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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1] 되살아나고 있는 냉전시대의 망령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로!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징후는 지난해 하반기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 터진 뒤부터였다.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교사들에 대한 구속과 학교와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졌고, 한총련 학생들이 잡혀가더니 심심찮게 조직의 배후를 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러더니 평화사진작가이자 현직 언론인이기도 한 이시우씨가 지난 4월 19일 구속되었고, 뒤를 이어 인터넷에서 헌책을 팔던 미르북의 김명수씨가 구속되었다가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이에 따라 2004년 연말 여의도에서 1천명까지 끌어 모은 국가보안법 끝장 집단노상 단식농성을 조직한 뒤 휴지기를 가졌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재가동되었다. 거기에는 이시우씨가 경찰에 연행된 이후 오늘까지 48일째 단식투쟁을 이어온 것도 한몫했다.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죽겠다”는 그의 완강한 단식투쟁은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사안으로 만들어왔다.(그는 검찰 기소 시점인 6월 5일 단식을 접는다)

왜 다시 국가보안법인가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는 노무현 정부 들어 줄어들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가 매년 3백명을 넘어섰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1백명 선까지 떨어졌다가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10여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에는 다시 구속자가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맞으니 ‘뉴라이트’들은 노무현 정부가 공안당국의 손발을 다 잘라 국가보안법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개탄을 하면서 주로 전교조 쪽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 자료를 들어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고발까지 해댔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을 대대적으로 왜곡보도하였지만 여론의 반응이 차가운 것에 대해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헤이해졌다고 수구언론들은 입에 거품 물고 떠들어댔다. 이렇게 수구진영의 고발과 몰지각한 언론들의 선동에 구체적인 사건으로 화답하는 것이 공안기관들이다.

일단 전국의 25개나 된다는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가장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냈거나 만들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른바 ‘일심회’ 사건 뒤로는 주로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악을 통해 인터넷 상에서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댄 감시를 하려고 벼르고 있다. 이들 일선의 공안기관들이 사건을 만들면 검찰이 보강해서 기소하고, 법원이 이를 판결로 확정하는 시스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이 확대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찰 보안수사대는 한총련 배후조직사건을 지속적으로 수사하고 있고, 여중생까지 프락치로 동원하고 압수수색과정에서 무리수까지 둔 전교조 통일위원회 사건도 계속 수사 중이고, 인터넷 미르북 서점을 통해 ‘이적표현물’(북한 소설이나 원전만이 아니라 리영희 선생의 거의 대부분의 책, 『자본론』과 같은 고전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스테디셀러들도 공식적으로 이적표현물이다!)을 구입한 60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해서까지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 여든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구속·수감되어 있는 강순정 씨 사건 1심판결이나 ‘화교간첩사건’으로 알려진 정수평 씨 2심 재판부의 판결에서 국가기밀 혐의 부분에 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수집할 수 있는 공지의 사실이나 서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자들에 대해서는 국가기밀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5월 31일 열렸던 정수평 씨의 2심 선고에서는 그간 해외동포 간첩사건에서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권능을 인정받아온 영사증명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정원 해외 공관 근무자가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사증명서는 해외동포가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확인해주는 것으로 어떠한 근거도 없이 작성되었고, 이를 악용해 공안기관들은 수없이 많은 해외동포 간첩사건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다행스런 법원의 신중한 판단

이런 법원의 신중한 판단은 국가기밀 조항을 확대 적용하려는 검경의 의도를 차단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법원이 국가기밀에 대해 진일보한 판단을 하는 게 확정적인 기조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먼저 아직은 이런 판단이 하급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종종 하급심의 진보적인 판단을 뒤집어서 원심파기환송을 일삼아왔지 않은가. 또 법원이 정신을 차렸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할 사례는 이시우씨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일 것이다.

이 씨의 사진작업의 상당수는 비무장지대나 미군기지, 군사시설들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예술작업의 일환이었지만, 공안당국의 기준으로는 예술이 아니라 국가기밀, 군사기밀을 폭로하는 이적행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열화우라늄탄의 존재를 폭로하고, 주한미군과 관련한 다양한 폭로기사를 쓴 것은 미국에서 기밀해제된 문서들이나 미 국방부 홈페이지, 미국의 다양한 평화단체들의 홈페이지에 수집된 자료들에 기초해 있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사안은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한국이 보호해야 할 국가기밀의 일종이다. 주한미군이 보유한 무기나 시설에 대한 폭로가 법으로 보호해야할 국익인가, 그런 사실들을 알리는 일이 정당한 언론활동으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기다려보아야 한다. 더욱이 그의 구속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엔사의 문제에 대해서 법원의 판단은 매우 중요한 논점을 형성할 것이다.

법원이 국가기밀 조항의 판단에서 신중한 판단을 내렸다고 하여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경우에서 ‘일심회’가 간첩단인 반국가단체도 아니고, 이적단체도 아니며, 상당수의 국가기밀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징역 4년에서 9년까지 중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고 경향성은 강순정 씨의 경우에도 국가기밀을 모두 무죄로 인정하였으면서도 회합·통신죄 위반을 이유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법원의 중형 선고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서 2심 재판부가 법정구속까지 감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악과 국가보안법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예상되는 법률안 중에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개정안이 있다. 현행 통비법을 개악하여 통신비밀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이는 이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전기통신사업자는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의무화해야 하고,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을 1년의 범위 내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며,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이 자료를 넘겨주어야 한다. 휴대전화를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림과 동시에 인터넷 로그 기록을 보관하였다가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이를 넘겨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전기통신사업자가 이런 지시를 어기면,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을 뿐만 아니라 회선의 폐쇄까지 감수해야 하므로 어느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을 거부할 것인가.

지난해 수사기관의 통신기록 요청은 150,743건이었고, 이 중 인터넷 통신기록요구는 41,681건에 이르렀다. 거기에 “올 7월부터 실시될 포털의 실명제(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될 선거 시기 실명제(공직선거법)가 인터넷 로그기록 추적과 결합할 경우, 인터넷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는 실종될 것”이 명백하다. 이에 따라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인터넷 통제를 위한 시스템이 촘촘하게 짜이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방법은 없다.

이런 일반적인 문제점 외에도 현행 통비법과 개악되는 통비법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군사시설보호법 등에 규정된 범죄들에 대해 언제고 통신제한조처를 취할 수 있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휴대전화를 추적하고,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뿐만 아니라 1년 동안 통신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수사상 편리함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수사기관의 실시간 통제에 놓인다는 것이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자료를 다운받거나,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거나 하는 행위를 할 때 혹여 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 걸리지 않는지를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보안법 제7조에 규정된 이적행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만약 고무, 찬양행위를 하였다면, PC방으로까지 당장 경찰이 달려와 당신을 체포할 것이고, 아니면 그런 사실을 잊고 지낼 때쯤 경찰의 소환조사 통보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통비법은 인터넷 상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 국가보안법의 주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통비법 개악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런 개인정보에 대한 수집과 통제는 9.11테러 이후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고, 국내 공안기관들도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통비법 개정을 통해서 다시금 전성시대를 꿈꿀 수도 있다는 착각을 가질 수도 있다.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로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의 전성시대는 공안기관들의 희망처럼 쉽게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비록 2.13 합의가 BDA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이미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로가 연결되기 시작하는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국가보안법과 같은 평화공존의 대상을 적으로 규정하는 냉전적 법제를 청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그 전제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의 깃발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아울러 과거 국가범죄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공안기관들은 과거의 반인권적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고문과 협박, 강압에 의해서 간첩을 조작하고, 재산까지 강탈했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고 현재 공안기관들의 불법성을 고발하는 일로부터 이들의 축소, 재편, 해체의 움직임을 만들어갈 수 있다. 운명이 다한 국가보안법과 함께 공안기관들의 존재도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은 매년 국회에서 그 존립근거를 따져 묻는 의원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씨가 단식을 통해 호소한 것은 이제 국가보안법의 시대를 마감하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비틀어진 역사와 현실을 바로잡고 인권과 평화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