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10월 16일 "책임운영기관의 운영 및 지정에 관한 조례(안)"을 시의회에 상정하였다. 이 조례안이 11월 시의회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곧바로 역사박물관, 시립미술관, 교통방송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선정,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2009년에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를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고 곧바로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책임운영기관은 민영화의 방식 중 하나
책임운영기관제도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기업의 경영을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전문CEO가 인사 및 재정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공기업을 운영한다. 전문CEO는 2년에서 5년간 임기를 보장받으며 이후 사업성과에 따라 재계약을 거친다. 관계 당국은 전권을 가진 CEO에 대해 경영평가, 사업추진평가를 진행하는 선에서 공기업에 관여하게 된다. 따라서 책임운영기관제도는 일종의 민영화 방안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을 뿐 공기업의 운영 전권이 기관운영장에게 위임되기 때문이다.
책임운영기관제도는 영국,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운영 중이며,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지분매각이 어려운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중앙정부기관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어 왔으며, 현재 47개 기관이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책임운영기관으로 인한 효과는 어떨까? 지난 2000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 중인 국립중앙극장의 경우를 보면, 1999년 초대 인원수가 40만7천 명이었는데 2006년에는 22만5천 명으로 줄었다. 반대로 유료 인원의 경우 1999년 13만5천 명에서 2006년 27만4천 명으로 늘었다. 시민들의 예술 접근권 보다는 수익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공공성의 약화와 수익성 강화 경향은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 중인 국립의료원의 기관장 평가 항목에서도 볼 수 있다. 국립의료원의 계량 가능한 평가 항목의 가중치를 보면 저소득층 의료지원은 6%, 무료진료봉사는 4.5%인데 반해 의료사업 수익목표는 10%, 의료급여환자진료는 6.5%이다. 국민 건강권에 대한 기여도보다 병원의 수익성에 더 높은 평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책임운영기관제는 서울시 상수도 민영화의 변주곡
책임운영기관제도를 도입하는 서울시의 속내는 사실 현재 직영 공기업으로 운영 중인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를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사실상 이미 흑자 공기업으로 운영 중인데, 최근 아리수 페트병의 유료 판매 사업 등을 추진하며 수익성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서울시는 상수도사업본부가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더욱 적극적으로 수익성 사업을 하게 되면 시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서울시의 의도대로 상수도사업이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수돗물의 등급화가 가장 우려되는 문제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추진 중인 아리수 페트병 판매 사업은 상수도 정수장 물을 페트병에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정수, 냄새 제거 등 여러 가지 추가 작업공정과 설비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돈 되는 페트병 장사를 위해 일반 수돗물의 설비개선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조만간 중국 페트병 판매 시장까지 진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수돗물 음용대 확대, 일반 상수도 시설 개선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서울시 상수도사업소는 다른 지자체의 상수도사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재정 구조가 안정적이며, 심지어 매년 200억이 넘는 돈을 다음 회기로 넘길 정도로 예산이 풍부하다. 페트병 판매 수익은 현재 재정 상황으로 볼 때 전혀 필요 없어 보인다.
책임운영기관제가 도입되면 서울시상수도사업소가 처음 할 일이 무엇일지는 분명하다. 수익으로 평가받는 기관장이 처음 할 일은 아리수 페트병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서울 시민들에게도 이제 수돗물은 300원에 페트병에 넣어 판매하는 질 좋은 수돗물과 집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저질 수돗물로 나뉠 것이고, 다른 모든 서비스가 그러했듯이 수도 역시도 고급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아리수 페트병 판매를 본격적으로 선언한 2006년부터 상수도 시설 투자비율을 크게 낮추었다. 2005년 세출 대비 38%이던 시설투자비는 2006년 21%로 급감했다.
서울상수도사업본부에 대한 책임운영기관 지정 막아내야
문제는 비단 등급화만이 아니다. 수익성 강화를 위해 요금체불 등에 대해 좀 더 엄격한 단수 조치가 취해질 수 있고, 현재 전국적 불평등한 상수도 보급 체계를 바꾸기 위해 논의되는 여러 대안들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국적 상수도 상황보다는 서울시만의 수익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수돗물 민영화에 다름 아닌 상수도사업본부 책임운영기관 지정을 막아내야 한다. 나아가 상수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운동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임
* 한지원 님은 물사유화저지공동행동 사무국장과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