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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 청소년 성소수자를 말하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10대 성소수자 간담회 열어

“중학교 때 제가 레즈비언이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그 때 학교 밖 모임 같은 곳에서 많이 욕도 먹고 그랬었거든요······.”
“팬픽(유명 연예인에 관한 창작 소설 - 주로 동성 간 관계를 그림)이나 야오이(남성 간의 연애를 그린 만화 등)가 유행했었잖아요. 애들이 잘생긴 사람끼리는 동성애 하는 걸 이해할 수 있는데 안 그런 사람들끼리 하는 건 못 봐주겠다고 그러기도 해요.(웃음)”

지난 12일 (구)선교교육원 강당에서는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1탄 - 10대 성소수자' 간담회가 열렸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청소년인권운동의 확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에는 20여명의 청소년과 동성애자인권연대(아래 동인련), 한국레즈비언상담소(아래 상담소) 활동가들이 한데 모였다.

지난 12일 (구)선교교육원에서 열린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1탄 - 10대 성소수자' 간담회

▲ 지난 12일 (구)선교교육원에서 열린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1탄 - 10대 성소수자' 간담회


낯설지만 결코 새롭지 않은, '청소년 소수자'

10대 성소수자, 장애인, 탈학교청소년 등 '청소년 소수자'들의 문제는 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고민과 활동에 비해 청소년 소수자 인권 문제는 많이 '묻혀'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청소년 소수자 당사자와 많은 인권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청소년 소수자 운동에 새로운 흐름이 일고 있다. 그 새로운 흐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추진 중인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프로젝트다. '청소년인권 운동'이 드디어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경계 너머를 바라보다

이날 간담회에서 상담소와 동인련 활동가들은 성인 성소수자, 10대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10대 레즈비언이 처한 현실과 그에 따라 진행되어온 운동의 흐름을 소개해주었다. 머리가 짧은 여학생들을 학기 초 조회 시간에 앞으로 불러내어 “이들은 레즈비언이니 어울리지도 말라”고 낙인찍은 사례, 이성애주의적 학교나 가정에서 감금당하고 폭행당하다가 ‘퇴출’당한 10대 성소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쉼터에서마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사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사례 등을 나누는 동안, 간담회 장소는 황당함과 숙연함을 넘어 침울함이 가득 찼다.

그러나 'OTL(좌절)'스러웠던 청소년인권이슈에 불을 붙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러한 문제를 지켜볼 수만 없지 않을까? 많고 많은 이야기는 결국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합일점에 다다랐다.

10대 성소수자 인권운동, 어디로?

상담소는 10대 ‘이반’(이성애적 주체를 제외한 모든 성소수자)들이 학교 내에서 겪는 차별 실태 조사 프로젝트, 쉼터 방문 사업, 상설적인 상담 활동과 사건 대응을 통해, 또 동인련은 10대 성소수자 교육자료 제작 등을 통해 꾸준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사회적 차별과 아웃팅을 매개로 한 범죄의 위협 등으로 10대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무척이나 어렵다. 억압적인 학교와 가정을 벗어나 자유를 갈구하며 10대 성소수자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와도 그/녀들의 바람과 문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성인들과의 갈등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단체들은 성소수자운동과 청소년인권운동이 더더욱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야기는 좀더 좁혀져 '10대 성소수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모아졌다. 이에 대해 동인련은 단체 내부에 청소년 당사자 모임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고, 상담소는 멘티·멘토 프로그램과 '10대 이반 백서' 출판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런 열띤 활동이 전개되더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10대 성소수자 스스로의 운동과 담론 형성'이다. 동인련 정욜 활동가는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아직 성장 중이니까 이성애자로 '이끌 수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10대 성소수자들은 '머리 짧은 털털한 여학생'이라든지 '여자 같은 남학생' 등 사회의 지배적 성 역할을 뒤집어놓은 듯한 편견에 가득 찬 이미지에 못박혀있기도 하다. 이러한 '판타지'와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좋은 방법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10대 성소수자 당사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의 편견과 억압을 깨고 스스로를 떳떳이 드러낼 때 비로소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드러냄'이란, 자신들이 주체적인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표현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당사자들의 운동이 없다면? 청소년 당사자가 이끄는 운동이 아니라 당사자를 '위한' 다른 누군가의 운동이라면? 당사자는 비록 어느 정도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보호적 관점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사자의 언어는 '일부 적절히 수용되는 운동의 부분적인 의지'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년 성소수자와 성인 성소수자의 공통분모인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연대'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 '연대' 역시도 운동이 주체적으로 형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만의 운동도, 당사자가 아닌 주체들만의 운동도 결코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기존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서도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운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그 필요성을 메우는 것은 필요에 따른 행동이며, 그 행동의 주체는 청소년 자신들일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들

그러나 이번 간담회에서는 '실질적으로 10대 성소수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기존 청소년인권운동 진영은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성소수자 운동 진영과 연대해나갈 수 있는가', '청소년인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없어 다소 아쉬웠다. (이야기가 부족했던 이유는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진짜다!) 또한 '성소수자'라는 타이틀을 걸었으나 실제로는 동성애자에 국한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던 점도 아쉽다.

그치만 너무 좋았는걸^^

그래도 이번 간담회가 무의미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운동에 관한 고민과 담론 형성은 간담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니까.

활동가들의 설명이 끝난 뒤 진행된 2부에서, 청소년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라는 무거운 '금기'의 키워드에 대해 평소 느끼고 경험했던 점들을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을 활동가들에게 질문했다.

“작년에 어느 잡지에서 청소년 동성애자 관련 기사를 보고 '동성애'를 포털 사이트에 쳐봤는데, 갑자기 '19세 딱지'가 뜨는 거야.”
“팬픽이 동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등의 부작용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게 동성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반에 관심 있는 애가 있으면 그 애한테 팬픽을 권한다든지? (모두 웃음)”

자신이 예전 중학생 때 겪었던 차별, 포털사이트가 ‘동성애’라는 단어를 '청소년 금칙어'로 설정해놓은 걸 보고 느꼈던 황당함, 예전 학교에서 유행했던 팬픽과 야오이 문화가 10대 성소수자의 삶이 미친 영향, 한 반에 한 명씩은 꼭 있었다던 '칼머리'한 아이들(?),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 성소수자 이야기를 꺼낼 때의 난감함과 조심스러움 등……. 동성애 담론으로부터의 청소년들의 사회적 '격리'는 심지어 팬픽에 대한 부분적인 긍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가자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나 겪었던 경험들로부터 동성애의 낭만화와 문화코드화를, 사회의 차별과 뿌리깊은 이성애주의라는 편견을 읽어내고,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가 깊어가는 동안 어느 새 활동가와 참석자 사이의 어색함과 '금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경계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다음 경계를 향해

비록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간담회가 소수자 인권 운동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 등 아직 청소년인권운동의 한계를 짓는 수많은 '경계'들이 남아있다. 어쩌면 이 경계는 허구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던 소수자들'은, 그리고 그 '경계'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주위에 있다. 우리, 함께 넘어보지 않을래요?
덧붙임

해밀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Rateen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