아님, 그냥 귀찮아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왜 이리 길게 얘기하냐고? 하지만 앞으로 소개할 참가자들의 말!말!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문제가 왜 정말 문제인지 당신도 공감하리라.


날개달기 - 내 이름은 “미운오리새끼”야

마치 급하강을 준비하면서 올라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으로 굽이굽이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자동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오르니 자그마한 마을 하나가 펼쳐졌다. 바로 그 곳, 강원도 영월의 한 마을에 있는 복지관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감염인들을 만났다. 한국HIV/AIDS감염인연대인 ‘카노스’ 주최로 9월 1일부터 2박 3일 동안 열리는 워크숍에 참여해 인권교육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찾아간 것이다.

카노스가 준비한 워크숍의 이름은 “미운오리새끼, 날다”였다. 이름에서도 풍기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HIV/AIDS 감염인(아래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다 보니 스스로 많이 위축되어 있고 자신을 탓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과 구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염인 당사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권리의 주체로 인식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인권교육을 해달라는 것이 카노스의 요청이었다. 우선 감염인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동무와 함께 고민을 나눈 후, 준비한 프로그램은 그/녀들이 감염인으로 살면서 겪는 차별을 역할극으로 표현해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눠보는 것이었다.

카노스가 만든 워크숍 홍보 웹자보<출처; www.kanos.org>

▲ 카노스가 만든 워크숍 홍보 웹자보<출처; www.kanos.org>



더불어 날개짓 1 - 차별의 ‘알’ 깨기

감염인들에게 질병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고통에 더해 아파도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마음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답답함이며 외로움이다. 하지만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질병을 무조건 숨길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보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원하지 않아도 알려야 하고, 그러면서 겪게 되는 인권침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선 보건소, 병원, 직장으로 나눠 그/녀들이 겪은 차별을 함께 나눠보고 상황극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몰랐던 막막했던 기억,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나고 짜증나는 경험들을 모아모아 상황극으로 펼쳤다.

“보건소 질병관리본부 사람이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짜고짜 묻는거야. ‘동성애자에요?’”

“역학조사라는 걸 받으러 갔는데 별걸 다 물어보더니 급기야 나랑 같이 성관계를 한 사람들 연락처를 다 적으라는 거야.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보건소 직원들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에 의한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동의 절차 없이 자신의 질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 주거지를 옮길 경우 반드시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는 감시와 통제 위주의 제도들, 한없이 불쌍한 존재로만 위치지우는 직원들의 동정적인 시선에 대해 감염인들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1. 병원이라는 곳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기억을 남겨 주지 않는 곳이다. 감염인들에게 병원은 또 다른 경험 때문에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다. 감염인들이 병원에 갔을 때 그/녀들은 격리병동에 입원해야 하고, 병원 침대에는 빨간 글씨로 이렇게 써 있다. “HIV 감염자 주의요망”

의사(가까이 다가가기를 꺼리며 요모조모 살피더니) : 간호사! 이 환자 감염인인데, 주의하세요.
간호사(갑자기 위생 장갑을 끼며) : 저기, 혈압이랑 체온 재야하거든요.

의료 서비스에서도 한바탕 차별을 경험하고 난 감염인들. 하지만 병원 생활에서 겪는 차별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된다.

급식담당 직원 : (감염인이 밥을 다 먹고 식판을 모으는 곳에 갖다 놓으려고 하자) 어이~ 됐어, 됐어. 내가 대신 갖다 놓을께.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식판은 보통 환자 본인이나 간병인이 갖다 놓는다)
병실청소 직원 : (청소를 하러 와서는) 그래, 몇 살이야? 어쩌다 이리 됐누? 쯧쯧쯧. 밥 잘 먹고 열심히 살어.

지난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공중보건의사 398명을 대상으로 감염인 의료이용 권리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출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 지난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공중보건의사 398명을 대상으로 감염인 의료이용 권리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출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의료인들조차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HIV/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 감염인들에 대한 어이없는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감염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의료인들이 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 직장 건강검진에서 감염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검사가 이루어졌고 감염 사실 또한 직장상사에게 알려졌다.
직장상사(그/녀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이라고 하기엔 뭔가 수상한 얼굴로) : 어떻게, 일 할 수 있겠어요?
그/녀 : 아직 별다른 이상도 없고, 일 하는데 무리는 없는데요.
직장상사(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 그래요?
하지만 회사는 그/녀에게 퇴직을 종용했고 결국 몸에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감염 자체만으로 노동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질병 자체보다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편견으로 인해 감염인들의 생존권은 언제나 위협받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감염인은 이렇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가볍게, 또는 무겁게, 그리고 슬픔만이 아니라 예리한 눈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풀어놓았다. 물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감염인들에게 생활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저 참거나 자기 탓으로 돌리며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현실의 문제를 인식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염인들의 저항은 시작된 것이며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날개짓2 - 두려움 ‘잡았다’, 편견 ‘잡았다’

이어 언론이나 감염인 관련 캠페인에서 나타난 편견과 차별을 바로 잡아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모둠별로 언론에 소개된 기사와 포스터를 한 장씩 나눠주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대안적으로 고쳐 보는 것이었다.

감염인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언론조차도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에이즈 정신질환자, 어느새 에이즈도 ‘불법체류’” 등과 같은 제목으로 편견을 조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를 마치 객관적인 사실로 둔갑시키고 있으며, 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 조치조차 HIV/AIDS를 뿌리 뽑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감염인들이 스스로 나섰다. 미래에는 이런 기사가 실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모둠이 기사를 작성했다.

영월군 '에이즈에 관심을 가지다’
영월신문(2006/09/02)

영월군은 이번 검사를 통해 감염인의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적극적인 지원과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영월군은 이를 위해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지원할 예산을 대폭 늘렸다. 또한 검사 전 상담과 정확한 정보제공, 인권교육을 위한 특별팀을 운영할 예정이다.

/자연퐁 기자


감염인들은 적극적인 지원과 치료 정책, 그리고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만이 HIV/AIDS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잡는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워크숍에서 새롭게 만든 포스터와 기사

▲ 워크숍에서 새롭게 만든 포스터와 기사



마음을 맞대어 - 세상의 중심에서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예전 성소수자 관련 워크숍에 참석해 인권교육을 할 때에도 이번 교육과 마찬가지로 현수막은 걸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주변 시선이 여전히 위협일 수밖에 없는 감염인들에게 현수막과 사진은 행사를 알리는 홍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언제쯤 되어야 감염인들이 세상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자신들의 존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런 공포 없이 알릴 수 있을까? 아니, 언제쯤 되어야 세상은 그들이 흔드는 손을 보며 반갑게 손 흔들어 줄 수 있을까?

워크숍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감염인들은 또 질병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 워크숍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서로 오고간 마음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기를, 그래서 다시 만날 때 반갑게 웃으며 맞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