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경기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얼마 전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가장 바탕이 되어야 할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고, 대입이라는 이유로 ‘인권’이라는 말이 저 뒤로 밀려나버린 현실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인 저에게 나름 기대를 갖게 합니다. 조례가 학교의 교칙보다 상위법이니까 온갖 억지를 부리고 있는 교칙들도 수정이 될 수 있고 게다가 학생인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인식도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대를 품고 지난 9월 25일 있었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조례제정위원회를 소개할 때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더군요. 위원 중에는 국가인권위에서 일하시는 분, 학교 교장선생님, 고등학교 교사, 인권활동가들까지 계셨지만, 정작 학생대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에 관련된 분들-선생님부터 인권활동가까지-이 모두 계셨지만 막상 직접적 당사자인 학생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최우선 반영되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이왕 추진하는 거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끔 제대로 조례가 만들어졌음 좋겠어요. 그래서 몇 가지 의견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바라는 점은 인권조례를 제정하기에 앞서 좀 더 구체적인 실태조사가 있었으면 해요. 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례를 만들어 주세요. 저희 학교를 예로 들어보면, 여학생들의 바지 착용이 가능하기는 한데 조건이 달려있어요. 다리에 꼭 가려야 할 상처나 흉터가 있어서 의사의 진단서를 끊어온 경우 선생님들이 상처나 흉터 정도를 보고 최종 판단해서 허가해 주도록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다 되니 사실상 바지를 입고 싶어도 못 입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만약 정확한 조사 없이 조례를 제정한다면 이런 상황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거예요. 또한 조례에 담긴 조항들이 구체적이어야 우리가 실제로 학교에 개선 요구를 할 때나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개선 노력을 할 때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학생들의 참여를 위한 방법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글을 올리거나, 학생참여단에 들어가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생인권실태조사 중간 집계 결과를 보면,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이 많지 않았어요. ‘아예 모르거나 잘 모른다’는 학생이 ‘안다’는 학생에 비해 6배쯤 많은 걸로 확인된 거죠. 결국 대부분 학생이 조례 제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조례제정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봐도, 경기도 학생들이 지난달 25일 추진대회 현장에 가서야 조례가 추진 중이라는 걸 겨우 알았다는 의견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객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학생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각 학교를 통해서, 그리고 10대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홍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생 참여단’의 영향력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 차원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실현할 수 있게끔 학생참여단을 만들고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대표의 발언과 교장선생님의 발언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또 다른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요.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서 나누어준 책자를 보니, 일본 가와사끼 시(市)에서 제정했던 ‘아동인권조례안’이 부록으로 실려 있더라구요. 가와사끼 시(市) 조례안에는 일종의 실행기구인 ‘권리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례안이 그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런 권리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만들어진 뒤에는 충분한 지원도 필요하구요. 인권침해를 당한 학생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19살 때까지 머리와 옷은 물론 심지어 가방에서부터 신발, 양말, 속옷까지 남들이 정해준 대로 따르던 아이들보고 20살이 되면 땡! 하고 “자, 이제 너는 성인이니까 자유와 책임을 줄께.”라고 말한다고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끄덕끄덕 맞장구]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
하우 님, 글 잘 읽어보았어요. 저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으로 결합하고 있는 인권활동가에요.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을 요목조목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우 님의 말처럼 자문위원으로 결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학생대표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저 역시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여건으로 그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답니다. 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아무리 역할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제 몫의 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학생참여기획단’이 곧 구성될 테니까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학생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쓸게요. 하우 님도 학생참여기획단에 꼭 함께하셔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나라에서, 지난 5년 사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 수가 4.25배나 증가한 나라에서, 체벌이나 강제야자, 부당징계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는 나라에서, 학생인권은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꿈입니다. 게다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교육청 차원에서 최초로 추진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는 각별한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교육기본법도, 초중등교육법도 모두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권리가 의미 있으려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절한 절차와 수단을 통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현재의 법률은 구체적인 구제절차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법의 정신을 거슬러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도 이를 막을 재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권리 내용과 권리회복절차를 담은 조례가 만들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문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 김상곤 교육감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안을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것이 자문위원회가 다짐한 약속인데...... 아직까지 그 약속에 걸맞은 발걸음이 이어지지 못했네요. 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학생참여기획단의 본격적인 구성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스페인 오렌세 지방에 위치한 <벤포스타>라는 어린이공동체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시민법 조항을 추가해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 왔다고 합니다. 그 시민법 1조는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라는 조항이라고 해요. 자유의 공기를 흡입하고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이라면, 권리를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해볼 기회를 가진 시민이라면 성숙할 기회를 충분히 누린 결과로서 책임을 질 줄 알겠지요.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교육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경기도 의회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참여와 활발한 의견 개진은 꼭 필요합니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정 시도가 주저앉는다 해도,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학생인권에 관한 관심과 대안 모색의 기운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다면 결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른 지역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를 남길 수 있을 테고 말이에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나가요.
- 배경내(인권교육센타 ‘들’ 상임활동가)
하우 님의 말처럼 자문위원으로 결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학생대표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저 역시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여건으로 그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답니다. 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아무리 역할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제 몫의 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학생참여기획단’이 곧 구성될 테니까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학생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쓸게요. 하우 님도 학생참여기획단에 꼭 함께하셔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나라에서, 지난 5년 사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 수가 4.25배나 증가한 나라에서, 체벌이나 강제야자, 부당징계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는 나라에서, 학생인권은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꿈입니다. 게다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교육청 차원에서 최초로 추진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는 각별한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교육기본법도, 초중등교육법도 모두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권리가 의미 있으려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절한 절차와 수단을 통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현재의 법률은 구체적인 구제절차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법의 정신을 거슬러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도 이를 막을 재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권리 내용과 권리회복절차를 담은 조례가 만들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문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 김상곤 교육감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안을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것이 자문위원회가 다짐한 약속인데...... 아직까지 그 약속에 걸맞은 발걸음이 이어지지 못했네요. 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학생참여기획단의 본격적인 구성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스페인 오렌세 지방에 위치한 <벤포스타>라는 어린이공동체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시민법 조항을 추가해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 왔다고 합니다. 그 시민법 1조는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라는 조항이라고 해요. 자유의 공기를 흡입하고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이라면, 권리를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해볼 기회를 가진 시민이라면 성숙할 기회를 충분히 누린 결과로서 책임을 질 줄 알겠지요.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교육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경기도 의회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참여와 활발한 의견 개진은 꼭 필요합니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정 시도가 주저앉는다 해도,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학생인권에 관한 관심과 대안 모색의 기운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다면 결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른 지역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를 남길 수 있을 테고 말이에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나가요.
- 배경내(인권교육센타 ‘들’ 상임활동가)
덧붙임
하우 님은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