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인권운동. 그러나 현안 대응이나 정책 생산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인권의 주체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이, 자주 만나서 허허로움이 달래지지도 않는다. 인권운동사랑방 건강권 팀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 워크숍을 열어 어떻게 ‘사람’을 만나면 좋을 지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내어놓았다. <인권오름>은 ‘임파워먼트 워크숍’과 그 준비 과정에서의 인터뷰를 소개해, 정답이 아닌 ‘질문’을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임파워먼트가 어려운 사람은 사실상 그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이 아닐까. 동성애자는 한국에서 ‘정신이상자’나 ‘질병자’로 취급받으며 자신을 드러내지도 못할 정도로 억눌려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고 드러내는 활동을, 그것도 집단적으로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인권연대(아래 동인련)의 정욜 씨를 만나 임파워먼트 과정과 어려움, 뿌듯한 기억들을 들어보았다.
동인련은 1997년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에서 출발했고 다음해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지금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이다. 처음에는 커뮤니티의 자긍심을 높이는 활동과 다른 사안에 연대하는 실천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처음에 자긍심을 높이는 활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잠깐 소개해주세요.
동인련 초창기 사업은 프라이드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컸어요. 동성애자로서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드러내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자긍심을 높이는 게 중요했어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 자존감이 회원들마다 달랐기 때문에 동성애자 회원들이 자기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소통이 큰 힘이 됐어요. 기존 회원과 신입회원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건데, 일종의 간증이랄까, 얘기하다 보면 사적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니 친밀감을 느끼고 우리가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게 됐지요.
그러다가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회원과 함께 하는 4주차 프로그램으로, 1주차는 한국에서 동성애자의 위치, 2주차는 커밍아웃에 대해, 3주차는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어졌어요. 기획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참여하고 느끼고 변화하는 방식’의 인권교육 개념은 확실히 서있지 않았지요. 그냥 회원으로서 고민을 나누자는 거였어요. 4주차 교육 자료집을 만들어 새로운 회원들이 가입하면 나눠줬어요. 저도 받았고요. 지금도 몇 권 남아있어요.
2001년부터는 캠프를 열었어요. 여름과 겨울, 매년 두 번 개최했는데 이 공간을 통해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2005년까지 아마 대여섯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결합도가 높았고 타 단체와 기존회원들이 함께 캠프를 준비하고 신입회원들을 챙기는 과정에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임파워먼트라는 게 개인이 힘을 얻고 변화하는 것만은 아닐 듯해요. 개인이 힘을 얻으려면 개인이 속한 조직도 힘을 얻고 사회도 변화해야 하는 거니까요. 활동을 하면서 이런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단체 활동이라는 게 인터넷 공간의 친밀감을 넘어서는 면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찾아올 수도 있고 캠프나 포럼처럼 열린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단체로 활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니까요.
지금은 조직 역량 강화를 고민하고 있어요. 동인련이 색깔이 분명하다 보니 멤버쉽은 강하지만 가입률이 적은 단점이 있었거든요. 항상 정치적 방향을 강조하다 보니 딱딱한 이미지가 강했지요. 진보적 동성애자인권단체라는 게 문턱이 높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회원/재정/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참여를 편하게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에요. 사무국 중심의 활동가체계를 다층화한 회원구조로 바꾸려고 모색 중이에요. 예를 들면 더불어활동가, 거름활동가 등의 명칭으로 운영위원을 위촉하고, 운영위원이 된 회원들이 회원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스스로 하는 거지요. 조직이 풍부해지면 개인도 성장하잖아요. 하나의 시도일지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급하지 않고 천천히 동인련의 조직적 성장을 모색해보려고 해요.
동성애자의 삶이라는 게 공적인 얘기, 정치적인 얘기가 함께 나올 수밖에 없어요. 워낙 성소수자 차별조건이 있어 자신의 인권을 되찾는 것의 정치적인 의미를 이미 체득하고 있어요. 동성애에 대한 가시적 차별이 많으니까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사회화 통로가 없는 게 더 힘겨워요. 사회적 수준의 임파워먼트를 위해서는 사실 법, 언론, 교육 전분야가 바뀌어야 하죠.
실수도 많았지요. 10년이란 세월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래서 떠난 사람들도 있었죠. 저도 다른 회원들에게 상처를 준 적 있고요. 정치, 운동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서로에게 임파워먼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인련은 연대활동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어떤 활동들이 있었나요?
커뮤니티 성격이 강해서 회원들끼리 세미나를 많이 했어요. 처음 연대활동은 에이즈, 교과서 개정 등의 이슈에 따라 동성애단체 간의 연대에 초점을 두었어요. 시기가 지나며 인권단체, 의료단체, 정당 등으로 점차 확대되었어요. 다른 목적도 있었죠. 동성애운동, 성소수자운동은 없다시피 생각되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를 알리고 우리 운동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데 초점을 뒀어요. 지금이랑은 많이 다르죠. 동인련 초창기 멤버들이 대부분 97, 98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 동인련에서 ‘연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004년부터는 매달 포럼을 개최해서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하는 토론 주제를 이야기했어요. 예를 들어, 장애인 동성애자의 이야기라든가, 전쟁에 동성애자들은 어떤 입장을 갖고 반전집회에 참여할 것인가 등에 관해서요.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앞서 장애인 동성애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 참여한 많은 동성애자들이 4·20 장애인차별철폐대회에 함께 참여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었죠.
연대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성소수자 단체 등과 함께 연대활동을 하거나 타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등과 이슈파이팅을 함께 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성소수자 인권이 의제가 되면서 다른 운동 의제와의 연관성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영감을 주는 경험이었지요.
최근에는 대선 10대 의제를 만들거나 총선후보들에게 성소수자 반차별 선언 등을 직접 조직하는 것처럼 피해중심이 아니라 의제를 가시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주로 차별금지법, 군대, 트랜스젠더, 감염인, 청소년 동성애자에요. 그동안 사건이 하나 터지면 이것을 해결하기에 급급했었는데 조금 달라지고 있는 거지요. 이제 의제도 우리 안의 공동체 유지나 우리 안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임파워먼트의 어려움은 어떤 것인지,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풀어 가는지 궁금하네요.
많은 단체가 그렇듯 재정적, 조직적 역량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아요. 초기 멤버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고요. 한국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맞닿으니까 개인적 차원의 제약 요인은 워낙 많아요. 특히 1997년 한 회원이 자살했을 때 자살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과 심정에 다른 회원들이 동화되면서 프라이드가 뚝 떨어졌어요. 사회의 두터운 벽이 다시 각인되면서 무기력해진 거지요.
그런데 제약요인을 오히려 임파워먼트 활동의 계기로 만든 경험이 있어요. 2003년 청소년 동성애자가 자살했을 때는 처음에 많이 걱정했지만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로 삼았어요.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를 높이고 힘을 쌓았지요. 집담회와 같은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추모의 밤을 열면서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현실을 알리는 사업을 벌였어요.
동성애자의 경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가족 문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들의 침묵, 폭력, 거리두기 등은 개인이 혼자 견디기 매우 힘든 문제에요. 그래서 최근 대학로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팜플렛을 나눠주는 행사를 했어요. 가족문제가 가족 간,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제약 속에 발생한 것이라는 걸 알리는 게 필요했거든요. 잘못된 사회인식에 영향을 받아 가족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거니까 가족 안에서의 문제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나누려고 ‘당신의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등의 적극적인 질문을 택한 거지요.
동인련을 당사자조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대활동을 하다 보면 다른 당사자 모임도 만날 텐데 다른 당사자모임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당사자운동이 ‘당사자성’을 강조하는데 동인련은 그렇지는 않아요. 동인련에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관심 있는 이성애자들도 회원으로 있어요. 동성애자들의 자긍심 강화도 중요하지만 성적 지향을 기준으로 한 당사자성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동인련에서는 활동이나 친목모임에서도 이성애자들, 동성애자들 모두 회원으로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이성애자는 이성 애인을, 동성애자는 동성 애인을 뒷풀이 때 서로 데리고 와서 같이 어울리지만 어색했던 적은 없었어요. 다들 운동의 당사자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가끔 동성애자가 아닌 회원들에게 집회 같은 데서 연대발언을 하라고 하면 매우 어려워해요. 우리 공간을 넘어서면 당사자로서 나서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만난 다른 당사자조직이라고 하면 HIV/AIDS감염인 단체인 ‘카노스’가 있어요. 카노스와 동인련의 관계가 처음에는 좋지 않았어요. 동성애와 감염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작용해 서로 껄끄러웠지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그나마 ‘회원 교차 활동’으로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당사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모임을 만들 방안이나 두 조직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아직 부족하지만 곧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직이든 사람이든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헌신적인 활동은 감동을 주잖아요. 당사자조직에서 중요한 건 뿌리를 살릴 수 있는 자생력을 복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조적인 모임이 아닌 삶과 사회에 깊숙이 개입하는 모임이 되도록 해야 하지요. 그리고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열렬회원’들의 역할과 비회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