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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파업 현장에서 펼쳐진 즐거운 연대

기아차비정규지회 화성 공장을 찾아서

지난 여름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저기 먼 화성 기아자동차 공장에서는 자동차의 생산 벨트가 멈춰 섰다. 알고 보니 겁나게 큰 자동차 공장 생산 라인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차별에 맞서 싸워 온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었다. 그동안 사내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인 기아자동차에 교섭을 요구해왔다. 협상의 주요 사안에 대해 실제 결정권을 가지는 원청회사가 협상에 포함되지 않으면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측에 11차례의 단체협약을 요구했지만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자 노동자들이 화성공장 도장2부 공정을 점거하고, 농성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전면 파업 5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 전면 파업 5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날개 달기 - 노래야 울려라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면 파업 5일째를 맞이하는 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찾았다. 후덥지근한 도장 공정 내부에는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빼곡히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살아서는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졌다. 뉴코아 노동자들과 연대했을 때도 그랬지만 파업 현장은 늘 긴장감이 돌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빡빡한 투쟁일정과 초초함이 몸과 마음을 쉽게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교육마저 딱딱하고 지루하다면 이들의 심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파업 현장이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재미나게 수다도 떨고, 인생사도 나누며 노래할 수 있는 즐거운 곳일 수 있도록 느낄 수 있게 인권교육을 준비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비정규직 여성들이 많았다. 공장 안이 가뜩이나 삭막한 데다, 자유롭게 밖을 출입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긴장감이 더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뭘까. 역시 노래가 짱이다.



더불어 날개짓 - ‘승리의 밧줄’로 꽁꽁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것보다 노동자들이 평소에 흥겹게 불렀던 노래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 방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역시 ‘트로트’가 최고다.

“여기계신 분들 다들 트로트 좋아하세요?” 역시 선택을 잘했다.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유~ 그럼. 나이 드니까 점점 트로트가 좋아지네!”
“그럼 혹시 사랑의 밧줄이란 노래 아세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가 먼저 나온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 제 애창곡이에요. 캬~ 좋다.” 이 정도면 노래 부를 준비 완료!

노동자들과 직접 노래 가사를 바꾸는 작업을 해도 좋지만 이번에는 인권교육팀에서 노래 가사를 바꿔보았다. ‘사랑의 밧줄’이 ‘승리의 밧줄’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승리의 밧줄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비정규직 철폐를 향해

연대에 밧줄로 꽁꽁 묶어라
우리삶터 뺏길 수 없다.

동지 없는 투쟁은 단 하루도 나 혼자선 버틸 수 없네
등급제를 철폐하고 비정규직 철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자본가들 꼼짝 못하게


노동자들의 요구를 살짝 집어넣어 노래 가사를 바꿨더니(일명 ‘노가바’) 반응이 더 좋다. “하하~ 그거 재미있네. 우리끼리 집회하면서 불러도 좋고 사람들한테도 우리얘길 쉽게 할 수 있겠어. 무엇보다 트로트는 정감이 있잖아.” 역시 ‘트로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대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가 좋네. 정규직노동자가 함께 싸워주면 참 좋으련만… 구사대들 왔을 때 한번 크게 불러야겠구먼. 하하” 평소에는 일끝내고 소주한잔 기울이며 불렀던 귀에 익은 노래를 파업현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바꿔 부르는 게 생각보다 신이 난 모양이다. 오히려 인권교육팀의 음정이 틀려 노동자들이 맞춰 주기도 했다. 교육이라면 항상 구석에서 한쪽만 바라보며 힘들게 자리를 지키느라 애썼는데 이번 교육은 재미있다며 환호를 보내신다. 당분간 파업 현장에서 ‘노가바’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 같다.

머리를 맞대어 - 배우고, 실천하며

파업 현장에서 교육은 자칫 시간을 때우기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인권교육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파업 현장에서 인권교육이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그들의 정당한 파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연대의 마음으로 조금씩 다가간다면 어느덧 자연스러움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또한 한 번의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소통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인권교육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교육 활동가들에게 파업 현장은 오늘도 고민하고 배우며,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인 것이다.
덧붙임

◎ 메달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