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우익신문의 대명사인 조선일보가 ‘환경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벌써 9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고, 우리 시대 환경파괴의 대명사인 새만금 간척사업공사장에도 ‘친환경 기법으로 새만금을 완성하겠습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환경문제를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그린워싱(greenwashing - 녹색덧칠. 환경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란 어렵고 생소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환경’, ‘녹색’, ‘생태’라는 말이 이미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제안을 들고 나왔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60년의 우리나라 비전으로 선포한 것이다. 필자가 학교를 다닐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8월 15일에 대통령이 하는 공식 연설문의 내용은 교과서에 실릴 법한 중요한 내용이었고 그 내용은 대부분 남북통일과 관련한 내용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번 선언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이번 대통령 연설을 TV 생중계를 통해 보고 있던 필자는 대통령 뒤편의 화면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글자가 크게 나오며 청와대 보도자료 역시 이번 경축사의 핵심을 ‘녹색성장’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불과 이틀 전인 13일 시민단체들의 불참 속에 강행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와 오버랩되면서 이명박 정부가 ‘단단히 작심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체를 찾아보기 힘든 ‘저탄소 녹색성장’
하지만 이후 경축사 전문을 구해 꼼꼼히 읽어보면서 허탈함과 냉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경축사 전문은 정부정책포털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녹색으로 덧칠을 하려면 최소한 녹색 빛이 보이기는 해야 할 텐데, A4 3페이지 분량의 저탄소 녹색성장관련 연설문 어디에서 ‘녹색 빛’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극화, 일자리부족, 민생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와 같이 당위적인 설명이나 ‘정보화시대에는 부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녹색성장의 시대에는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라는 식의 별다른 근거 없는 ‘주장’이 난무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가 결단하면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수 있다’는 식의 다소 황당한 주장이 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녹색성장을 설명한 대목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입니다.’와 ‘녹색 기술과 청정 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입니다’라는 두 문장뿐이다. 이는 아무리 읽어보아도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녹색’의 입장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 주겠다는 70년대식 ‘파이 키우기’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70년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국가주도의 경제 시스템으로 성장동력을 만들어 온 것을 그대로 주어만 바꾸어 ‘녹색성장’이 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현 정권 관계자들의 안목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실제로 탄소 발생량을 줄이고 ‘녹색’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국가의 흥망은 물론이고 민중들의 생존과 밀접한 향후 60년간의 비전을 별다른 설명이나 공론과정 없이 이렇게 간단히 제시하는 그 ‘용감함’에 놀란다. 또한 기후변화와 석유고갈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인류의 현실을 성장동력, 다시 말해 경제발전의 원동력 정도나 일자리 창출 기회 정도로 국한시켜버리는 그 경제 중심적 사고방식에 할 말을 잃어버린다.
녹색 덧칠에는 실패했지만, 계획은 계속된다.
이러한 황당함은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총력투자를 하겠다는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녹색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2050년까지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거나 ‘새만금을 비롯 전국 각지가 에너지가 만개하는 신천지가 될 것이다’는 대목은 이명박 정부가 녹색덧칠조차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이다.
에너지 자주개발률이란 무엇인가? 현재 97%를 수입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해외에서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가 태양, 풍력 등으로부터 에너지원을 얻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는 당연히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원이다. 녹색성장과 저탄소사회를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를 확보하겠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또한 그 많은 곳 가운데 굳이 새만금을 지목하여 에너지 신천지를 만들겠다는 것은 얼마 전 당초계획보다 10년 앞당겨 새만금을 세계경제자유도시로 키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리면서 아예 덧칠을 포기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녹색덧칠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두 허무맹랑한 허풍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녹색과 상관없는 오히려 환경적 문제를 더 많이 갖고 있는 계획들은 꾸준히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실효성 및 탈 화석연료라는 흐름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는 청정석탄기술, 청정지역 개발로 비난을 피하기 힘든 개발을 위한 극지방 탐사계획, 무모한 환경파괴를 지역개발로 덮어가려고 하는 새만금 세계경제자유도시 구상 등은 모두 매우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할 내용이지만 그동안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채 조용히 진행되던 내용들이다.
이러한 에너지정책은 지난 13일 진행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잘 드러난다. 올림픽에 묻혀, 에너지정책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 눌려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정부는 2030년까지 현재 20기 수준인 핵발전소를 2030년까지 40기 수준으로 늘리기 위한 계획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이 계획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밝힌 2030년 재생에너지 11% 구상도 함께 포함되어 있지만, 핵 발전 증설계획은 매우 구체적인 로드맵과 연구개발 비용투자계획까지 나와 있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정부 스스로도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애매한 선언으로만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녹색성장을 경제발전의 신성장동력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핵산업의 해외 진출 등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차세대 원전 연구개발 계획 등 2030년 이후의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핏 보기’로는 ‘가짜 녹색’을 구분할 수 없다
어느 때보다 ‘가짜’가 많아진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환경을 생각한다고 하는 것들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확실한 ‘가짜’를 구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다.
기후변화시대 재테크 수단으로 ‘탄소 펀드’가 출시되었거나 친환경 에너지라면서 핵발전을 광고하는 모습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제 이러한 풍경에 하나 더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며 다양한 개발 사업을 펼치는 풍경이 하나 더해 질 것이다.
빠른 속도로 ‘얼핏 보기’를 한다면 겉에 덧칠해 놓은 녹색페인트만 보일 뿐 그 뒤에 감추어진 검은 색 본체는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처럼 녹색페인트가 제대로 칠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얼핏 보기’를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녹색 덧칠’을 하는 이들은 그리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자신의 색깔을 감추기 위해 더욱 짙은 녹색으로 자신을 칠할 것이고 또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다양하고 화려한 장식품으로 꾸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 녹색 골라내기’는 아직 시작단계이다.
그동안 어설픈 ‘가짜’들이 많았기에 굳이 골라내지 않아도 누구나 ‘가짜’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가짜’를 감싸고 있는 장식품들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가짜’에 현혹되는 이들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생태사회를 고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원칙은 어떤 것일까? 안타깝지만 이에 대한 정답은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진짜’를 찾아내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과 토론, 실천만이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알려줄 따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어설픈 ‘녹색 덧칠’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화두는 그래서 더 클 것이다.
덧붙임
* 이헌석 님은 청년환경센터의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