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번호 [김명준의 인권이야기]는 하나의 글이지만 분량이 길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싣습니다.
C. 종합적 프레임을 구성하고자 하는 가설들
그동안, 그 자체로서 명확한 범위를 설정하기 어렵거나 혹은 중첩되거나 다른 추상수준을 지닌 개념들을 종합하려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과 보급은 그것을 미디어 융합이라고 부르든 정보사회의 도래라고 부르든지 상관없이 권리 개념의 종합적 프레임에 대한 모색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최근까지 제출된 가장 적극적인 시안은 활동가 및 연구자의 국제 네트워크인 CRIS (Communication rights on the information society) 캠페인의 제안이다. 참고로, 더욱 구체적인 내용은 『커뮤니케이션 권리 핸드북』 (2007, CRIS 캠페인 지음,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회 옮김, 미디액트)에 설명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CRIS 캠페인의 제안은 위 그림과 같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총체성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며, 권리 개념의 프레임은 아래의 표와 같다. “각각의 층위는 커뮤니케이션이 핵심활동이자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적 존재와 경험 그리고 실천의 서로 다른 영역과 관련된다. 이 네 가지 분류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각각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사회적 활동 영역이지만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서 서로 맞물리는 영역인 것이다. 활동은 각자의 영역에서 고유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더욱 광범위한 차원에서 해당영역에 관심을 가진 사회적 행위자와 공동으로 수행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들과 연계를 맺을 수도 있고 또 맺어야만 한다. ” (핸드북 68쪽 중)
CRIS 캠페인의 제안은 종합적 프레임을 구성해본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아울러 포괄된 권리 개념들이 모두 현존하는 각종 국제 규약(인권선언 및 기타 규약들)들에 언급된 권리들이라는 점에서 실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계들 또한 뚜렷하다. 현존하는 국제 규약이 모든 권리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비록 그 근거가 설명되고는 있으나 이러한 범주의 구분 기준이 어느 정도나 적절한 것인가 역시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적 논의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디어 기술 및 그 보급과 활용과 그를 둘러싼 논쟁의 속도가 빠른 한국의 경험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면서 새로운 권리 개념의 프레임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곧 출간될 『미디어 융합 시대,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가』(2008, 미디어 융합 TF 지음, 미디액트)에서 김지현은 핵심 권리의 축으로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문화적 권리, 프라이버시, 미디어 리터러시 등 5대 영역을 제안한다)
D. 권리 개념과 가치 지향의 상호 보완적 결합
마지막으로 권리 개념의 프레임은 ‘권리’의 측면에서는 자기완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 변혁을 위한 적극적인 의제로 자리잡기 위해 어떤 ‘가치 지향’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소통을 포함하는 인간의 다양한 실천들은 현실에 의해 규정되면서도 그 현실을 특정한 지향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주체와 조건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설명가능하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주체의 권리 보장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추동해야만 가능하며, 역으로 시스템의 변화는 그것이 누구의 어떤 권리들을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 없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권리와 가치 지향이 현실에서는 괴리되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 극단적인 괴리는, 한편으로는 위로부터의 가치 지향의 강요에 따른 관료화로 표현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총체적인 가치 지향의 부재에 따른 권리의 부분적이면서 파편적인 확장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어떤 가치 지향을 통해 어떤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지향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면서, 어떤 권리들의 총체를 구성하며 이러한 권리의 보장과 가치의 지향이 어떻게 상호보완적 의제로 작동하게 할 것인지를 해명하지 않는다면 편향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위의 책에서 김지현은 지향가치로서 민주주의의 확장을 최고 가치로 설정하면서 보편적 접근성의 확대,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 보장, 실질적 다양성의 강화 등을 주요 지향가치로 놓고 있다)
이 정도로, 권리 개념의 종합적 프레임과 관련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문제의식과 과제에 대한 점검은 마무리하기로 하자.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분치 못하니 두 번째 문제에 대한 답변은 원천봉쇄되는 셈이지만, 거꾸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다보면 다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다른 각도에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인권운동 혹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나 독립기구(국가인권위원회)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 어떤 프레임을 갖고 어떤 영역에 걸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면, 우리는 인권단체나 기구의 활동이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과 맺는 세 가지 내용을 해명해야 한다. 그것은 첫째, 매우 보편적인 주제로서 특정 조직이나 기관이 내부적으로 소통하고 상호 교육되며 비판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며, 둘째 특정 단체나 기관이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지닌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혹은 미디어 활용 전략이며, 셋째 미디어 혹은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권리들을 이해하고 프레임 구성 및 권리 개념의 구체화와 정립에 힘쓰며, 나아가 그러한 권리의 침해에 대해 항의하고 저항하며 권리의 확보, 확장을 위해 활동하기 위한 실천적 전략의 프레임과 내용이다.
덧붙임
김명준 님은 미디액트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