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기 - 노래야 울려라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면 파업 5일째를 맞이하는 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찾았다. 후덥지근한 도장 공정 내부에는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빼곡히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살아서는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졌다. 뉴코아 노동자들과 연대했을 때도 그랬지만 파업 현장은 늘 긴장감이 돌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빡빡한 투쟁일정과 초초함이 몸과 마음을 쉽게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교육마저 딱딱하고 지루하다면 이들의 심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파업 현장이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재미나게 수다도 떨고, 인생사도 나누며 노래할 수 있는 즐거운 곳일 수 있도록 느낄 수 있게 인권교육을 준비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비정규직 여성들이 많았다. 공장 안이 가뜩이나 삭막한 데다, 자유롭게 밖을 출입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긴장감이 더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뭘까. 역시 노래가 짱이다.
더불어 날개짓 - ‘승리의 밧줄’로 꽁꽁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것보다 노동자들이 평소에 흥겹게 불렀던 노래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 방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역시 ‘트로트’가 최고다.
“여기계신 분들 다들 트로트 좋아하세요?” 역시 선택을 잘했다.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유~ 그럼. 나이 드니까 점점 트로트가 좋아지네!”
“그럼 혹시 사랑의 밧줄이란 노래 아세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가 먼저 나온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 제 애창곡이에요. 캬~ 좋다.” 이 정도면 노래 부를 준비 완료!
노동자들과 직접 노래 가사를 바꾸는 작업을 해도 좋지만 이번에는 인권교육팀에서 노래 가사를 바꿔보았다. ‘사랑의 밧줄’이 ‘승리의 밧줄’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승리의 밧줄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비정규직 철폐를 향해
연대에 밧줄로 꽁꽁 묶어라
우리삶터 뺏길 수 없다.
동지 없는 투쟁은 단 하루도 나 혼자선 버틸 수 없네
등급제를 철폐하고 비정규직 철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자본가들 꼼짝 못하게
노동자들의 요구를 살짝 집어넣어 노래 가사를 바꿨더니(일명 ‘노가바’) 반응이 더 좋다. “하하~ 그거 재미있네. 우리끼리 집회하면서 불러도 좋고 사람들한테도 우리얘길 쉽게 할 수 있겠어. 무엇보다 트로트는 정감이 있잖아.” 역시 ‘트로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대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가 좋네. 정규직노동자가 함께 싸워주면 참 좋으련만… 구사대들 왔을 때 한번 크게 불러야겠구먼. 하하” 평소에는 일끝내고 소주한잔 기울이며 불렀던 귀에 익은 노래를 파업현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바꿔 부르는 게 생각보다 신이 난 모양이다. 오히려 인권교육팀의 음정이 틀려 노동자들이 맞춰 주기도 했다. 교육이라면 항상 구석에서 한쪽만 바라보며 힘들게 자리를 지키느라 애썼는데 이번 교육은 재미있다며 환호를 보내신다. 당분간 파업 현장에서 ‘노가바’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 같다.
머리를 맞대어 - 배우고, 실천하며
파업 현장에서 교육은 자칫 시간을 때우기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인권교육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파업 현장에서 인권교육이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그들의 정당한 파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연대의 마음으로 조금씩 다가간다면 어느덧 자연스러움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또한 한 번의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소통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인권교육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교육 활동가들에게 파업 현장은 오늘도 고민하고 배우며,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인 것이다.
덧붙임
◎ 메달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