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라는 슬로건으로 제1회 인권영화제가 열렸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사전심의를 거부한 인권영화제는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다. 난 학생운동을 하고 졸업 후 빈둥빈둥 놀고먹으면서 영상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음, 좋아! 좋아! 나도 이런 영화제에 상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인권영화제는 내가 제작을 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1997년 탄압을 뚫고
홍익대학교에서 제2회 인권영화제가 열렸다. 개막 전부터 검열을 거부하는 인권영화제에 대한 당국의 탄압은 심했다. 난 영화제에 대한 탄압과 투쟁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홍익대학교에 갔다. 경찰은 영화제를 무산시키기 위해 학교주변에서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경찰관직무집행법으로 대응을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뭘 몰라서 검문에 순진하게 응했고 경찰은 나의 카메라를 보고 영화제 관계자로 의심을 했다. 난 약간의 거짓말을 해서 무사히 홍익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제 상영이 끝나고 새벽 늦게 영화제 관계자들과 귀가하는데 골목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나타나 연행을 시도했다. 난 어리버리 얼어있었고 함께 있던 김동원 감독은 촬영 안하고 뭐하냐며 내게서 카메라를 가져가 촬영을 했다. 서준식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경찰의 체포영장의 미비점을 지적하였고 결국 우리는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학교 측의 전원공급 차단, 경찰의 홍대 압수수색, 총학생회간부 연행 등 영화제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고 약 한달 후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등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98년 약속을 지키다
나는 IMF 구제금융시대 실직노숙인을 다룬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를 완성했다. 난 촬영을 하면서 노숙인 형들을 섭외할 때 인권영화제를 얘기했다. “방송이 아니라 동국대학교에서 인권영화제를 하는데 거기에 상영하려고 한다.” 형들은 인권영화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권’이라는 단어에 대한 막연한 신뢰로 촬영을 허락했다. 결국 난 약속을 지켰다. 기뻤다.
1999년 문제 감독
1999년 평택의 에바다학교 시설 비리를 다룬 <끝없는 싸움 - 에바다>를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첫 번째 상영에서는 시간에 쫓겨 청각장애인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을 넣지 못했다. 두 번째 상영할 때는 자막을 넣고 상영하기 위해 밤을 새며 작업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때만 해도 컴퓨터로 편집을 하면 자주 다운되었다.
결국 예정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상영 당일 내 영화 다음에 상영하기로 한 영화와 상영순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편집을 잘못해서 똑같은 나레이션이 두 번 나오기도 했다. 정말 쥐구멍을 찾고 싶었고 상영 내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상영이 끝나고 나서 난 도망치듯 상영장을 빠져나왔다.
폐막식 날 영화제 김정아 프로그래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화제 뒤풀이에 오라고. 난 몸이 안 좋아 못 간다고 했다. 무슨 낯으로 뒤풀이에 참석하나. 나중에 상영장에 있었던 후배는 “상영장의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고 했다. 쩝!
2001년 극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노력으로 영화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사전검열은 형식상 폐지되었고 인권영화제는 2001년부터 영화 전문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2003년에는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가 상영되었고 2004년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의 교육권과 이동권투쟁을 다룬 <노들바람>으로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받았다. 2005년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권우정 감독이 <농가일기>로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수상했다. 전년도 수상자가 시상을 해야 한단다. 기뻤다.
2008년 거리에서
98년 IMF시절 노숙인 영상작업을 하면서 거리에서 만났던 형들의 이후의 삶과 현재의 노숙인운동을 다룬 <거리에서>를 완성했고 올해 인권영화제에 상영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올해 인권영화제는 거리에서 상영한다.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한 검열을 거부하여 상영관을 구할 수가 없었다.
12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인간을 위한 영상을 통해 관객과 함께 해온 인권영화제. 주거도 상품, 문화도 상품인 사회를 거부하며 우리는 거리에서 외친다. 주거권을 보장하라! 표현의 자유,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라!
PS.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거리에서>를 재편집 하고 있었다. 99년 상황이 재발해서는 안 되는데….
덧붙임
박종필 님은 장애인운동, 노숙인운동에 영상으로 함께하고 있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과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