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진보를 재구성하겠다’는 진보신당, ‘북한인권’을 말하다

진보신당 윤영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진보신당은 지난 3월 30일 ‘진보도 진보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할 말은 하는 진보’를 내걸고 공약을 발표했다. 진보신당은 ‘북한인권’ 문제를 정략적 공세 차원에서 다루면서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에는 역효과만 낳는 미국과 이명박 정부의 접근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인권 문제는 이미 국내외 최대 현안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진보정당이 북한인권 문제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나서는 것이 ‘진보의 혁신, 진보의 재구성’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과 ‘북한인권’에 관한 논쟁이 ‘진보의 재구성’으로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많았다. 선거라는 시기적 특성 때문에 건전한 토론에 한계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전히 북한과 ‘북한인권’은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에게 비중 있는 의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선거가 끝난 지금 그것은 오히려 더욱 많이 토론되어야 한다. 북한과 ‘북한인권’에 대한 더욱 풍부한 논의를 기획해보고자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윤영상 부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진보의 재구성’과 ‘북한인권’

진보신당 윤영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진보신당 윤영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박석진(아래 박); 민주노동당(아래 민노당)이 분당되는 과정에서부터 지난 총선까지 북한, ‘북한인권’ 의제가 뜨거운 화두로 부각되었다. 북한 관련한 의제는 전반적인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뜨거운 논쟁 지점인데,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북한, ‘북한인권’ 의제가 화두가 되고 있을까?

윤영상(아래 윤);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측면은, ‘북한’ 의제가 이미 한국 정치의 일부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남북, 북미 간의 문제에 한국의 정치주체들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열리기도 했다. 다른 한 측면은, 이 의제가 민노당이 분당되는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쟁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진보신당으로서는 그런 쟁점들을 화두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박; ‘진보의 재구성’을 표방하면서 ‘북한에 할 말은 하는 진보’를 주요한 핵심 의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북한에 할 말은 하는 진보’를 통해 어떻게 진보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윤; 북한을 진보적 시각에서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과연 북한이 진보적인가? 막연하게 ‘통일’을 진보의 지상가치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어떤 통일이냐는 가치를 중심으로 ‘어떠한 통일인가’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남북이 분단됐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거나, ‘북한은 진보, 남한은 보수’라는 관점도 현실에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실제로 진보진영의 일부 활동가들이 특정 의제를 내세우면서 진보의 가치에 서열을 매기기도 했다. 진보적인 활동가 누구나 환경, 소수자 인권 등을 이야기하지만 진보의 가치가 위계서열화 되어 있는 속에서 이러한 의제는 진보의 가치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장식물처럼 되기도 했다. 평화, 환경, 인권 등에 열려 있는 노동 혹은 평등, 평화가 담기는 통일 등의 가치가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의 가치로 북한을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이 진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진보진영에게 ‘북한’이란

박; 남한의 진보진영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확실히 단언하기 힘든,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남북 간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서로의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면서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조차 일상적으로 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진보적인 관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이다.

윤; 애초 민노당은 북한의 형식적 국유화, 스탈린주의적 사회 시스템, 유일사상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으로 강령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민노당에게 그러한 강령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현재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북한식 사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유일사상체제, 선군정치, 주체사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사회주의를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야 한다. 북한은 근대 세계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폭력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나타난 쌍생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사회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북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박; 현재 북한의 사회구조가 경제 시스템이나 사상 체계 등 북한 사회 내부에서 기인하는 점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미국의 주도 하에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경제 봉쇄나 군사적 위협, 정치적 압박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북한으로서는 기존의 사회주의 블록이 붕괴되면서 국제정치에서 고립된 역사적인 상황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적인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윤; 미국이 북한 사회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고 부정적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공세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렇지만 그런 외부적인 요인들에 모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북한의 사회체제에 대한 책임이 모두 미국에게 있다고 접근하는 것은 사태의 한 측면에만 주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적인 조건은 내부적인 동력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극복될 수 있다. 미국과 같은 외적인 조건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북한 내부의 문제일 것이다. 북한 당국자들이 불편해하더라도 진실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박; 지난번에 발표한 ‘북한인권’ 관련한 핵심정책 중에 ‘남북 인권대화 추진’이 있는데, 북한 당국자들이 불편해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주체와 과연 북한이 인권대화에 나설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실제로 이는 인권운동의 고민이기도 하다. 보수진영처럼 북한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록 ‘외부자’이지만 남북 간의 또 다른 행위자로서 다른 방식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북한이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윤;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중대한 파트너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북한을 자본주의적으로 압박하고 자본주의화 하는 식으로 접근하려는 것도 아니다. 북한 사회가 스스로 내적인 혁신과 개혁을 통해서 내부의 다양한 생산적인 동력들을 살려나가면서 변화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비판만 하는 것은 진정한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속에서 가슴 아픈 비판도 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 측이 다른 측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한 측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우호적으로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서로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남한의 진보는 북한에 대해 침묵하거나 혹은 신비화하는 게 아니라 상생의 관점에서 토론하고 협력해야 한다. 또 우리의 진보의 가치를 북한에 알려야 한다.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해야 한다. 북한의 처지를 배려하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비판해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진보는 ‘북한인권’을 어떻게 제기해야 할까

박; 버마와 티벳의 경우처럼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들이 있는 경우에 그러한 민중들과 연대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역시 북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북한 내부의 민중들이 있다면 남한의 진보진영은 그에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북한 내부에 그런 흐름들이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남한의 주체들은 북한 사회에 ‘외부자’로서의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데, 외부자로서 다른 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어떻게 발언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어차피 한 사회의 인권 상황을 증진시키는 주체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남한의 진보진영은 ‘외부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윤;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인권의 문제는 보편성을 획득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적 인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권, 사회권 문제로 발전해 왔다. 민중적 삶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진보진영은 바로 그런 인권의 보편성과 역사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진보운동의 역사적 토대이며, 또 지금 우리가 꾸준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진보적 가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외부자로서의 한계, 복잡한 국제적 현실 관계 속에서 여러 한계가 있다고 해서, 그것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티벳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그와 같다.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은 국가 간의 이해 관계를 넘어 보편적 인권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시대 인권의 문제, 민중적 삶의 문제는 추상적 구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권을 개선시키고,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실질적인 변화의 과정을 고려하면서 제기되어야 한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 단계에서는 적절한 비판과 유연한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노력해야 한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진보정당들 간의 국제적 연대나 남한사회 내에서 진보정당의 발언권 강화 등은 바로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일단 북한과 논의의 물꼬를 트게 된다면 대화는 점점 더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의 관계는 새로운 수준으로 풀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길을 현재로선 장담하기 힘들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박; 진보진영이 ‘북한인권’ 의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도 조심스러운 점들이 있다. 특히 보수진영이 ‘북한인권’ 의제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면서 ‘북한인권’ 의제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을 언급할 경우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되어 활용되기도 하고, 관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경우에는 왜곡된 ‘북한인권’ 패러다임에 갇힐 가능성도 높다. 기존 ‘북한인권’ 논의의 패러다임을 바꿔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부족하나마 그동안 <‘북한인권’을 보는 새로운 시선, 한반도인권 뉴스레터>를 공동으로 발행해왔다. <한반도인권 뉴스레터>는 북한 사회 내부의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에 의한 인권공세, 남한 사회 내부의 보수적인 ‘북한인권’ 논의 지형 등을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진보적인 관점으로 ‘북한인권’ 의제를 고민해왔다. ‘북한인권’ 의제를 제기하면서 보수진영과 어떻게 다른 관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윤; 일단 ‘북한인권’ 문제나 북핵문제를 이야기하면 CIA의 공작에 놀아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것은 흑백논리에 불과하다. 북한의 인권문제와 더불어 남한의 인권문제를 동시에 제기해나가야 한다. 자유권뿐만 아니라 사회권적인 측면에서도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한다. 또 평화, 생태 등의 가치와 연동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잘 정리되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솔직하게 우리가 처해있는 고민과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보수단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보수단체들은 그런 통합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없다. 그들은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제기한다. 북한 민중들의 실질적인 삶의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보수단체들이 ‘북한인권’을 제기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방법에서 아쉬움 남긴 진보신당의 ‘북한인권’ 정책 제시

박; 진보신당이 지난 총선에서 북한, ‘북한인권’ 관련한 의제를 제기한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접근한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이 있다. 민노당과의 관계에서나 북한, ‘북한인권’ 의제가 갖고 있는 선정성에 기대 진보신당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진보신당의 정책 발표 후 보수언론에 의해 친북/반북의 흑백논리로 왜곡되어 이용되기도 했고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해온 좌파라는 식으로 호도되기도 했다. 북한과 ‘북한인권’에 대한 정략적인 접근보다는 차분한 토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윤; 총선공약으로서 평화와 인권을 제기하는 것은 필요했다고 본다. 시의성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진보신당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앞으로는 한반도 평화 및 남북관계 진전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 예를 들면 비핵화의 문제, 평화체제 형성의 문제, 경제협력의 문제, 또 인권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 주제와 쟁점들이 시의성과 균형감을 갖고 제기되어갈 필요가 있다. 차분하고 의미 있는 논의 과정, 서로의 차이를 매개로 현실을 한 단계 전진시킬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sarangbang.jinbo.ne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