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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느껴봐~인권영화제

[느껴봐~인권영화제④] 인권영화가 만든 광장

인권영화에 함께 했던 이들에게 듣는 인권영화의 의미

<편집자 주>

인권영화제가 서울시와 경찰의 탄압을 겪으며 성대하게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1200명이 개막작을 볼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서 힘을 얻으며 상영되었다. 인권영화제를 앞두고 인권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인권영화는 어떤 의미인지 물어 보았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부터 인권은 현실에서 힘을 얻기에 짧지만 깊은 의미가 담긴 글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광장에서 열린 인권영화제 폐막식에서 폐막 발언한 인권 재단 사람의 김정아 님의 글을 싣는다. 그녀는 사실 10년간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며 기틀을 다져온 이기에 '광장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의 의미를 누구보다 더 잘 느끼고 헤아리는 사람이다. 폐막식에 오지 못한 사람들과 인권영화제, 인권영화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싣는다.



인권영화제는 □□다. 왜냐하면 ....
▪ 인권영화는 <기본 안주>다. 보면 술 먹고 싶다. 답답해서든 통쾌해서든...그리고 공짜다! (공현)
▪인권영화는 <뜨거운 말걸기>다. 누군가에는 뜨거움을 넘어 불편해지는 말걸기이고, 또 누군가에는 사람의 뜨거운 체온 같은 말걸기가 되기 때문이다. (전눌)
▪ 인권영화는 <장기투쟁사업장>이다. 늘 내가 어디 있는가를 깨닫게 한다. (임재성)
▪ 인권영화는 <실>이다. 인권영화를 함께 보면서 마음을 나누며 엮어주니까.(랑)
▪ 인권영화는 <뱀>이다.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 우리를 휘감는 낮설고 찬 삶의 진실(zaron)
▪ 인권영화는 <티셔츠>다. 매해 개최된 인권영화제 기념 티셔츠를 사서 나의 보물상자에 보관하는 것이 연례행사였기 때문이다. 올 해도 만드시죠?(전명훈)
▪ 인권영화는 <술>이다. ‘끊고 싶지 않은 소통’. 맛있고, 뜨겁고, 재밌고....‘아프다’(인)
▪ 인권영화는 <두려움>이다. 왜냐하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수아)
▪ 인권영화는 <현미경>이다. 은폐되어 온 현실을 확대해 보여준다.(외뿔기린)
▪ 인권영화는 <갓 지은 따뜻한 밥>이다. 나를 살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빈 솥과 마음을 넉넉하게 하니까~! (청올)
▪ 인권영화는 <나쁜 영화>다. 명박이와 그의 똘마니들에게는... (호야)
▪ 인권영화는 <클렌징폼>이다. 화장한 세상의 맨 얼굴을 보여주니까(시소)
▪ 인권영화는 '촛불'이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부각시켜 눈을 뜨게 하고, 진실을 알게 한다. 또 진실을 이야기하고 소외된 자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작년 광우병소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들었던 촛불과 같다. (기륭전자 김소연)
▪ 인권영화는 <그림자>이다. 내가 쬐는 빛의 다른 모습~!? (기정)
▪ 인권영화는 Young-비법이다. 인권영화제는 영비법에 반대한다구, 누군가는 미숙하다?(young) 어리다?(young)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자' 영비법에 반대하고, 회가 거듭할수록 더 기운찬(young!) 젊음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승화)
▪ 인권영화는 <재수술>이다. 혼돈의 정립, 덮임 속에 속삭임, 본질에 대한 회귀이기 때문이다. 외부적, 환경적, 선천적인 원인를 정립하는 것이기에 현대인간은 거의 환자인기에 재수술이 필요하다. (타짜)
▪ 인권영화는 <자유>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화제!! (영롱)
▪ 인권영화는 <재밌다>. 일단 보시길...!! (대용)
▪ 인권영화제는 <눈물>이다. 눈물 없이 준비할 수 없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눈물의 아련함을 영화제에서!! (소금인형)
▪ 인권영화제는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달리기>다. 숨이차고 힘들때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달리다보면 힘든게 사라진다. 또 계속 달리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화신)
▪ 인권영화제는 <폭탄>이다! 왜냐하면, 청계광장에 떨어지는 인권 충격이기 때문이다!(아해)
▪ 결정적으로 제 인 생에 영향을 준 것이 인권영화제에서 본 한 편의 영화였다. 그건 내 인생의 어떤 틈이었다. 별 생각 없이 별 물음 없이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맨홀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 틈에서 나는 세상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빙글빙글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내 인생의 틈을 만들어준 게 인권영화. (눙미)
▪ 인권영화는 <사람의 향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 나의 감각을 자극하며 오랜 감동을 주므로......(이쁜이)
▪ 인권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인권영화에 담겨진 목소리들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검프)
▪ 인권영화는 <골치 아프>다. 보고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고로 골치 아프다.(배여진)
▪ 인권영화는 <환타지 무비^^>다. 현실에 없는 인권을, 현실이라는 소란을 통해 자꾸 드러내는 역설적 환타지! (비올)
▪ 인권영화는 <환풍기>이다. 답답한 세상에서 쬘수 있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잊고 살던 또는 무뎌졌던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는 ..(바람돌이)
▪ 인권영화는 <태그tag>다. 우리 삶의 확실한 검색을 위한..(준식)
▪ 인권영화는 <낮잠>이다. 꼭 필요한 때 자는 잠처럼 달콤하다.
▪ 인권영화는 <밥>이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으니까. (영은)
▪ 인권영화는 <관심>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주)
▪ 인권영화는 <날 것>이다.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프다.
▪ 인권영화는 <기억>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소중함을 결코 잊지 않게 하니까. (이기규)
▪ 인권영화는 <소통>이다. 영화를 통해 나는 세상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연아)
▪ 인권영화는 <초대>다. 사람들을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인권 활동으로 초대한다.(이끼)
▪ 인권영화는 <안드로메다>다. 다른 세계, 다른 개념의 무대. (우주인)
▪ 인권영화는 <람바>다. 인권을 만나니 춤이 절로 덩실덩실 ~(댄싱퀸)
▪ 인권영화는 <사이다>. 끄으윽~ 막힌 속을 확 뚫어준다! (콜라 싫어)
▪ 인권영화는 <“파고”>다. 인권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보면 달려들고 싶다. 휴식처다. (개구라)

개막식 당일 경찰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사용승인요청서를 보였지만 상부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며 무대쌓기를 중단시켰다.

▲ 개막식 당일 경찰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사용승인요청서를 보였지만 상부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며 무대쌓기를 중단시켰다.


13회 인권영화제를 폐막하며
김정아(전 인권영화제 총 기획자)

아쉬운 사흘이 지났습니다.

지난 3일 인권영화제를 불허한다는 소식은 십 여년 전 홍익대학교에서 인권영화제 탄압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대체 장소를 찾을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작태는 그때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분노와 절망은 십여년 전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권영화제마저 죽이려 하다니.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행정 절차적 오류나 정책 판단의 차이 같은 인정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 바로 야만입니다. 행사를 48시간도 남겨두지 않고 어떤 협의도 없이 달랑 공문서 한 장으로 행사를 취소하겠다는 발상, 그리고 그것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후안무치가 바로 야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단 인권영화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개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공연일정을 잡아 두었다 하더라도 공문서 한 장으로 그것을 무산시켜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준비하기 위한 수고와 함께 그가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권은 표현의 자유라고 합니다.

이 정권은 인권영화제를 두고 불법폭력 집회를 우려한다고 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사회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불법이며 폭력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영화제가 아니라 집회가 된다 할지라도 정부는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가 짓눌린 사회는 그것의 분출로 생기는 소란스러움 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회입니다.

인권영화제는 여타의 영화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영화제로써 실천하고, 실천으로써 영화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영화제가 영화진흥법에 있는 그 작은 조항조차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항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극장에서 잘 하고 있었을 겁니다. 죽어 있는 조항처럼 보였던 심의면제추천이라는 것이 작년부터 관 뚜껑을 열고 나와서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권영화제가 그것을 문제제기 안 하고 받아들였다면 국내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영화제들(앞으로도 만들어질 영화제)이 그 족쇄에 무감했을 거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진 건 몸뚱이 하나 밖에 없다는 말을 종종 하고 또 듣습니다.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돈, 권력, 지식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말을 하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몸뚱이에서 바로 존엄성이 비롯됩니다. 우리의 몸이 바로 인권의 근간이요, 절대 존재입니다. 인간의 존엄은 돈, 권력, 지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몸에서 나옵니다. 존엄성을 빼앗긴 사람들이 자기 몸 하나 걸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용산의 유가족들, 대학로에서 노숙하고 있는 탈시설 장애인들, 택배 노동자들, 옥쇄 투쟁하고 있는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 쳐 있는 수많은 천막에서는 자기 몸 하나 걸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권영화제도 바로 그들 중 하나입니다.

돌이켜 보면 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오기까지 참 많이 양보했습니다. 7일이던 상영일정을 3일로 줄이고, 편안한 극장을 뒤로 하고 거리 상영을 합니다. 극장 관계자의 어려움 배려했습니다. 청계광장 3일밖에 못쓴다는 원칙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양보할 것도 갈 곳도 없게 되었습니다. 내년에 어디로 망망대해로 나가나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나요.

극장도, 광장도 인권영화제를 외면했습니다. 오직 인권영화제를 반겨주는 것은 관객들뿐입니다. 관객들의 변함없는 지지, 지원을 가지고 하반기에 영화진흥법의 독소조항 바꾸어 냅시다. 힘들겠지만 극장 관계자들도 설득해봅시다. 하나를 내어 놓고 가장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면 한번 같이 해볼만하다고 권해봅시다. 하나를 지키려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는 게 세상 사는 이치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원래 예술영화와 인권 영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술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곡진하게 표현하는 그 완성도에서 비롯됩니다. 그 힘이 세상을 바꾸어놓는 엔진이 되기도 하지요. 한 편의 영화가 지닌 힘이 백만 명이 모이는 집회만큼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의 사회적 고통에 렌즈를 맞추고 있는 감독님들 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권영화제를 지키는 힘이 될 것입니다.

중국의 문인 노신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부터 있은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청계광장에서 지난 3일 동안 있었던 13회 인권영화제가 14회 인권영화제를 개최하는 길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