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다스리는 상벌점제
해리 포터의 줄거리는 대강이라도 알고 있지? 고아인 해리는 이모와 이모부 집에서 구린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어. 열 살이 되던 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호그와트 마법사 학교에 입학하게 되지. 호그와트는 마법의 능력이 있는 사람만 입학할 수 있는 7년제 학교야. 호그와트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살게 되는데, 기숙사는 4개로 나뉘어 있어. 학생을 용기 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순수혈통 엘리트, 그리고 정의롭고 성실한 사람으로 분류해서 각각 기숙사에 배정하는 거지.
해리가 배정받은 기숙사는 그리핀도르야. 호그와트 마법학교엔 ‘반’의 개념이 없고 ‘기숙사’단위로 나눠서 수업을 듣기 때문에 기숙사는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야. 각 기숙사에는 사감교수가 있고, 기숙사 단위로 점수를 매겨 학생들을 평가해. 체벌은 없는 대신(가끔 개념 없는 교수들이 끔찍한 체벌을 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훌륭한 일을 하면 가점을 주고 규칙을 어기면 감점을 줘.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기숙사는 연말에 기숙사 우승컵을 받게 되지. 학생들은 수업시간이나 일상생활에서 각 기숙사 반장들과 교수들로부터 상점이나 감점을 받아.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떠든다거나 복장이 교수나 반장들 맘에 안 든다거나 하면 감점을 받을 수 있어. 규칙들도 꽤나 많아서 규칙을 어기면 감점을 받게 돼. 몇 시 이후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거나 어디는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하는 규칙들.
스네이프 교수의 악행 : 꼬투리 잡아 맘대로 감점
해리가 들어간 그리핀도르는 다른 기숙사인 슬리데린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돼. 슬리데린의 사감인 스네이프 교수는 해리를 무척 싫어하지. 해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책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읽어보시고. 아무튼 마법의 약을 가르치는 스네이프 교수는 첫 번째 수업시간에 해리에게 감점을 줘. 태도가 너무 건방지다는 거지. 해리의 친구인 헤르미온느도 감점을 받은 적 있어. 스네이프가 말하라고 지목하기 전에 질문에 대답했다는 게 이유였어. 이런 방식으로 스네이프 교수는 계속 꼬투리를 잡아 감점을 시키지. 당연히 자기가 맡고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 학생들은 절대 감점을 시키지 않지.
감점을 받게 된 해리는 기숙사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되었다는 부담감을 갖게 돼. 물론 그렇다고 해리가 모든 규칙에 순응하며 생활하진 않지만, 기숙사 전체가 우승컵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거니까 부담을 갖는 건 당연하겠지. 같은 기숙사 학생들도 해리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곤 해. 소설에선 그런 일들로 인해 다른 학생들과 해리 사이에 묘한 갈등이 생기기도 해. 행동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기고 그것도 기숙사 단위로 연대 책임을 묻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통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마치 한 친구의 잘못 때문에 반 전체가 단체기합을 받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친구는 반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게 되잖아.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규칙에 민감해지고 교수들 말에 고분고분해지게 되는 거야.
벌점이 넘쳐나고, 신고가 넘쳐나고...
가만, 쭉 읽다가 뭔가 떠오른 거 없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 가까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그린 마일리지’(Green mileage)라고 들어본 적 있어? ‘그린 마일리지’ 제도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 상벌점제도야. 전국 초·중·고교의 10%에 이르는 1천858개 학교에서 현재 시범 운영되고 있고, 2011년까지 전체 학교에 도입될 거라고 해.
내가 다니는 학교엔 상벌점제가 없지만,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정말 놀라웠어. 교과부에서는 체벌의 대안으로 상벌점제를 도입하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상벌점제가 들어온 뒤에도 체벌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야. 이건 뭥미? 게다가 상점은 너무 멀리 있고 벌점은 너무 가까이 있대. 교사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벌점, 머리가 규정보다 조금만 길어도 벌점, 뭘 해도 벌점 벌점 벌점! 아이고 뭐가 그리도 많은지……. 반별로 합산해서 벌점이 많은 반에게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대. 들어나 보셨나, 신고제! 규칙을 어긴 학생을 신고하면 신고한 애한테 상점을 주기도 한다는 거야. 신고를 당한 애는 누가 날 고발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내서 자기도 복수할 기회를 노리겠지. 학생 선도부가 나서서 벌점을 매기는 학교도 아주 많대. 벌점이 어느 정도 쌓이면 징계도 주고 부모님한테 통보도 간대. 이런 일이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니 더 끔찍해. (초등학교라고 해서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우린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구~
이런 상황에서 정말 학교를 다닐 만할까? 체벌보다 상벌점제가 낫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게다가 벌점을 매기는 근거 규칙들은 대다수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들 아니었나? 상벌점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취급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점수 하나에 울고 웃고 고분고분해지는, 말 잘 듣는 개로 만들기 위한 과정. 상벌점제가 불러올 것은 억압과 통제에 익숙해진 우리들 모습이야. 그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지?
[끄덕끄덕 맞장구] 학생 녹화사업, ‘그린 마일리지 제도’
해리 포터 이야기를 상벌점제를 통해 들여다보니 엄청 흥미진진한걸?ㅎ 글 잘 읽었어.
상벌점제는 낯선 제도는 아니지. 오래 전부터 상벌점제를 시행해온 학교들도 여럿 있었고, 몇몇 교육청에서는 교육청 정책으로 추진하기도 했었고. 올해 들어 새로워진 점이라면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그린 마일리지 제도’라는 이름으로 상벌점제가 공식 운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곧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걸 거야. 또 하나, ‘그린 마일리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중-고를 연계해서 벌점을 마일리지 개념으로 적립,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통제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좁히겠다는 점도 들 수 있겠군.
교과부가 그린 마일리지 제도를 ‘체벌의 대안’입네 ‘학생 인권 존중 방안’입네 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MB식 학생 녹화사업’의 일환이라는 악취를 숨길 수는 없지. 녹화사업이 뭐냐고? 쿠데타로 불법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비판의식과 저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특별교육을 시켰던 사건을 말해. 이명박 정권 역시 시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자나 깨나 법치를 외치고 있잖아? 교과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 법에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반인권적인 교칙에 순응하는 학생부터 만들겠다는 것, 교사와 선도부를 통해 비판 의식의 씨앗을 벌점을 통해 뽑아버리겠다는 것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숨은 의도이지.
어떤 교사들은 체벌처럼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학생들을 상벌점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에 혹하는 모양이야.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상벌점제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몰라. 매질, 단체기합과 같은 체벌이나 강제이발 같은 일은 교칙의 잔혹함과 파괴된 교사-학생 관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반면, 벌점을 매기는 일은 그 본질을 교묘하게 숨기지. 학생들의 저항감도 적은 편이고. 게다가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을 집행하는 과정에 ‘합리성’이라는 외양까지 덧입혀줘. 조용하고도 교묘하게 학생의 자유 영혼을 잠식하고 ‘법치’에 길들여지게 만드는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교가 지키기를 요구하는 규정이 정당한지를 따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더욱 교묘해진 통제엔 더 예민해진 감수성으로 맞서야 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폐해를 드러내고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따져보는 일을 서둘러야겠다.
◎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상벌점제는 낯선 제도는 아니지. 오래 전부터 상벌점제를 시행해온 학교들도 여럿 있었고, 몇몇 교육청에서는 교육청 정책으로 추진하기도 했었고. 올해 들어 새로워진 점이라면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그린 마일리지 제도’라는 이름으로 상벌점제가 공식 운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곧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걸 거야. 또 하나, ‘그린 마일리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중-고를 연계해서 벌점을 마일리지 개념으로 적립,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통제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좁히겠다는 점도 들 수 있겠군.
교과부가 그린 마일리지 제도를 ‘체벌의 대안’입네 ‘학생 인권 존중 방안’입네 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MB식 학생 녹화사업’의 일환이라는 악취를 숨길 수는 없지. 녹화사업이 뭐냐고? 쿠데타로 불법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비판의식과 저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특별교육을 시켰던 사건을 말해. 이명박 정권 역시 시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자나 깨나 법치를 외치고 있잖아? 교과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 법에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반인권적인 교칙에 순응하는 학생부터 만들겠다는 것, 교사와 선도부를 통해 비판 의식의 씨앗을 벌점을 통해 뽑아버리겠다는 것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숨은 의도이지.
어떤 교사들은 체벌처럼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학생들을 상벌점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에 혹하는 모양이야.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상벌점제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몰라. 매질, 단체기합과 같은 체벌이나 강제이발 같은 일은 교칙의 잔혹함과 파괴된 교사-학생 관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반면, 벌점을 매기는 일은 그 본질을 교묘하게 숨기지. 학생들의 저항감도 적은 편이고. 게다가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을 집행하는 과정에 ‘합리성’이라는 외양까지 덧입혀줘. 조용하고도 교묘하게 학생의 자유 영혼을 잠식하고 ‘법치’에 길들여지게 만드는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교가 지키기를 요구하는 규정이 정당한지를 따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더욱 교묘해진 통제엔 더 예민해진 감수성으로 맞서야 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폐해를 드러내고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따져보는 일을 서둘러야겠다.
◎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덧붙임
찬욱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입니다.